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들이 한 자리에: 기타리스트 박규희 & 마르신 딜라

글 입력 2023.08.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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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모든 것을 계획하는 대로 하게 되지는 않는다. 가끔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즐거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는 법이다. 음악회를 다닐 때에도 그렇다. 내가 눈여겨 본 공연 하나가 각인되고 나면 다른 무대를 상대적으로 놓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이 닿아 공연장까지 찾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 8월 중순에 국내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인터내셔널 기타 마스터즈 페스티벌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인터내셔널 기타 마스터즈 페스티벌은 1일차와 3일차에는 공연이 이루어지고, 2일차에는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는 형태로 페스티벌이 구성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참석이 가능한 일정은 1일차인 8월 18일 금요일의 공연이어서, 이 날의 무대에 참석했다. 국내 관객들이 클래식 기타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지 미처 몰랐는데, 금호아트홀 연세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인터내셔널 기타 마스터즈 페스티벌의 첫 번째 무대를 찾았다. 기타리스트 박규희와 쿠핀스키 기타 듀오, 기타리스트 마르신 딜라가 나온 이 날의 무대에 관객들은 큰 기대감을 보였다. 객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도 기대감에 부풀었다.


 



PROGRAM


H. Villa-Lobos Prelude No. 1, No. 2, No.3 (기타리스트 박규희)

H. Villa-Lobos Choros No. 1 (기타리스트 박규희)

H. Villa-Lobos Etude No. 12 (기타리스트 박규희)


J. S. Bach Chaconne (기타리스트 박규희)


A. Ginastera Sonata (기타리스트 박규희)


INTERMISSION


F. Chopin Waltz Op. 64 No. 2 (쿠핀스키 기타 듀오)


H. Villa-Lobos Concerto for Guitar & Orchestra 

*arranged for guitar trio (마르신 딜라, 쿠핀스키 기타 듀오)

 




이번 공연은 자그마한 클래식 기타 페스티벌 같은 무대였다. 한 무대에 기타리스트 박규희를 필두로 쿠핀스키 기타 듀오와 기타리스트 마르신 딜라가 모두 자리에 서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부는 그 중에서도 기타리스트 박규희에게 온전히 할애되어 있었다. 1부에서 총 일곱 곡을 연주하게 된 기타리스트 박규희는 무대 위로 올라서서 인삿말을 건넨 다음, 클래식 기타 작품들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관객들을 위해 짧게 자신이 연주할 곡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부에서 박규희가 연주할 일곱 작품 중 다섯 곡이 빌라 로보스의 작품이었다. 바로 이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는 브라질 음악가다. 원래 그는 첼로 작품들을 주로 작곡했었다고 하는데 전설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세고비아를 만난 후로 그에게 강렬한 영감을 받아서 클래식 기타 작품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빌라 로보스는 프렐류드 5곡, 민속적인 음악요소를 담은 쇼로스를 여러 곡 작곡했고 무엇보다 에뛰드를 쇼팽처럼 12곡 작곡했다. 그 중에서도 이번 무대에서는 프렐류드는 1~3번, 쇼로스는 1번 그리고 에뛰드 마지막 12번이 연주되었다.


빌라 로보스의 프렐류드는 짤막한 곡 속에 남미풍의 낭만적인 정서가 아름답고도 강렬하게 담겨 있었다. 프렐류드 1번은 마치 노을 지는 저녁을 연상시키는 곡이었다. 그 낭만서린 선율 뒤로 이어지는 좀 더 기교어린 패시지는 마치 갑자기 밀려드는 먹구름처럼 느껴졌다. 프렐류드 2번은 1번보다 좀 더 짤막하다. 하지만 낭만 어린 즐거움이 부각되는 전주곡이었다. 프렐류드 3번은 이 날 연주된 프렐류드 중 가장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훨씬 뉘앙스 어린 도입부에서부터 점점 데크레센도 되어가는 주제 선율이 점점 더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뒤이은 빌라 로보스의 쇼로스는 민속 음악 요소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래서 좀 더 즐겁고 리드미컬한 선율을 느낄 수 있었다. 프렐류드에선 볼 수 없었더 태핑까지 가미되어서 더욱 흥미롭고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에뛰드는 듣자마자 바로 에뛰드인 걸 알 수 있었다. 연습곡답게 왼손이 보여주는 현란한 운지법이나 오른손이 보여주는 주법을 골고루 기교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일전의 작품들에 비해 전적으로 기교가 부각되어서 같은 빌라 로보스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었지만, 강렬한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빌라 로보스의 작품 다섯 곡을 연이어 연주한 다음, 기타리스트 박규희는 바흐의 샤콘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파르티타 2번 라단조 BWV1004의 샤콘느를 클래식 기타 버전으로 들려주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선율로 주로 듣다가 클래식 기타로 들으니 익숙하면서도 다르게 느껴졌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에서는 더블 스토핑으로 화음 처리가 되면서 미묘한 시차를 두어 서정성이 극대화되던 구간들이 기타 연주로는 화음으로 딱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박규희의 연주로 듣는 샤콘느에는 바흐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그 서정성이 가득해서 매력적이었다.


