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잉홈프로젝트 - 신(新)세계 & 볼레로: 더 갈라

세계로 뻗어나간 국내 아티스트 정예군단의 화려한 홈커밍
글 입력 2023.08.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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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아티스트들과 한국을 사랑하는 해외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창단한 프로젝트형 오케스트라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첼리스트 김두민, 호르니스트 김홍박,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등을 필두로 2021년 창설되었고, 매해 조금씩 다른 단원 구성으로 획기적인 프로그램과 함께 한국 관객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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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프로젝트 공연을 기다리면서, 포스터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홍보물에 쓰인 위 사진을 많이 보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무대 위로 오를 때의 시선에서 찍힌 듯한 이 사진은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있다. '고잉홈'이라는 이름과 오케스트라의 창단 배경을 알고 봐서 그런 걸까. 어쩐지 고향에 돌아와 따뜻한 환대를 받는 단원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권 클래식 음악가들은 일찌감치 클래식 음악의 본고지인 서양권 국가에 유학을 가거나 커리어를 쌓는다. 최근에는 국내 음악 교육 기관도 훌륭하고 국내파 출신들의 활약도 두드러지고 있는 추세지만, 서양의 고전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궁극에 나고 자란 국가를 떠나는 선택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잉홈프로젝트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마치 '홈커밍' 파티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이들의 마음은 올해 기획된 3일 공연 프로그램 곳곳에 담겨있다. 첫 날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나 셋째 날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는 작곡가들이 타지에서 음악 생활을 하며 고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쓴 곡들이다.

 

올해 나는 첫날 8/2 [신(新)세계]와 둘째날 8/3 [볼레로: 더 갈라]를 관람했다.

 

 

 

8/2 [신(新)세계]



공연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무대 구성이 보통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우선 그랜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뒷편 타악기들과 함께 왼쪽에 있었고 (타현 악기라서 타악기들과 함께 위치한 걸까?), 스네어 드럼과 실로폰 등 전통적인 교향곡 공연에서 보기 힘든 온갖 종류의 타악기들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도 지휘자 단상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고잉홈프로젝트 공연은 대부분 지휘자 없이 진행된다.

 

<프로그램>

 

레너드 번스타인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심포닉 댄스

L. Bernstein - Symphonic Dances from "West Side Story"

 

조지 거슈윈 - "랩소디 인 블루"

G. Gershwin - "Rhapsody in Blue"

 

피아노 | 손열음

 

- 휴식 Intermission -

 

안토닌 드보르자크 - 교향곡 9번 마단조 작품번호 95 "신세계로부터"

A. Dvořák - Symphony No. 9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첫 곡인 번스타인의 <심포닉 댄스>는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OST로도 유명한 곡이다. 특히 이 곡에는 기존 교향곡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다양한 악기(?)들이 등장하는데, 호루라기, 핑거스냅, "맘보!" 외침 등 단원들이 악기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소리를 내며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타악기 연주자도 무려 4명이나 있어서 신나고 화려한 에너지로 가득 찼다. 중간에 첼로 연주자들이 첼로를 돌리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공연 예습을 하며 유튜브에서 들었을 때보다 실연으로 감상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곡이었다. 나는 프롤로그와 맘보가 가장 좋았다.

 

두 번째 곡은 내가 이 공연을 예매하게 된 이유이기도 한 <랩소디 인 블루>.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오프닝곡으로 쓰여서 더욱 유명한 곡으로, 아래 손열음 협주한 버전으로 자주 들었다. 재지한 선율이 손열음 특유의 쫄깃한 리듬감과 만나 경쾌하게 살아난다.

 

 

 

 

잔뜩 기대한 채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곡의 오프닝에서부터 클라리넷의 찌르는 듯한 화려한 솔로가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듯했다. 곡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에 손열음은 앵콜을 하기 위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런데 클라리넷이 다시금 <랩소디 인 블루> 오프닝 선율을 연주하면서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이내 피아노 함께 금세 다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앞부분만 같은 곡으로, 후에 찾아 보니 거슈윈-구알디의 "파리의 미국인"에서 블루스라는 곡이라고 한다. 마치 라이브 재즈바에 나올 것만 같은 그루비한 곡이었다. 클라리넷 솔로가 피아노보다도 더 크고 또렷하게 들렸는데, 이렇게 하늘을 찌르는 듯한 음색을 가졌는지 처음 알았다. <랩소디 인 블루> 뒤에 연주하기에 아주 센스있는 선곡이었다.

