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의 죄를 다시 보라 - 팜 파탈; 가려져 버린

글 입력 2023.09.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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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화의 체계 정립과 편집의 권력


 

발화의 권력은 곧 특정 이익을 투영한 서사를 형성하고, 신앙의 기능을 품은 서사는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화의 종교적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지만, 시간을 뛰어넘어도 전해지는 이 옛이야기들은 여전히 현대 문화의 고전적 근간을 이룬다.


무형의 이야기가 축적되어 탄탄한 문화적 기반이 되기까지에는 신화의 발생과 변천뿐만 아니라 체계 정립을 필요로 한다. 현대인이 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토머스 불핀치의 편찬을 거친 것처럼 말이다.


신화의 체계가 정립되는 동안 발생하는 편집의 종류는 크게 세 종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신화의 구전성에 입각해 보면, 이야기의 발전 과정에서 특정 요소의 심화와 탈락이 이뤄지는 것. 다음으로,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의 어떤 내용을 확장하거나 잘라내는 것. 그리고 권위 있는 연구자가 여러 판본의 신화를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문적, 문학적인 편찬이 그것이다.


첫 번째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그것은 곧 신화의 체계 정립에 가치관이 적용되었다는 뜻이고, 인간의 가치관은 그 사회의 정치성을 피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편집의 권력에 가려진 목소리는, 편집으로 지워진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팜 파탈 포스터.jpg


 

 

2. ‘치명적인 여인’ 특집 



2023년 산울림 고전 극장 프로젝트의 마지막 연극 <팜 파탈; 가려져 버린>(이하 <팜 파탈>)은 위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선명한 대답이라 할 수 있다. <팜 파탈>은 가려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기 위해 극 중 <히든 죄수>라는 가상의 프로그램을 상정하고, 고대 신화 속 상징적인 네 여성을 소환해 온전한 자기 발언의 시간을 부여한다.


<히든 죄수>란 부정적인 선입견에 갇힌 옛이야기 속 ‘죄수’들을 섭외해 자발적인 변호의 기회를 주고 현대의 가치관에 비춰 그 죄를 다시 심판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즉, 현대인의 관점에 죄수들의 변호가 합당하면 그 죄목을 벗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히든 죄수> ‘치명적인 여인’ 특집에 섭외된 ‘죄수’들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남편과 시누이 살해죄’라는 죄목을 가진 인안나, ‘도의적 살인죄’, 다른 말로 ‘우리 인간의 원죄 유발죄’라는 죄목이 붙은 릴리트, ‘무수한 살인죄’가 붙어있는 메두사, 그리고 ‘대량 학살죄’의 펜테실레이아이다.


각기 성격과 개성이 뚜렷한 네 여성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살인죄가 적용되어 있다. 살인과 연관되어 있다니 과연 치명적인 여인들로 보인다. 그런데 팜 파탈(femme fatale)의 정의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자를 유혹하고 남자의 운명을 파국 혹은 죽음으로 몰아넣는 치명적인 여인. 과연 네 사람은 자신들에게 붙은 팜 파탈이라는 수식어에, 자신들에 제기된 살해죄를 포함한 여러 죄목들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순식간에 <히든 죄수>의 방청객이 되어 네 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메두사를 제외한 세 여성은 초반에 자기 죄를 순순히 인정하거나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를 발화하며 다른 ‘죄수’ 여성들과 유대감을 쌓고, 서로를 위한 항변을 해 주는 과정에서 마침내 소리치기 시작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어!


죄목에 대한 순순한 인정이나 냉소가 순식간에 울분의 항변으로 변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3. 그들의 죄를 다시 보라.



우선 네 여성들이 고대 신화 속 인물들임을 다시 상기하자.


인안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시초인 수메르 신화 속 사랑과 아름다움, 지혜, 전쟁, 그리고 금성의 여신이다. 인안나가 최초의 여신, 여신들의 원형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그녀가 관장하는 것들을 알리는 소개말을 들으면 자연히 다른 신화의 여러 여신들이 떠오른다.


