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땅거북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일 - 연극 '스고파라갈'

함께 하면 되는 일들이 있다.
글 입력 2023.09.0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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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13.jpg

 

 

자본주의와 환경오염, 두 가지 거대한 명제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너무 큰 주제들이라 오히려 입을 대기가 어렵다. 이것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현실 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가상의 무대,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이 존재하는 섬을 끌어와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스고파라갈. 찰스 다윈이 진화를 연구했다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고파라갈 섬에 우연히 오게 된 사람들과 땅거북, 그 사람 간의 대화를 통해 극이 전개된다. 대사는 상당히 직관적이고 대부분 일상적인 단어들로 되어 있었으나, 가끔 상징적인 표현이 섞여 있어서 어디까지 일상어로 받아들이고 어디부터 상징으로 이해해야 할지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것이 연출자와의 대화 시간에 풀어질 줄 알았으나, 해설보다는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던져주는 대화였기에 여전히 해석은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땅거북이 갑자기 웬 가루를 토해냈는데 이것이 빵가루인지 금가루인지 아니면 둘 다 아니라 모래인지 토론하는 장면이다. 모래라면 이것은 무용한 것이다. 그런데 빵가루라면 먹을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으며 금가루라면 팔거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루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지만, 그 정체에 대해 계속해서 추측하고 토론하고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장한다. “내가 전에 먹었던 어떤 빵집의 빵과 똑같은 맛이야! 그러니까 이건 100% 빵을 갈아서 만든 빵가루야!” 또는 “내가 예전에 본 금의 빛깔과 똑같아.”라며 저마다 말을 한다.

 

답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 이것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을 테다. 왜냐하면 답지가 없기 때문이다. 답지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와 저마다의 주장에 흔들리는데 또 남의 말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휘둘리다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가 이상한 삼천포로 빠졌다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가? 우리가 하는 토론들이 가끔 결론 없이 끝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건설적인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불명확한 세상에서 답을 찾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중심을 잡는 법도 어렵고. 또 중심이 무엇인지 아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빵가루일까, 금가루일까? 혹은 바다로 가려는 거북을 따라가야 하는 걸까?


갈라파고스 거북이 자꾸 "바다로 가야 해!" 라고 말하지만, 정작 바다로 가지는 않고 섬 주위만 뱅뱅 돌고 있다. 사람들은 블루 오션인 분야를 찾아 사업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도 정작 블루오션이 뭔지는 모른다.


시계 방향으로 섬 주위를 돌다가 모래를 토하고 반대로 도는 거북처럼, 그리고 바다로 가려고 하면서 정작 바다로 가지는 않는 거북처럼,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혼란 속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5.jpg

 

 

그런데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땅거북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일. 이는 회의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환경 오염에 관해 말하고 깨닫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실천을 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나아간 것 같더라도 어느 순간 파도에 휩쓸려 다시 뒤로 밀려난 것을 알아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만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연출자가 배우들과의 워크숍을 통해서 이 대본을 탄생시켰듯이 함께 하면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까 지치지 말 것. 계속해서 말할 것.

 

 

 

고승희.jpg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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