 

<심포닉 댄스>부터 <랩소디 인 블루>와 앵콜곡까지, 재지한 엇박의 리듬이 돋보이는 1부였다.

 

2부는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4악장에서 일명 '죠스 등장곡'으로 쓰인 익숙한 선율이 나오는 걸로도 유명하다. 1부에 비해서 조금 더 고전적인 교향곡에 가까웠지만, 익숙한 선율 때문인지 영화 음악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름다운 2악장과 힘찬 4악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악장 간 박수가 3악장까지 계속되어서 아쉬웠지만, 공연 분위기가 들떠 있어서 그마저도 열띤 현장에 어울리는 듯 했다.

 

2부 앵콜로는 <신세계로부터>의 2악장을 다시 연주해 주었다. 처음엔 선율이 똑같아서 혹시 1부 앵콜 때와 마찬가지로 재치 있는 선곡이었을까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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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볼레로: 더 갈라]



둘째 날 프로그램 구성은 공연 제목에서 엿볼 수 있다. 라벨의 <볼레로>는 똑같은 두 마디의 선율을 15분가량 동안 여러 악기가 번갈아 가며 솔로 연주로 반복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멜로디로 진행되어서 지루할 것 같지만, 연주하는 악기가 계속 바뀌는 데다가 점점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면서 음량이 커지고 다채로워지기 때문에 꽤나 역동적인 곡이다.

 

이날 프로그램은 이러한 <볼레로>의 구성을 본떠 각 악기 주자가 선택한 협주곡 악장 한두 개씩을 갈라쇼 형식으로 선보인다.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한껏 뽐내고 난 후에는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대망의 <볼레로>를 다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프로그램 자체가 <볼레로>와 같이 구성된 셈이다.

 

<프로그램>

 

1부. "Symphonic"

 

에드바르드 그리그 - 심포닉 댄스 중

E. Grieg - Symphonic Dances op. 64 no. 1 in G major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중

J. S. Bach - from "Brandenburg Concertos"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호른 협주곡 중 3번 중 1악장

W. A. Mozart - Horn Concerto no. 3 in E flat major. K. 447 - I. Allegro

 

조아키노 로시니 - 바순 협주곡 중 2악장

G. Rossini - Bassoon Concerto in B flat major - II. Largo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 플루트 협주곡 중 3악장

S. Mercadante - Flute Concerto in E minor

- III. Rondo Russo: Allegro vivace scherzando

 

클로드 드뷔시 - 첫 번째 랩소디

C. Debussy - Première rhapsodie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1번 중 3.4악장

D. Shostakovich - Cello Concerto no. 1 in E flat major, op. 107

- III. Cadenza - IV. Allegro con moto

 

- 휴식 Intermission -

 

2부. "Dances"

 

에드바르드 그리그 - 심포닉 댄스 중

E. Grieg - Symphonic Dances op. 64 no. 2 in A major

 

외젠 이자이 생상의 왈츠 형식 에튀드-카프리스

E. Ysaÿe - Caprice d'après I'Etude en forme de valse de Saint-Saens

 

다비드 포퍼 - 타란텔라

D. Popper - Tarantella op. 33

 

장 밥티스트 아르방 - "베니스의 카니발"

J. B. Arban - "Le Carnaval de Venise"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 "호두까기 인형" 중 "사탕 요정의 춤"

P. I. Tchaikovsky - "Dance of the Sugar Plum Fairy" from the "Nutcracker"

 

아스트로 피아졸라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

A Piazzolla - “Cuatro Estaciones Porteñas" - I. Verano Porteno

 

비토리오 몬티 - "차르다슈"

V. Monti - "Czardas"

 

모리스 라벨 - “볼레로"

M. Ravel - "Boléro"

 

위의 모든 곡을 예습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악기들, 특히 관악기 소리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본 게 처음이었다. 클래식 초보자에게 교향곡은 하나의 음악으로 뭉쳐 들려서 각 악기 파트를 구분해서 듣기가 어렵다. 가끔 특정 악기의 솔로 부분이 나올 때만 겨우 악기의 음색을 알 수 있는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공연은 클래식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의 특색을 하나씩 접하고, 그 악기들이 모여서 어떻게 심포니를 만들어 내는지 익히기 좋은 공연이었다.

