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꿀벌(Bee)이 되었을 때 발견한 플랜B - 'B BE BEE' 성수연 배우

글 입력 2023.08.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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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누군가를 연기하기 위해 그 인물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짧은 시간이라도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존의 연기법들은 누군가가 되어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기하는 대상이 '누군가'가 아니라 '무언가'일 때는 어떨까? 개, 고양이, 새, 나무, 로봇, 인공지능... 인간이 아닌 존재, 즉 비인간존재를 연기하려면 배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인간의 몸을 갖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라도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일은 가능할까? 연극 [B BE BEE]는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한다.

 

일반적인 연극에서의 연습이 무대 뒤 배우의 몫인 것과 달리, [B BE BEE]에서는 꿀벌을 연기하기 위한 연습 자체가 연극의 주된 내용이 된다. 이번 작품의 출연자이자 창작자인 배우 성수연은 꿀벌을 연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관객과 공유한다. 그 시도들은 좁게 보면 한 배우의 연기법에 대한 고민이지만, 넓게 보면 수많은 비인간존재와 함께 살아갈 새로운 방법 즉 '플랜B'를 찾자는 제안이다. '인류세'라는 단어와 챗GPT 같은 AI가 같이 등장하는 시대, 우리는 이전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이 '되어보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기나긴 고민과 연습 끝에 배우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지난 15일, 성수연 배우를 만나 [B BE BEE]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았다.

 

 

 

어떻게 꿀벌을 연기할 수 있을까?


 

성수연 프로필.jpg

 

 

배우님, 안녕하세요. 오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B BE BEE]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로봇이나 동물처럼 비인간 역할들을 연기할 일이 몇 차례 있었어요. 그러면서 하게 되는 배우로서의 고민들이 있었죠.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인간의 방식대로 생각하는 내가 인간 아닌 존재를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연극은 어차피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보는 행위인데 비인간 역할을 인간 중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건 무엇인지. 이런 질문 자체가 말이 되는 건지도요.


그러다 작년 우란문화재단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그 고민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작년에는 사물, 동물, 식물 등 인간이 아니라고 명명되는 존재 전반을 보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올해는 아예 특정한 비인간존재 하나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B BE BEE]가 만들어졌어요. 꿀벌이라는 비인간존재를 연기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하고 어떤 시도를 할 수 있는지 배우로서의 고민을 펼쳐보는 공연입니다.

 

 

연극을 보며 왜 꿀벌이었는지 궁금했어요.


처음에는 고양이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원래부터 좋아하고 인간에게도 친숙한 존재보다는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존재가 작품의 취지에 더 맞겠더라고요. 낯설 뿐만 아니라 제가 혐오하던 존재,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해주는 존재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곤충이라는 대답이 나왔어요. 바퀴벌레를 생각했다가 거기까지는 용기를 못 내서 꿀벌로 정했습니다. 더불어 요즘 꿀벌이 점점 줄어든다는데, 관련된 논의를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꿀벌’이 ‘bee’에서 ‘비인간’, ‘플랜B’로 연결되고 거기에 배우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들어가며 재미있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작년부터 ‘비인간 연기하기’에 초점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비(非’)를 말할 일이 참 많아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공연에서 다룰 비인간존재가 꿀벌로 확정된 다음부터는 ‘bee’까지 더해져 관련된 말장난이나 생각들이 더 구체적으로 빠르게 확장되었죠. 한편으로는 인간 아닌 존재의 세계를 본다는 건 결국 지금 나의 삶을 재고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좀 하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위해 꿀벌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꿀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그러한 변화가 행동에 영향을 미쳤는지도요.


원래 징그러워하고 싫어했는데, 큰 변화가 있었죠. 이렇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게 놀라웠을 정도로요. 꿀벌로 대상을 정한 후에 재단에서 꿀벌을 연구하는 시민과학자 조수정 선생님을 소개해주셨어요. 만나서 실제로 벌을 자세히 보고 사진도 찍고 공부하다 보니 1~2주 만에 꿀벌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지더라고요. 이제는 바퀴벌레, 곱등이 사진도 다 볼 수 있게 됐어요.


