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당신의 안녕을 바라며

어느 여름날에 보내온 시간의 조각
글 입력 2023.08.2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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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H에게


안녕하신가요? 저는 10년 전의 당신입니다. 누군가 당신의 안녕을 바라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전히 많은 외로움을 간직하고 계시는지, 아직도 지나간 시간을 보내주지 않으신지 걱정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당신의 행복을 바랍니다. 이 글은 당신을 붙잡는 과거에 대한 위로이자 당신에게 바치는 나의 유일한 고해입니다.


10년은 긴 시간이겠지요. 강산도 변한다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내게 10년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과거는 토막 났고 나는 끝내 그것을 고치기 포기했으니까요. 나는 그를 후회해요. 더 발버둥 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합니다. 10년 후의 내가 여전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만약 어쩔 수 없다면 그 후회만이라도 덜어주고자 합니다. 당신의 10년 전 토막을 보존할게요. 당신이 잊더라도 이 글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현재를 소개해줄게요.


나는 때로 혼자인 듯하지만 주변에 소중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아요. 사람에게 실망하고 기대를 거두는 일에 익숙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끊임없는 노력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아도 아직은 나름 잘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어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이것은 아마 바뀌지 않을 테지요. 지나간 시간을 되찾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과거를 바라보는 행동은 고치고 있습니다. 과거를 놓는 일을 연습하는 중이에요.


과거를 놓으면서 점차 비워지는 시간을 채우는 방법은 근래 들어서야 깨달은 것 같아요. 노래를 듣고 방을 꾸미고 글을 씁니다. 가끔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영화도 봐요. 나의 세상을 먼저 채우고 있습니다. 남들만 바라보며 살기에는 지금의 저는 청춘이니까요. 누구보다 저의 안녕을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곁에는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이가 많기를 바라고 그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당신께서 깨닫길 바랍니다. 없다고 하더라도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당신의 안녕은 제가 가장 간절히 원하니까요.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는지도 궁금하네요. 10년 전 당신은 그랬어요. 글을 쓰면 감정이 문장에 저장되는 것 같다고, 그 시간을 남겨둘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제된 글도 좋지만 감정에 등 떠밀리듯 마음이 흘러넘치는 글을 쓰기 좋아했습니다. 때로는 그런 글에서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생각했거든요. 좋은 문장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그저 곱씹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겨서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여전히 힘들 때면 ‘소로’를 찾는지 궁금합니다. 여전히 심규선의 목소리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요. 그녀의 말대로 지금 나는 소로를 찾아 헤매고 있어요.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을 위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이 날 사랑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그만큼 당신의 시간도 사랑하길 바라요. 내가 당신께 고해야 할 죄가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요. 나를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사랑하기만 하세요. 나를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는 당신의 현재를 응원합니다. 전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저의 현재를 사랑하니까요.


그럼, 당신이 안녕하길 바라며.


2023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10년 전 당신, H가.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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