인안나는 자기 죄를 인정하지만,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죄목만 남은 것을 답답해한다. 자기 대신 저승에 갈 이로 남편 두무지를 고른 건 자신의 지혜로움이 반영된 일인 데다 두무지는 불륜을 저지른 부정한 남자라는 것이다. 시누이의 죽음은 시누이가 두무지를 저승사자들로부터 숨겨준 탓이다. 고대 수메르 상위 신인 인안나의 지위와 권위를 감안하면, 인안나의 행보는 그녀가 가진 능력 내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인안나는 자기 죄목에 대해 신이 못 할 일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그다음 타자는 유대 신화 속 최초의 인간 여자 릴리트다. 최초의 여자는 선악과를 먹은 이브(하와)가 아닌가 의아할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 성경을 읽어도 릴리트의 이름은 발견할 수 없을 텐데, 그 이유는 성경도 정경과 외경이 있고 릴리트는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외경에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릴리트의 죄목은 ‘도의적 살인죄’, 다른 말로는 ‘우리 인간의 원죄 유발죄’이다. 기독교에서 원죄는 이브가 선악과를 먹으며 생겨났다. 그런데 이브는 릴리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생겨난 두 번째(이지만 첫 번째로 알려진) 인간 여자이므로, 이브라는 존재와 원죄의 ‘발생’을 릴리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담이 릴리트와의 관계에서 동등함을 인정했다면? 그렇다면 릴리트는 낙원에서 루시퍼의 곁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일도 없었을 테다. 이 같은 논리로 릴리트는 자기에게 지워진 죄목의 불합리함을 드러내고, 지금 자신에게 붙은 죄목은 오히려 아담에게 붙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죄수’ 여성들은 릴리트의 존재를 지우려 들면서, 또 원죄의 탓은 돌리려 하는 인간들 행동의 모순됨을 꼬집는다.


메두사는 처음부터 자기 죄목을 자신의 가해자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메두사는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사람을 돌로 변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괴물이고, 그 독보적인 특징 때문에 후대의 많은 콘텐츠에서 재생산되었다. 그러나 소심하고 경계심이 많은 모습의 메두사는 <히든 죄수>에서 처음 만난 듯하다.


극 중 조명되는 것은 메두사가 괴물로 변하기까지의 사연이다. 메두사의 전사에는 보통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메두사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연인이었고 아테나를 모욕하기 위해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저 포세이돈의 눈에 들었을 뿐인 메두사가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에게 겁탈당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이야기를 메두사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아테나의 신전에서 강간당한 로 메두사는 아테나의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신 제우스의 형제이자 바다를 관장하는 신인 포세이돈을 일개 인간 여성이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아테나는 메두사에게만 분노했고 오직 메두사만을 처벌했다.


메두사가 당한 일은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권력형 성범죄에 해당할 것이다. 성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를 지탄하기보다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평소 행실을 궁금해하며 피해자에 주목하는 경향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무대에 주뼛주뼛 나온 메두사는 처음 자기를 소개할 때 ‘다 나를 아나 봐, 무섭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메두사의 사연을 듣고 나니 저 대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가해자는 멀쩡하고 피해자만 벌을 받은 이 사건에 다른 세 여성은 마치 자기 일처럼 분노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독특한 부족인 아마조네스의 왕 펜테실레이아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여성들로만 이뤄진 아마조네스 부족은 남아가 태어나면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고, 후세대를 구성할 여아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집단에서 남성들을 납치해 그들을 강간했다. 또 아마존들은 모두 호전적인 전사였던 만큼 전쟁에 자주 나섰고, 아마조네스의 왕인 펜테실레이아는 대량학살죄도 짓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붙은 납치죄, 강간죄, 대량학살죄라는 죄목들을 대번에 인정한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부족을 유지하고 번영시켜야 했던 왕, 그리고 전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는 입장이다. 사실 아마존들이 저지른 일들은 고대 다른 부족, 다른 국가에서는 남성들이 했던 일이다. 고대는 그런 전쟁 범죄들이 적어도 자기편에서는 영웅시되기까지 했던, 그런 시대였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라는 사건이 있기까지 과정을 떠올려 보라.)


물론 현대의 관점을 견지하는 사회자는 펜테실레이아의 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신화 속 존재들인 인안나와 릴리트는 그 시대의 야만을 익히 아는 만큼 펜테실레이아의 죄를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외려 여성들만으로 이어진 부족이 이어져 나갔다면 지금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해한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펜테실레이아는 어렵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꺼낸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녀의 마지막 싸움 상대인 아킬레우스가 그녀를 시간한 사건이다. 트로이 전쟁 중 아킬레우스가 시신을 모욕한 전사는 두 명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펜테실레이아와 헥토르이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죽마고우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원수였다. 아킬레우스는 원한에 차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녔다. 하지만 펜테실레이아는? 둘 사이엔 어떠한 사적인 원한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킬레우스는 펜테실레이아를 용맹한 전사로서도, 한 부족의 왕으로서도 존중하지 않았다. 극도의 대상화만 있었을 뿐이다.


