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편집숍 이야기 1. [공간]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곳
글 입력 2023.08.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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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서울 동대문 근처에 위치한 대형 편집숍에서 근무 중이다. 같은 건물에서 전시 및 세미나를 주최하고, 관광지 근처에 있어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손님도 많이 오는 곳이다. 일한 지 5개월 차가 되는 지금, 이곳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흥미로운 일이 많다. 그래서 시리즈로 글을 작성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리하여 <편집숍 이야기>를 기획하였다. 편집숍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그 곳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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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매를 불러오는 강력한 힘은 바로 귀여움이다


 

이곳에서는 자주 다른 기업들과 협업을 한다. 지난 5월에는 한 대기업 캐릭터와 우리 물건의 합작을 진행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9시간 동안 점심과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앉아 있는 시간이 단 1초도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구매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귀여워서다. 이벤트성 출시 물건의 실용성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꿰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우선 캐릭터 얼굴이 인쇄된 귀여운 유리컵을 하나 집어 든다. 그러고는 여기에 맥주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내고 하나를 더 가져와 두 개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물건을 사용하겠다는 계획보다 귀여운 것을 구경하며 얻는 설렘과 구매 당시의 행복이 가장 핵심인 듯 보였다.

 

귀여움은 불확실성도 이겼다. 제품 중에 랜덤 피규어 박스가 제일 인기가 많았다. 어떤 피규어가 나올지 모르고 더욱이 자신이 원하는 피규어가 나올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구매하였고, 그 상품은 행사 기간 압도적인 매출 1위를 기록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니어도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라고밖에 추측할 수 없었다. 귀여움은 불확실성을 떠안게 하고 확률은 기대를 만드나 보다.

 

 

 

# 100명의 사람, 무한개의 취향


 

외국인 관광객분들이 원하는 상품이 품절일 때 내가 다 속상하고 안타깝다. 낯선 타국에서 발견한 자신 취향의 물건이 출국할 때까지 눈앞에 얼마나 아른거릴까. 그래서인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물건이 없을 때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추천해 주는 것이 일하는 시간 내 작은 행복이었다.

 

어느 날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관광객이 핸디 노트 재고를 물었다. 해당 디자인은 다 팔린 상태여서 평소와 같이 비슷한 크기의 다른 디자인 핸디 노트를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더니 원래 자신이 골랐던 노트의 샘플 상품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매장에 디스플레이 되어있던 샘플이었다.

 

색이 다 바랜 표지와 내부는 이미 낙서로 가득해 너덜너덜했다. 나는 정말 놀라 재차 물었다. 그러자 나를 위해 쉬운 영어로 대답했다. “Drawings in this book are so cute and funny, adorable pages”.

 

한국인 판매자의 시선으로는 낡은 샘플 물건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귀여운 한국어로 가득 차 있고, 방문한 사람들의 재미있는 기록이 담긴 책이었던 것이다. 저마다의 시각으로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모두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단순히 비슷한 물건을 알려주기보다 구매 이유와 원래 사려고 했던 제품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물은 후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취향이란 건 더 세심하고 개인적인 영역인 것 같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가진 취향은 아마 무한개이지 않을까?

 

 

 

#스테디셀러의 비밀


 

우리 매장에서는 물건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바꾼다. 매대에 전시를 해놓기도 하고, 선반에 둘 때도 있다. 배치가 달라지더라도 꾸준히 잘 팔리는 것과 위치에 따라 현저히 판매율이 차이 나는 것이 있다. 둘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징이 궁금했다. 손님이 적어 여유가 있을 때마다 멍하니 이유를 생각했다. 전자는 ‘대체 불가능’, 후자는 ‘눈높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꾸준히 잘 팔리는 물건에는 소주잔, 한국 전통식으로 디자인된 플레잉카드(트럼프카드)가 있다.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소주잔의 경우 동양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서양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술잔이다. 또한 작은 크기로 내외국인 상관없이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구매하기 아주 탁월하다. 조선 왕과 왕비의 그림이 그려진 플레잉카드는 평소 카드로 자주 게임을 하는 외국 문화에 한국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그 어떤 물건도 대체하기 어려운 한국 기념품이 된다.

 

배치에 따라 판매율이 높아진 물건에는 캐릭터 대형인형, 형형 색깔의 비누가 있다. 매장에는 가족 단위 손님도 많이 오는데, 5세 미만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눈높이에 있는 디스플레이로 직진한다. 그래서 인형은 아이들의 눈높이보다 아래나, 위에 있을 때보다 비슷한 위치 상에 있을 때 몇십 배 더 많이 팔린다. 진한 파랑, 분홍, 노랑 등 눈에 띄는 색의 비누들은 아이들이 보자마자 손에 쥐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면 부모님들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비누도 판매량이 약간 늘었다.

 

배치에 따라 판매율이 낮아진 물건에는 꽃병이 있었다. 이건 도저히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하루에 한 개씩은 꼭 팔리던 제품이 이제는 일주일에 하나 나가기도 벅차 보였다. 어느 날 매장 오픈을 위해 매장 청소를 하다가 그 꽃병을 깨뜨리고 말았다. 선반에서 떨어져 바닥에 파편이 가득했다. 그때 조각을 주우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광이었던 꽃병은 위에서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예쁘게 빛이 났고, 전에 전시 되어있던 평평한 매대에서 내려다보면 그 빛과 함께 꽃병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5층 선반의 3층으로 옮겨진 지금 위에서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눈높이보다 위에 있어 빛의 효과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닥에 깨진 파편은 다시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판매와 소비는 단순히 물건의 절대적인 특성보다 공간, 상황 등의 상대적인 요소들의 영향이 매우 크다. 이곳에서 일하며 더욱 많이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여기에서 꼭 찾아갈 수 있도록 상품과 배치에 더 애정을 쏟아야겠다고 이 글을 쓰며 한 번 더 다짐해 본다.


 

[박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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