또 곤충, 벌레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인데 집이 천변이라 여름철에 날벌레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이제는 ‘왔구나. 잘 있다 가라.’ 이런 마음이에요. (웃음) 무작정 잡는 대신 그냥 그 존재를 좀 지켜보게 되었어요.

 

 

 

비인간존재와 더불어 살아가기


 

[B BE BEE] 공연사진 (6).jpg

 

 

연극을 준비하며 꿀벌을 알아가고 꿀벌을 연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땠는지도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벌을 만났을 때의 순간을 기억해두려 애썼고, 여러 레퍼런스를 접하며 꿀벌의 특징을  유심히 봤어요. 김정, 우범진 배우와 함께 ‘꿀벌연기워크숍’을 하며 여러 움직임을 시도해보고, 꿀벌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려는 노력도 했고요. 그렇게 작은 발견과 경험이 계속 추가되고, 스쳐 가고, 쌓이다 보면 인간인 내가 꿀벌에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연기에서도 가져올 수 있는 요소가 있었어요. 실제로 초반에 10가지가 넘는 꿀벌 연기를 짧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요. 대부분 꿀벌을 의인화한 것에 가까운 연기고, 그중에는 제가 꿀벌이 주인공인 극에서 꿀벌 역을 맡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방식의 연기도 있죠. 선택하지 않았을 방식이니 그냥 뺄 수도 있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해봐야지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고 믿었어요. 실제로 그 과정을 거치며 인간이 꿀벌을 표현할 때 꿀벌의 어떤 특성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공연을 만들며 처음 생겨났던 질문이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비인간 역할을 연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셨어요. 배우님은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으셨나요?


인간이 아직 잘 모르는 존재를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연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여러 측면과 각도에서 그 대상을 만나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연기는 그중 서로가 맞닿는 짧은 몇 순간들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저희 팀 내부에서는 그걸 ‘콜라주’라고 불렀어요. 작은 부분들, 짧은 순간들을 모으는 거죠. 물론 정해진 답이 아니기에 앞으로도 변할 테고, 계속 탐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을 보며 이 연극 자체가 우리가 비인간존재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과정이자 하나의 연습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맞아요. 작년에 레지던시에서 썼던 제목도 <연극의 연습, 연습의 전시―(비)인간 편>이었고, 이번 공연 역시 연습이라는 단어를 핵심으로 삼으려 했어요. 본래 연습이란 공연을 올리기 전의 과정이지만 저는 연습하는 순간 자체에도 분명히 공연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은 관객에게 어떻게든 닿는다고 믿어요.

 

 

극에서 연습이라는 단어를 ‘뿌비뿡’으로 바꿔서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단어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연습이라는 단어를 하도 많이 쓰다 보니 갑자기 연습이라는 단어가 너무 지겨운 거예요. (웃음) 그냥 농담으로 아무 단어나 말해 보다가 ‘뿌비뿡’이 나왔어요. 혹시 더 좋은 말이 있을까 해서 챗GPT한테 물어보기도 했는데 제가 처음에 생각한 게 제일 낫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챗GPT와 인공지능 보이스도 연극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 살아갈 비인간존재는 동식물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도 포함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들과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비인간 연기하기’로 출발한 프로젝트라 창작 과정에서도 챗GPT 생각을 많이 했고, 실제로 여러 가지를 물어봤어요. 비인간 연기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냐, 꿀벌을 연기하다 보면 꿀벌이 될 수 있냐, 인간이랑 꿀벌이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이런 이상한 질문까지요. 그러면서 챗GPT가 잘못되고 이상한 정보도 많이 알려주지만 빠르고 편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렇게 된 이상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 같이 살아가되 인간이 뇌를 다르게 쓰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플랜B, 인간 뇌에 무언가 다른 길을 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플랜B를 고민하다