전사인 펜테실레이아는 죽음 후의 일이고 자신은 괜찮다고 하지만 다른 세 여성이 왜 괜찮은 척을 하냐며 대신 화를 내준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기 시작한 그들이다.

 

 

 

4. 명장면



일상적으로는 ‘여성스러움’에 대한 강요부터 극심하게는 제노사이드까지, 여성혐오의 양상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발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식이다. 발화자에게 쏟아지는 폭력이나 비아냥을 직접 경험할 수도 있고, 다른 여성의 사례를 통해 간접 경험할 수도 있다. 결국 그러한 세상에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때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것은 자기 검열이다.


자기 검열은 발화 시도 자체에 대한 검열도 있지만 발화하는 동안의 검열도 있다. 바로 감정적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다. 침묵을 깨고 나온 발언조차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평가 섞인 공격이 들어오면 쉽게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의심받고 조롱당한다.


그래서 네 명의 ‘히든 죄수’들이 목청껏 나는 후회 없다고,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할 때, 당황스러움과 함께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극장을 나서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연극 <팜 파탈>의 명장면은 고대의 네 여성이 그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그 대목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어떠한 입막음이나 야유, 물리적 폭력 없이 보장된 안전한 발화의 시간, 자기 입장을 이해해 주는 청자(聽者)들이 있는 환경, 그리고 그 청자란 다름 아닌 자신처럼 여러 맥락이 탈락된 후 죄인으로서만 기억되는 동병상련의 상대들이라는 사실. 들어줄 사람이 생기고, 예전의 사건들을 생략 없이 풀어놓다 보니 묻어두었던 억울함이나 분노가 비로소 표출되기 시작한 그녀들이다.


가려지지 않고 끝끝내 드러난 이야기는 연대의 단초가 된다. 누군가는 애써 그 이야기를 가리려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팜 파탈 박수 크기 조정.jpg

 

 

 

5.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호명하기     



네 명의 ‘죄수’들은 이미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온당함을 피력하고 장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사회자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마침내 <히든 죄수>의 판결을 내릴 재판장이 등장한다.


재판장의 정체는 수메르 신화 태초의 여신이자 이 세계의 창조주 남무. 같은 수메르 신화의 인안나조차 남무를 모를 정도로 잊히고 오래된 여신이었으나 남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대 방청객들의 심경을 모두 반영하여 판결을 내린다.


모두 무죄!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로 자신의 지난날을 거론한다. 태초의 여성인 자신이 세계 창조 후 긴 휴식에 들어간 것이 세상이 여자를 대하는 양태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다. 변호와 판결의 형식을 지닌 가상의 토크쇼로 진행되는 이 연극의 세계관을 다시 떠올려 보자. 여기서 긴 휴식을 긴 침묵 내지는 긴 무관심이라 생각하면 남무가 말한 부정적인 영향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간다.


남무의 발언은 고대부터 이어져 오는 여성혐오의 동력인 '불변하는 폭력'의 죄과를 희석시키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무의 말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바, 꾸준히 나아가야 할 바라고 생각하면 한결 수긍이 쉬워진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동안 지칠 수 있다. 그러나 긴 침묵과 한정 없는 냉담은 결국 그것을 품은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침묵을 깨트려야 한다. 그것이 너무 두렵고 힘겨우면 다른 이가 발화한 이야기라는, 그가 내어준 어깨에 서로서로 기대면서.


한편 상징적인 네 여인, 그리고 잊힌 여신을 섭외한 사회자의 정체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는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를 쓴 신-레케-운닌니이다. 그러니 그는 그 이름이 생소할지언정 최초로 신화의 체계를 정립한, 이름이 기록된 이라 할 수 있겠다.


신-레케-운닌니의 <히든 죄수>에서 남무는 무죄 판결 이후 네 여성의 존재는 차츰 다르게 기억될 것이라 말하고, 네 여성은 그것에 만족한다. 태고의 여신과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정립자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호명의 시도라니. 퍽 낭만적이지 않은가.


다시 읽어 재해석된 옛이야기, 그리고 현대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여성들이 억압 없이 듣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침묵하지 않고 발화하기를 바라본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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