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화 파헤치기, 카라바조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미술/전시]

악마의 재능을 가진 화가 카라바조의 종교화
글 입력 2023.08.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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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지난 편에서는 악마의 재능을 가진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미소년 그림 한 점을 함께 감상했다. 눈길을 사로잡는 도발적인 소년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카라바조는 이 외에 다수의 종교화도 그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종교화 하나를 감상하며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파헤쳐 보고자 한다.

 

참고로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카라바조의 그림 세 점, <도마뱀에 물린 소년 Boy bitten by a Lizard>(1594-5),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Supper at Emmaus>(1606),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 Salome receives the Head of John the Baptist>(1609-10)을 소장하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그중 두 번째 작품,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이다.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Supper at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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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필자 촬영)

 

 

카라바조의 1606년 작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Supper at Emmaus>는 그가 한창 명성을 날리던 무렵 그려진 종교화로, 카라바조의 종교화 중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카라바조는 그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팬이었던 로마의 귀족 치리아코 마테이(Ciriaco Mattei)를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현재 내셔널 갤러리 32번 방에서 전시 중인 이 작품은 아쉽게도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특별전에서는 볼 수 없지만, 최근 필자가 최근 직접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실제로 보면 어두운 배경에 화려한 조명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생생함이 가득 느껴진다.


그렇다면 과연 카라바조는 어떤 장면을 묘사한 것일까? 아래 성경 구절을 통해 우리는 카라바조가 그리고 싶었던 장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바로 그날 그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약 60스타디온 남짓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중략]... 그들이 가려던 엠마오 마을에 다다르자 예수께서는 더 가시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를 한사코 말렸습니다. “저녁이 다 됐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요. 날이 다 저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려고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상에 기대어 앉아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떼어 그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께서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3-31절)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의 앞에 우연히 나타나 동행한다. 하지만 두 제자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엠마오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그림은 두 제자가 이를 알아채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바로 그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한 제자의 이름은 ’클레오파스(Cleopas)’, 한글 성경 기준 ‘글로바’이며 다른 제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으나 베드로 또는 야고보로 추정한다. 중앙에서 붉은색 옷을 입고 오른손을 정면으로 들어 보이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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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무엇보다도 두 제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알아채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표현한 화가의 재치가 압권이다. 위 그림의 세부를 보면 등을 보이는 한 제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를 뒤로 밀며 벌떡 일어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 쭉 뻗은 목이 그의 놀란 감정을 제대로 보여준다. 게다가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관람자가 더 잘 볼 수 있게 비켜주는 듯한 인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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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오른쪽에 있는 또 다른 제자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다.

 

위 그림의 세부를 보면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놀란 모습이다. 거의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왼팔과 손은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도 저녁 식사 자리에서 펼쳐지는 중대한 광경에 함께 참여하게끔 유도하며, 그림 속 등장인물과 관람자를 하나로 묶어준다.

 

제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해 자신들과 동행할 거라는 상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두 제자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편, 함께 갔던 남성의 정체를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카라바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일요일에 엠마오의 한 여관에서 벌어진 놀라운 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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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그림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세 명 외에 왼쪽에 혼자 서 있는 인물도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면 이 남성은 누구일까?

 

위 그림의 세부를 보면 그는 몹시 놀란 두 제자와는 다르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광배가 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까지 하다.

 

이 인물은 여관의 주인으로 놀랍고 성스러운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교도, 비기독교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두 제자가 식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형성하는 삼각형 구도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인물로, 화가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여관 주인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각형구도.jpg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속 삼각형 구도

 

 

 

수염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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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집중해 보자. 눈썰미가 좋다면 이미 특이한 점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대개 종교화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그린 예수 그리스도는 수염이 없고 말끔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다.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는 종종 수염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렸었는데, 카라바조가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초기 기독교 미술에 관한 관심이 증가해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그렸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해석은 카라바조가 특히 흥미를 느꼈던 선배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참고했다는 것이다. 카라바조는 밀라노와 로마에서 머무르던 시기 레오나드로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연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c.1499-1510)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ement>(1536-1541) 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카라바조는 이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같은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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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도마뱀에 물린 소년>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키아로스쿠로를 능숙하게 사용해 그림의 분위기와 효과를 극대화하는 카라바조만의 기술을 느낄 수 있다. 적당한 어두움과 인물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빛의 대조로 만들어지는 장면은 식탁에서 벌어지는 순간을 더 극적으로 만들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한 빛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정물도 사실적으로 느껴지게끔 한다. 흰 식탁보 위에는 요리된 닭, 빵, 과일바구니, 유리 물병, 도자기가 놓여 있는데, 그 자체로도 매우 세심하고 정교하게 그려졌지만, 빛과 그림자의 효과로 인해 더욱 실제 같아 보인다.


인물을 그릴 때, 카라바조는 구성을 위한 여러 습작과 스케치 없이 오로지 대략적인 가이드에만 의존했다. 이렇게 스케치 연습 없이 바로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 방식은 카라바조의 다른 그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하지만 정물을 그릴 때는 달랐다. 카라바조는 밑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물의 구도와 세부를 더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생명과 봄의 시작을 상징하는 닭이 메인으로 올라와 있는 모습이나, 두 제자 앞에 놓여있는 빵 조각,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석류와 포도가 담긴 과일 바구니는 기독교 만찬과 잘 어우러지며 앞서 살펴본 그림의 의미를 더욱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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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6, 영국 내셔널 갤러리

 

 

하지만 과일 바구니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카라바조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의 학자 조반니 피에트로 벨로리(Giovanni Pietro Bellori)는 카라바조에 관해 쓴 전기에서 과일 바구니에 담긴 과일이 계절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림 속 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봄인데, 과일 바구니에 담긴 사과, 배, 포도, 석류는 모두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이기 때문에 주제와 시기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으로 당시 다른 미술사학자는 가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을 공경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하며 겪은 고난 역시 같은 맥락에서 가을을 상징하는 과일과 어울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그림


 

과일의 종류가 계절에 맞지 않는다 해도 당장이라도 먹을 수 있을 듯한 실감 나는 세부 묘사와 식탁 아래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튀어나온 바구니의 위치는 극적인 장면에 더욱 긴장감을 더해주는 장치다. 지난 편에서 카라바조를 악마의 재능을 가진 화가로, 그의 작품을 스냅사진 같은 그림으로 소개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도마뱀에 물린 소년의 미묘한 표정을 마치 카메라로 순간적으로 촬영하듯 그려낸 화가는 종교화를 그릴 때도 극적인 장면을 순간 포착했다. 그리고 그림 일부만 보아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여러 상징과 스토리에서 카라바조를 왜 위대한 화가로 부르는지, 그리고 그의 그림이 왜 4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평가받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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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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