[에세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는 길지 않은 밤이었고요
글 입력 2023.09.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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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맞이 감기로 골골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핸드폰이 갑자기 망가져서 두 달 만에 다시 핸드폰을 사게 되었다. 여행 준비는 착실하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속상한 일도 있었고 울어도 봤다. 어떤 감정은 외부로 향했고 어떤 감정은 내부에 남았다. 그래도 요즘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가을을 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이리로 저리로 오가는 날들이 있었다. 깊dl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른 좋은 기억을 꺼내서 덮어야지 하다가도 불쑥 튀어나와서는 나를 헤집었다. 시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일인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가만히 있어도 계속 지쳤다.

 

타고난 성격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고, 조절할 수 없으면 그 감정이 깎여 나갈 때까지 닳아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를 감정 앞에 널어놓고 있다가 새로 산 CD 리핑해 둔 게 생각나서 꺼내 들었다. 유통되지 않는 음반에 부쩍 익숙해진 요즘, 기분 전환 삼아 재생했는데 부드러운 음악과 다정한 가사에 위로 받았다. 응어리가 사르르 녹는 기분.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하나로 내 상태는 제법 괜찮아졌다. 앞으로 힘들 때마다 꺼내 들을 음악이 하나 더 생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내가 처리할 수도 없고 답은 나오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만 썩 내키지 않고 입안에 쓴맛이 남는 그런 일. 예전이라면 한숨 푹푹 나오고 유난히 밤이 길어질 만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늘어질 것 같은 감정을 접고 누군가를 위로할 정도는 되었다.

 

허무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괜찮은 척한다. 두고두고 생각날 수도 있고 아니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남겠지만,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니까 이 정도에서 수습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답이 나오지 않는 일도 아니고, 감정이 움직여서 갈피를 못 잡는 일도 아니라면 사실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미래에 긍정을 심어두고 지금 일어날 수 있다면 그 정도로 끝날 일이라면 이제는 어렵지 않다. 이렇게 퀘스트를 하나 통과했고 매뉴얼이 쌓인다.


비슷한 일에 몇 번이고 발버둥 쳤는데 달라지는 게 없고, 괜찮아지나 싶다가도 고꾸라질 것 같은 순간이 생긴다. 어떻게든 순간은 버텨내고 견뎌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대충 이런 모습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어릴 때 내 앞에 놓인 우울이 너무 버거워서 왜 힘든 것만 반복되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고민했었다. 하나 해치우고 나면 한동안은 평탄했으면 좋겠는데 왜 더 큰 우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맥 빠지게 하는지. 그런 게 삶이라면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매뉴얼이 쌓였으니까. 처리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해본 일이니까 이것도 지나갈 일이 분명하니까. 매 순간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살면 힘들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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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은 힘이 된다. 괜찮은 척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막연하더라도 '이 정도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은 살아가는 데 제법 쓸만하다.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행복회로를 돌리는 일과 적당한 긍정적인 사고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고 어느 쪽이 회피성 행동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다는 건 대체로 나쁘지 않은 내일로 간다. 끙끙 앓으며 긴 밤, 긴 하루가 되는 게 아니고 오늘의 감정을 오늘로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만으로 조금은 나아진다.


막막함에 울고 답답함에 나오지도 않을 답을 찾아 헤맸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황이 끌고 온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덮어놓고 모른 척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의미 없이 힘들어하는 시간이 많고 길다고 생각했지만, 힘들어봤으니 그걸 반복하고 싶지 않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피해 다니지 않은 덕분에 지금 덜 힘든 거라고 생각하면 약간의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얼마나 버거웠는지, 감당할 수 없어서 울었던 몇 번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인생에 없었으면 좋았을 순간이고 누군가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차오른다. 여전히 나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서럽지 않은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 버거워서 감당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싶더라도 정신 차리고 앞으로 향한다. 어제도 작은 폭탄이 떨어졌지만, 흩어지려는 감정을 모으고 기나긴 한숨 한 번으로 대신했다. 방법을 모르는 거 아니니까 잘 극복해 나가려고 한다.

 

나를 좀 먹지 않고 밤잠 재우지 않는 일, 이젠 경험으로 쌓은 면역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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