 

모든 곡이 좋았지만 전날 <랩소디 인 블루>에서도 인상적으로 들었던 클라리넷과 바순이 특히 환상적이었다. 바순 같은 저음 악기는 보통 협주곡에서 고음 악기에 묻혀 잘 들리지 않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익숙한 악기가 아니었는데, 이번에 로시니의 바순 협주곡에서 들어보니 묵직한 저음 안에도 따뜻하고 포근한 감성이 있어서 무척 매력적인 악기였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도 기억에 남는다. 예습 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던 곡이라서 역시 현대곡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실연에서 보니 김두민 첼리스트의 헤드뱅잉을 곁들인 열정적인 연주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현대곡은 실황이 제맛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날 손열음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하프시코드를, <사탕 요정의 춤>에서 첼레스타를 연주했는데, 피아노 이외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첼레스타는 옛날 오르골에서 나올 것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리의 악기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반짝거리는 불빛과 캐롤이 떠오르는 소리였다.


<볼레로> 직전에 연주된 몬티의 <차르다슈>도 인상적이었다. 본래 현악기 곡으로 많이 연주되는 곡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여러 관악기가 돌아가면서 솔로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편곡되었다. 여러 악기가 돌아가면서 솔로를 한다는 점에서, 직후에 연주할 피날레 곡 <볼레로>의 에피타이저와 같았다.

 

그리고 대망의 피날레, <볼레로>. 곡의 규모에 맞게 단원들이 몇 명 더 무대로 나왔다. 이 곡의 가장 중요한 악기인 스네어 드럼도 등장했는데, 뜻밖에도 지휘자가 있어야 할 무대 중앙에 놓여졌다. 타악기가 오케스트라 중앙에 위치한 것은 다소 낯선 풍경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드럼의 리듬 위에서 진행되는 <볼레로>에서는 스네어 드럼이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 역할을 해야만 하므로 사실 매우 적절한 위치 선정이었다.

 

스네어 드럼이 속삭이듯 아주 작은 소리로 리듬을 연주하면서 곡이 시작되었다. 플루트를 시작으로 각 악기가 하나씩 솔로로 등장해 같은 선율을 연주했다. 앞서 다양한 협주곡으로 접했던 악기들이 조금 더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곡은 뒤로 갈수록 점차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면서 완전한 심포니(symphony)를 이루어 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전체 오케스트라가 다 함께 거대한 음량으로 연주하고 있을 때, 마침내 피날레에서 거대한 타악기의 폭발적인 음과 함께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처음부터 가만히 앉아 있던 타악기 연주자 3명이 막판에 가서야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엄청난 굉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작고 미미했던 스네어 드럼의 리듬에서 시작한 음악이 점점 자라나더니 폭발적이고 웅장한 곡으로 마무리되자 모두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공연은 교향곡 한두 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는 전통적인 클래식 공연에 비해 단원들도 관중도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악장 사이 박수는 물론이고 곡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잠시 연주가 조용하게 멎는 순간 박수가 나오는 등 몰입을 방해한 순간들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클래식 초보자들에게도 친절한 기획이었고, 공연 제목 <볼레로>에도 걸맞는 완벽한 구성이었다는 점에서 마치 기승전결이 아주 잘 짜인 극을 본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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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관람해 본 고잉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지휘자가 없는 탓에 곡의 디테일한 부분들에서 살짝씩 어긋나는 느낌이 있었다. 시작점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다소 갑작스럽게 연주가 시작되는 감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지휘자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오케스트라에 갔다. 각 파트의 연주가 나올 때마다 단체로 분주하게 리듬을 타는 악기 군단이 더욱 잘 보였다. 아무래도 지휘자 없이 합을 맞추기 위해 리드 연주자들이 더 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잉홈프로젝트가 표방하는 '단원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라는 점이 보통의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확실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모든 단원이 매우 열정적이고 신나 보였는데, 그 신선한 에너지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타지 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환영받아 한껏 들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첼로 연주자가 그렇게 고개를 힘차게 흔들며 연주하는 것을 처음 본 것 같다.) 또한 해외 굴지의 오케스트라 출신 '정예 군단'답게 다들 소리가 단단하고 실력이 출중했다. 솔로이스트로도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서 황홀한 심포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예술의 감동은 완벽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예술가의 열정과 헌신의 에너지가 담긴 음악이다. 그것이 고잉홈오케스트라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도 관객에게 충분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고국을 떠나 해외 곳곳에서 음악 생활을 계속할 아티스트들에게도 고국 관중의 따뜻한 환대와 에너지가 온전히 전해졌기를 바란다. 내년에도 고잉홈!

 

 


에디터 황연재.jpeg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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