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Leçon 3 : 낯선 언어를 배우는 아름다움과 효율성 [문화 전반]

프랑스어, 한국어와는 너무 다른 너란 언어
글 입력 2023.08.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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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France, Minolta x 300

 

 

프랑스어 세 번째 수업 시간. 첫날에는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지만 오늘부터 배운 표현을 이용해서 프랑스어로 자기소개하기로 했다. 아직 공부를 시작한지 한 달이 안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는 이름, 국적, 직업뿐이다.

 

Je m'appelle (이름) : 제 이름은 ~입니다.

Je suis coréenne : 저는 한국 사람(여자)입니다.

Je suis employée : 저는 회사원입니다.

 

지금은 단 세 문장이 전부인 빈약한 자기소개가 배우는 표현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다양한 문장으로 채워지겠지. 프랑스어로 좋아하는 영화와 책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은 정말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이 마치고 나오니 J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남자친구 J는 프랑스인으로 한국살이 7년 차다. 최근에 프랑스 회사로 이직해서 원격으로 일하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자유롭다. 내가 프랑스어 수업이 있는 월요일에는 근처에서 일을 하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 

 

J를 보자마자 신나게 인사했다. 마침 수업 시간에 남자친구(petit ami)라는 단어를 배운 참이었다. 

 

"안녕 my petit ami!"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가 뒤죽박죽인 엉터리 문장을 말하면서도 해밝은 내 표정을 보고 J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오늘 수업에서 무슨 표현을 배웠는지 J에게 재잘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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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France, Minolta x 300

 

 

한국어와 프랑스어는 달라도 너무 다른 언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모든 명사와 형용사에 여성/남성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어를 외울 때 단어의 철자와 뜻과 함께 성별도 함께 암기해야 한다. 왜 언어에 성별을 구분해서 쓰는 걸까. 구글링을 열심히 해봐도 원래부터 그렇다는 이유 말고는 굳이 성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에는 없는 관사(명사 앞에 놓여 단수, 복수, 성, 격 따위를 나타내는 품사)가 프랑스어에는 6개나 된다. 영어에 관사는 a, an, the 3가지 밖에 없는데 프랑스어는 관사에도 남성/여성과 단수/복수를 구분하기 때문에 le, la, les, un, une, des 이렇게 6개이다.

 

프랑스어에서 관사가 중요한 이유는 명사의 복수 유무가 관사를 통해서 구분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에서 명사의 복수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어와 비슷하게 단어의 끝에 s를 붙이지만 발음은 되지 않는다. 단수/복수 명사의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동일하기 때문에 앞에 붙은 관사의 종류로 구별한다.

 

livre 하나의 책 / livre책들 > 둘 다 발음은 동일

un livre 하나의 책 / des livre책들 / les livre그 책들 > 앞에 붙은 관사로 구별

 

영어의 관사도 매일 빼먹는 나. 프랑스어에 비하면 영어는 쉬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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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France, Minolta x 300

 

 

처음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했을 때 J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프랑스어는 한국어와는 너무 다른 언어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데 차라리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영어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나는 그 말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너의 모국어를 배우고 싶다는데 응원해줘야하는거 아니냐고 섭섭해했다. J는 그저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걱정되서 이야기하는거라고 했지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다가  J에게 물었다.

 

나 : 도대체 단어에 성별이 왜 필요한 거야?

J : (어깨를 으쓱하면서) 글쎄 나도 몰라. 별 필요는 없는거 같아.

나: 명사에 꼭 단수/복수 구분을 해서 써야 해? 한국어처럼 없어도 별로 안 불편하잖아?

J : 그럼 '책상 위에 책이 있다'라고 말할 때 책이 한 권인지 여러 권인지 어떻게 알아?

나: 책이 있는 게 중요하지 한 권인지 여러 권인지 있는지가 중요해?

J : 중요하지. 어쨌든 문장에 정보가 하나 더 있는 거잖아.

나: 그럼 복수형으로 만들려고 s를 붙여놓고 왜 발음은 안 해?

J: ...

나: 정말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니야?!?

 

J는 네가 배우고 싶다고 해놓고 왜 불평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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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France, Minolta x 300, 2017

 

 

배우는 입장에서야 어렵지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언어다. 내가 한국어로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조사나 받침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지는 않으니까.

 

취미도 자기계발의 일종으로 여겨지면서 퇴근 후에도 각종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요즘 시대에 아름답다는 이유로 프랑스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지만 어쩐지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아무도 읽지 않는 일기를 쓰는 일들이 그렇듯이.

 

누군가 요즘 세상에 시가 무슨 필요가 있고 일기를 쓰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물으면 "오늘 시를 읽어서 저녁을 안 먹어도 배불러요. 식비가 만원 절약되었어요."라고 받아칠 재간은 없다. 다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뭉술한 대답만 할 수 있을 뿐.

 

아무리 복잡하다고 떼를 써도 프랑스어는 그냥 프랑스어다. 프랑스어로 쓰인 아름다운 문장들은 그냥 가만히 그곳에 존재한다. 프랑스 영화 속 배우들이 뱉은 대사는 나에게 닫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효율성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천천히 그 곳에 다가가는 일 뿐이다.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효율성은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그 어렵다는 프랑스어 시제는 아직 배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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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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