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춤추는 작품, 환대하는 미술관 [미술/전시]

김환기 탄생 110주년 기념전 <김환기, 점점화點點畵>
글 입력 2023.09.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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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에 있어 김환기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자신만의 독보적인 조형 언어로 한국추상예술의 문을 연 그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더불어 최근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하늘 한 점 김환기 展>은 수많은 관람객을 동원하였으므로 지금은 김환기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달구어진 시기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번 가을, 김환기의 배우자이자 영원한 지지자였던 김향안이 설립한 환기 미술관에서 <김환기, 점점화點點畵> 전을 개최했다. 매년 김환기의 작품을 전시하며 그의 작품세계와 가치를 이어 온 환기 미술관이 김환기의 점묘화의 방식이 구축되던 뜻깊은 1970년대의 작품과 구성으로 다시 한번 대중을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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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점의 작가, 김환기


 

환기 미술관은 경복궁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간 부암동에 있다. 여기저기 좋은 갤러리와 미술관들이 자리하고 있는 동네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주택가 사이에 있는 잘 관리된 미술관의 흰 외벽이 시선을 끈다.

 

본관에 들어서면 천장 없이 넓게 빈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눈에 띄는 것은 2층 높이에 있는 유리창인데, 김향안이 김환기의 그림을 가지고 비트라유를 의뢰하여 제작한 것이다. 본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저 스테인글라스는 햇빛을 내리비치며 이곳이 김환기의 미술관임을 역력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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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태어난 김환기는 20대 시절 도쿄에서 미술을 공부하였으며, 서울과 도쿄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56년 도착한 파리와 이후 70년대 뉴욕에서도 끝없이 작품에 대한 열정과 탐구를 이어 나갔다. 이번 전시는 1970년부터 1974년까지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므로, 뉴욕 시대의 김환기가 자신의 추상 세계를 표현할 언어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1930년대부터 50년대, 서울 시대와 파리 시대에서 김환기는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둥근 모습이 아름다운 백자와 학, 산과 태양 등 가장 향토적인 것이 그에게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뉴욕 시대에는 김환기의 표현 언어가 조금 바뀐다. 이번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듯, 그는 여러 습작을 통해 ‘점’을 연구한다. 색이 다양한 점, 선과 조화를 이루는 점, 신문지 위에 그려진 점, 다양한 조합의 점이 그의 손을 거쳐 간다.

 

그렇게 점의 언어를 습득한 김환기는 작품의 면을 모두 점으로 채우는 전면점화를 제작한다.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단색의 전면점화는 마치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세포를 연상시킨다. 그의 점들은 모두 ‘점’일 뿐이지만, 우연으로 빚어진 색과 농도의 차이는 화면 전체가 춤추는 듯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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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2층에 있는 1972년, 1973년의 점화들이 이러한 역동성과 감각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과 보라색,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단순한 언어 조건으로 수많은 감정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점화를 보며 자연에 대해 생각했다. 태양의 이글거리는 햇빛을, 밤하늘의 어두움을, 새벽의 공기를 연상했다.

 

김환기의 작품은 직관적인 메시지가 없기에 더욱이 재미있다. 노골적으로 향토적인 색감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는 그의 작품에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듬었고, 작품을 보는 다른 관람객들은 또 다른 감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점의 향연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 종이가 찢겨나간 듯한 균열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김환기는 점이 가득한 그림에 점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비워진 균열을 만들어 냈는데, 이런 선들은 운율이 있는 화면 속에 조형적인 감각을 더한다. 자칫 정적일 수 있는 구성에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벽에 걸린 수많은 습작이 증명하듯, 이는 끊임없이 분할과 조합의 비율을 고민하던 김환기가 스스로 찾아낸 결과물임을 느낄 수 있다.

 

 

 

김환기를 위한 미술관


 

환기 미술관의 장점은 비단 김환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환기의 작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환기의 작품은 사람을 압도시키는 무게감이 큰 편이다. 작품을 보는 사람은 그림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가까이서 다시 한번 그의 ‘점’을 찬찬히 뜯어보기도 한다.

 

환기미술관은 이러한 관람객들이 작품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도록 작품이 꽉꽉 들어찬 미술관보다는 여백에 어우러지는 미술관이 되기를 택했다. 대형 작품들은 미술관의 넓은 여백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색을 드러낸다.

 

더불어 환기 미술관의 중심부는 천장이 없어 뚫려있다. 관람객은 2층 계단에서도, 3층 계단에서도 1층에 전시된 1974년 점화와 다른 관람객들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은 다른 층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김환기의 마지막 전면점화 작품을 만난 여운을 잊지 않고 가져간다. 관람과 몰입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환기 미술관과 환기 재단의 설립자인 김향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술관은 내용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지었어도 미술관에 담겨진 내용이 빈약하여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때, 미술관은 아무것도 아니다.”

 

환기 미술관을 관람하며 느낀 것은 공간 곳곳, 작품의 배치 구석구석에서 작품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묻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관람객 누구도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오독하지 않도록 만들려는 수많은 노력이 하나의 미술관을, 더 나아가 김환기를 이루고 있다.

 

환기 미술관은 그 자체로 충만한 내용의 미술관이며, 그의 작품은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마음속에 와닿았다. 볕이 좋은 날 높은 천장에 달린 환기의 비트라유를 바라보며 환기와 향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깊은 울림을 주는 경험이 될 것이다.

 

환기 미술관의 <김환기, 점점화點點畵> 전시는 오는 12월 3일까지 진행된다.

 

 

 

박소은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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