1부의 마지막 작품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의 소나타였다. 히나스테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로, 빌라 로보스와 마찬가지로 남미의 작곡가다. 기타리스트 박규희의 설명에 따르면 히나스테라는 기타 작품으로는 소나타 한 곡만 남겨서, 기타리스트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레퍼토리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히나스테라의 작품은 소나타라는 이름과 대비되게 구성은 매우 현대적이었다. 듣자마자 도입부부터 아주 이색적이었다. 화성을 쓰는 방식, 선율을 전개하는 방식, 현을 짚고 뜯는 방식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게 없었다. 기타의 바디를 두드리거나, 기타 넥의 완전 상단부인 헤드스톡의 현을 뜯는다거나, 현 전체를 손으로 덮어 치는 등 다양한 주법이 보여서 듣기에도 보기에도 현혹되는 구간이 많았다. 무엇을 그려내는지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눈부신 기교들이 가득한 곡이었다. 쉽지 않은 그 곡을 암보한 채로 연주하면서 변화무쌍한 히나스테라의 얼굴을 보여준 박규희의 연주에 깊게 몰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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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후, 2부는 기타리스트 박규희가 아니라 쿠핀스키 기타 듀오와 마르신 딜라만 무대에 올랐다. 먼저 2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쿠핀스키 기타 듀오였다. 폴란드 출신의 다리우스 쿠핀스키가 에바 쿠핀스키 부부가 결성한 기타 듀오다. 이들은 최초 계획으로는 쇼팽의 왈츠 64-2와 화려한 대왈츠 18-1을 연주하고자 했다. 그런데 실제 공연에서는 쇼팽의 왈츠 64-2만 연주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변경되었다.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을 레퍼토리들이지만 공연 시간을 감안해 아마 뺀 것 같았다.


쇼팽의 왈츠 Op. 64 No. 2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한 레퍼토리다. 쇼팽의 피아노 원곡은 한 명이 연주하는 버전이지만 쿠핀스키 기타 듀오는 두 사람이 연주해야 했기에, 다리우스와 에바가 서로 주 선율과 반주를 주고 받았다. 처음에는 다리우스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에바가 왼손 반주부를 맡았다. 이후 전환되는 패시지에서는 언제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에바가 주선율로 교체해 연주했다. 쇼팽의 유려한 루바토와 매혹적인 아르페지오를 두 사람이 나눠서 맡고 한 사람이 하는 듯한 연주로 들려주는 게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쿠핀스키 기타 듀오의 연주는 마치 한 사람의 연주마냥 자연스러웠다. 아름다운 끝맺음까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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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부의 마지막 무대로, 마르신 딜라와 쿠핀스키 듀오가 선보일 빌라 로보스의 기타 콘체르토가 막을 올렸다. 빌라 로보스 기타 콘체르토 원곡은 클래식 기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버전이지만 이번 무대에서 기타 트리오로 편곡되어 연주되었다. 원곡을 들을 기회 없이 바로 본 무대를 보게 되어서 어떻게 편곡되었을까 궁금했는데 다리우스 쿠핀스키가 고음부를, 에바 쿠핀스키가 베이스를, 그리고 마르신 딜라가 솔리스트 역할을 맡아 연주되었다.


빌라 로보스의 기타 협주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연주 시간은 그리 긴 편이 아니지만, 협주곡 치고 짧은 분량 안에 4악장이 구성되어 있으며 이 안에 다양한 매력이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1악장에서부터 에너지 넘치고 남미의 향취가 느껴지는 모티브가 제시되었다. 그런가 하면 2악장에서는 안단티노는 한결 차분해진 템포 속에서 선보이는 구조적인 전개와 자연스럽게 전조되는 일련의 흐름이 돋보였다. 1악장처럼 노래악장도 민속적인 요소를 넣어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1악장의 강렬함과 대비되는 2악장에서 오히려 더 촘촘한 구조를 보여주면서 이후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뒤이은 3악장에서 드러난 마르신 딜라의 카덴차는 정말 숨을 멈추고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온전히 한 악장에 할애되어 있는 엄청난 기교와 그 속에 녹아있는 남미의 열정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기타리스트 박규희가 20대 때에 마르신 딜라의 연주를 보고 그가 나오는 페스티벌들을 두루 다니며 공연을 보았다고 했는데, 왜 그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르신 딜라의 연주가 보여준 흡인력은 이번 무대에서 가장 강렬했다. 마지막 4악장은 앞선 세 악장에 비하면 강렬함은 덜하다. 피날레에 기대할 법한 화려한 음악적 구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교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마르신 딜라와 다리우스, 에바 쿠핀스키의 손끝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콘체르토 치고 길지 않은 곡이지만 이국적인 전개의 선율과 더불어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운 음색과 놀라운 기교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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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소리에 기타리스트 박규희를 포함한 네 연주자가 모두 다시금 무대 위로 나섰다. 전체 인사를 다시 한 번 하는 게 아니라, 콰르텟으로 앵콜을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연주한 곡은 루이지 보케리니의 서주와 판당고 G.448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곡이었지만 다시 한 번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로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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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태껏 클래식 기타 공연을 한 번도 안갔을까. 이렇게 놀라운 작품들이 많고, 클래식 기타 연주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여태 두루 즐기지 못한 시간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졌다. 그만큼 기타리스트 박규희와 쿠핀스키 기타 듀오, 마르신 딜라가 전해 준 클래식 기타 연주는 아름답고 놀랍고 또 매혹적이었다. 또한 클래식 기타로 이렇게 작은 페스티벌 형태의 공연을 기획한 것도 좋았다. 기타리스트 한 명의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앙상블을 구성하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유명한 레퍼토리들을 클래식 기타 버전으로 편곡한 것을 듣는 것도, 기타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듣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선율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때까지 이번에 박규희와 쿠핀스키 듀오, 마르신 딜라가 들려주었던 레퍼토리들을 다시금 들어보면서 기타의 낭만에 취해야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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