[B BE BEE] 공연사진 (4).jpg

 

 

연기법에 대한 고민이 전면에 나오는 작품이다 보니 배우가 아닌데도 연기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는데요, 오랫동안 연기를 해오신 배우님에게 연기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웃음) 분명한 건, ‘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도 곧 허물어질 거라는 사실이에요. 배우로서 정진하기 위해서 배우 본인만의 훈련 방법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존재를 연기하기 위한 접근법은 배역마다 매번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 연기법이라는 것 자체가 계속 변해간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배우들이 배워오던 여러 가지 연기 훈련법이 있는데, 그게 ‘비장애인 시스젠더’를 기본값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느껴요. 그런 훈련법이 무작정 나쁘다고 하긴 어렵지만, 몸을 다르게 운용하는 배우들이 해볼 수 있는 훈련법은 없을까 생각하게 되죠. 아직 체계적으로 나온 건 많지 않지만 그걸 개발하기 위해 애쓰는 팀도 있어요. 또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거예요.

 

 

말씀을 들으니 지난 겨울 <틴에이지 딕>에서 뇌성마비 학생 역할을 실제 장애가 있는 배우가 맡았던 게 떠오르기도 해요. 그 작품을 보며 장애가 있는 인물을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직접 작품을 창작하는 것만큼 드라마극에서 특정 인물을 맡아 연기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동시에 거기에는 위험한 지점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드라마 속에는 특정한 당사자성이 강한 인물도 종종 있잖아요. 저는 꼭 배우가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커튼콜 시간이 되어 배우가 극중 인물과는 무관한, 단지 배우로서 기술을 잘 활용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죠. 그때, 객석에 어쩌면 정말로 그 드라마 속 인물과 유사한 일을 겪거나 유사한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확 소외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언젠가부터는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보다는 계속 생각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연기에 관해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연극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기후재앙이 닥쳐오고 인간성이 사라져가는 지금의 세계에서 연극을 한다는 건 무엇이고 어떤 소용이 있을까 하고요.


연극하는 동료들과도 얘기를 하다가 반 농담으로 ‘그래서 진짜 연극이 다 무슨 소용이냐’ 같은 얘기가 나오곤 해요. 기운이 빠지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에서 머물면 그게 오히려 나이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극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해보려고요. 대신 적당히 하면 안 돼요. 연극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도 나는 이 일을 하는 거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죠.


물론 제가 느낀 문제의식만으로 연극을 할 수는 없어요. 연극으로 사회적인 발언만 할 수도 없고요. 저는 배우이기도 하니까 캐스팅되는 작품에 맞는 연기를 할 것이고, 그런 작업도 매우 좋아해요. 다만 내가 사는 이 세계를 계속 들여다보고 어떤 곳인지 인식하며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했습니다. 그게 제가 지금 이 세계에서 연극을 하는 방법 같아요.

 

 

앞으로 예정된 작업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배우님이 창작자로서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일단 배우로서는 두산아트센터에서 하는 <러브 앤 인포메이션>이라는 공연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창작자로서는 이번 공연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나면 또 다음 질문이 생길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팀 내에서 많은 대화를 했어요.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이런 시대를 만들었고, 이 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글로 읽을 때는 그렇구나 하는데 정말 몸으로 이해하려 하면 질문이 이어지는 거예요.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뭐지?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고, 내가 인간인데 그게 가능한가? 안다는 게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앞으로도 그 고민을 계속하면서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작품들도 머지않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을 보러 오신 관객분들한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굳이 배우가 아니더라도 질문을 하게 되는 듯해요. 특히 올여름은 너무 더우니까 문득 ‘이거 진짜 큰일 나겠는데’ 싶은 거죠. 이 작품은 그런 고민을 저의 방식대로, 나름대로 길을 찾으려 애쓰며 만든 작품이에요. 극장을 찾아 주시고 제 고민을 나누는 시간에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제공: 우란문화재단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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