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 놓을 용기 [도서]

관계와 문화를 바꾸는 실전 평어 모험
글 입력 2023.09.0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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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과 드림, 그리고 고민


 

 

답장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드림’

 


그저께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드림' 말고 '올림'으로 마무리 지었어야 했는데, 이미 메일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사소한 일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사람은 메일을 읽으시는 교수님의 시선이 '드림'에 오래 머물지 않기를 빌 수밖에.


어제는 또래들을 많이 만났다. 올해 6월 28일부터는 만 나이를 쓴다지만, 우리네 말은 여전히 몇 살인지를 먼저 따져 묻고 있었다. 나도, 그리고 너도. 그렇게 언어는 삶 속에서 위로 붕 떴다가 아래로 내리꽂히기를 반복하게 된다. 삶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상황 속에서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생각이 많아 잠 못 이루는 사람이라면 그 고민은 끝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당연히 사용하는 존댓말이 가끔은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말 놓을 용기"는 꽤 괜찮은 평어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예의를 지키면서도 반말로 도망치고 싶은 사람에게 평어 시도를 권하는 모험이니까. 

 

 

 

평어를 싹틔우다


 

보통 말을 놓는다고 하면 '반말'을 쓰는 행위를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 이성민의 "말 놓을 용기"란 반말이 아닌 평어를 사용할 용기였다.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예의 바른 반말이 기존의 수직적인 언어 질서로 비집고 들어갈 용기 말이다. 


반말은 대체로 친밀하거나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사람끼리 사용하지만, 평어는 나이 차와 상관 없이 평등함에 초점을 맞춘다.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제3의 한국어다. 일종의 언어 모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어는 '이름 호칭 + 반말'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말이다. (중략) 나는 이 새로운 말이 반말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반말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한국말에는 이제 반말과 존댓말이 있고, 또한 평어가 있다고. (p11)
 


우리는 반말을 사용할 때 어떠한 호칭을 쓰고 있던가. 한두 살 정도 차이 나는 사람끼리는 형, 동생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평어를 사용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어는 형, 동생 대신 이름만이 존재하기에 아무개는 아무개일 뿐 아무개 언니나 동생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름 호칭 뒤에 반말을 붙이는 것이 반말과 무엇이 다른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저자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책 곳곳에 평어가 반말과 미묘하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심어 놓았고, 나는 평어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수직적 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임을 알게 되었다. 공적인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언어라는 점 역시도. 물론 역사가 짧은 만큼 시행착오를 더 겪어야 하겠지만!


저자가 언급하였듯, "평어는 한국말의 숙명과도 같은 존비어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해결책이다." 디자인이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탐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방식이듯 평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였을까. 평어를 놓고, 우리의 일상이 바뀌는 미래를 생각해보게 된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메일을 주고받을 때,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라든가, 언젠가는 그 시간을 상대방의 눈과 시선으로 온전히 옮겨오는 데 사용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든가. 

 

평어는 수많은 의견이 엎치락뒤치락 오가야 하는 팀 프로젝트와 같은 상황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다. '제대로' 정착된다면 말이다.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걷어내고, 대화 본연의 목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 기존의 한국어가 창출하지 못했던 재미난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평어가 지닌 솔직함과 예의를 조심스레 주시해 본다.


"말 놓을 용기"는 평어 사용을 통해 자유로운 언어 사용과 잃어버린 문화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가장 자연스럽고 평등한 어릴 적의 또래 문화를 사회 위로 끌어올리고, 존댓말로는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풍부한 은유 농담을 통해 우리의 언어가 풍부해질 것을 꿈꾼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관성으로 자리하는 언어 체계를 면밀히 들여다본 하나의 철학이기도 하다.

 

 
평어 사용이 우리에게 가져올 문화는 평등한 사람들의 문화인 '또래 문화'이다. 또래 문화는 바로 그 평등 덕분에 자유가 찾아오는 문화이다. (p133)
 

 

평어를 향한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평어가 존댓말과 반말 사이의 간격을 메꾸고, 이제껏 알지 못했던 풍부한 우리말이 되기를 소망한다. 잠깐 쓰다 말 유행이나 우스운 말이 아닌 체계 잡힌 호흡으로 자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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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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