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 남자, 엉큼하다! (1)

에두르고 감추는 방식이 더 편안한 싱어송라이터, 노아윤
글 입력 2023.08.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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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피해를 입혔던 장마가 끝나자마자 벼락 같은 폭염이 시작됐다. 비에 젖었던 나뭇잎들이 타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집 주변에 매일 보는 나무지만 하루도 같은 나무가 없다. 빛깔이 진해지고 무성해진 모습이 힘차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아쉬워진다. 곧 색이 바라고 떨어져 할 일을 마친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모습은 어떤 땐 찰나에 불과할 때가 있어 그 순간 자세히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나무의 ‘카르페 디엠’이라고 할까.

 

얼마 전에 좀 색다른 콘서트에 다녀왔다. 주인공은 2021년 ‘유재하 경연대회’로 데뷔한 따끈따끈한 가수 노아윤. 데뷔 이후 작업한 음원을 빨리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지만 두 해가 지나고 최근에야 발매가 이루어졌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인지 타이틀 곡 《때라는 건》은 들뜬 기대와 설렘보다는 기다리는 것, 그리고 내려놓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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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세계에 입문했다.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나?

 

Ahyun] 같은 대회에 먼저(2013년) 입상한 홍이삭님이다.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관심을 가진 유명 스타 뮤지션이 아닌 인디 뮤지션이다. 홍이삭을 알기 전엔 주로 스케일이 큰 음악을 들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때 많이 듣던 Michael Buble의 《Hollywood》 같은 음악은 듣기엔 너무 신나고 좋지만 내가 기타 하나로 직접 재현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홍이삭의 경연대회 입상곡 《봄아》를 들었는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기타와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노래는 화려하진 않지만 모든 게 담겨 있는 듯했다. 나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고 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전까지 나는 그냥 음악을 관조하는 관객에 불과했는데 홍이삭을 알고나서 내가 직접 무대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후 소셜미디어(유튜브)에 업로드된 홍이삭의 라이브 공연을 모두 찾아봤다. 당시는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관련 영상이 너무 많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3년을 홍이삭에게 푹 빠져 있었다.


 

- 음원을 빨리 내고 싶었다고 했는데 첫 싱글이 나올 때까지 2년이 걸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Ahyun] 경연대회 입상 이듬해인 2022년 하반기엔 음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2023년 여름에 공개했으니 계획보다 9개월 정도 미뤄진 거다. 2022년 봄에 코로나와 수두를 연달아 앓았다. 코로나야 한창일 때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수두는 생각보다 증상이 심각해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다. 회복하는데 3개월 걸린 것도 늦어진 원인이다.

 

아픈 동안 음악을 거의 할 수 없었고 대신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정확히는 내 음악, 나는 어떤 표현이 어울리고 자연스러운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시기다. 아프기 전에 만들었던 노래들의 멜로디라인, 기타 연주방식 등에 군더더기가 느껴졌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평소 나를 표현하는 것에 비해 내 음악에는 그 표현의 요소들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잔가지를 쳐내며 두 계절을 더 보냈다. 그러고 나서 보니까 음악이 전보다 더 자연스럽고 편하게 와 닿는 게 ‘나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첫 싱글이 조금 늦은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 작업이기 때문에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계획이 틀어지면서 어떻게 하면 음악을 더 ‘노아윤답게’ 할 수 있을까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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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싱글 《때라는 건》을 들었다. 아쉬움, 미련, 원망으로 시작했다가 살게 하고, 꿈꾸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결국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만들 때 기분이 어땠나?

 

Ahyun] 음악을 하다 보면 정체구간 같은 답답함을 마주할 때가 가끔 있다. 음악적 커리어의 외적인 정체이기도 하고 실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내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다. 2020년 코로나와 함께 그 모든 ‘정체구간’이 다 찾아왔다. 안 그래도 부족한 무명가수가 노래할 수 있는 무대는 완전히 없어졌다. 2019년에 이어 2020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또 떨어졌다.

 

답답함, 열등감, 자기혐오, 조급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안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곡만 썼다. 정체구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첫 싱글 《때라는 건》은 그 때 만든 곡 중 하나다. 멜로디와 진행은 바로 나왔는데 가사를 완성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들려주고 싶은 테마는 ‘때’로 정했는데 정작 나는 그 ‘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앞으로 정말 노래하면서 살지, 같은 실존적인 질문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의 후반부 쓰기를 포기하고 무작정 기다렸다. 그렇게 두 계절이 더 지나고 정체구간이 저절로 풀린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의 그릇이 커진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기다리자’며 스스로 토닥이면서 노랫말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 멜로디와 가사, 서로 영향을 주고 영감을 받는 관계겠지만 뭐가 우선인가?

 

Ahyun] 노랫말은 직접 만들고 싶고 또 그래야 할 것만 같다. 내가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써서가 아니다. 떠오르는 느낌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멜로디나 코드 같은 음악적 요소로 표현하는 게 나한테는 훨씬 어렵다. 다시 말해 음악은 표현상의 제약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노랫말은 자유롭고 선명하다. 그래서 직접 쓰는 가사는 노래에 감정을 담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물론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사가 깨끗하게 잘 들리는 음악을 좋아한다. 아름답고 황홀한 멜로디에도 감동을 받지만 마음을 꾹꾹 눌러서 쓴 가사에 담백한 선율이 더해질 때 감동이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일상에서 나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표현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관찰할 때가 많다. 

 

단호하고 직설적인 것보다 에두르고 감추는 방식이 더 편안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엉큼하다고 하시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사에 느낌, 감정, 생각, 경험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 보편적인 가사에 많은 메시지를 추려서 담는 것이 내 방식이고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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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창작자와 감상자의 마음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만약 감상하는 사람이 본인이 의도한 것과 다른 해석과 느낌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드나?

 

Ahyun]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사람으로서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다. 가령, 내 입장에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곡은 슬픈 노래가 아니다. 창작자 입장에선 슬픔보다는 덤덤한 희망 또는 다짐 같은 정서가 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굉장히 슬픈 노래처럼 들린다고 한다.

 

단순히 노래가 느리고 잔잔해서 슬프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은 본인들의 방식으로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나한테는 희망이고 다짐인 노래가 누군가에겐 슬픔으로 들릴 수 있다는 현실이 흥미롭다. 그런 부분이 사람들과 내 노래를 더 많이 나누고 싶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런 감상의 차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맹신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MBTI로 상대를 파악하고 규정하려고 한다. 우주처럼 복잡한 인간의 성격을 단지 16개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게 당연히 한계가 있지만 가끔 족집게처럼 들어맞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MBTI를 가진 두 사람이 성격은 완전히 다른 경우를 우리는 너무 자주 본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우주에 사는 것처럼. 각자의 우주를 가진 사람들한테 내 노래를 들려줬을 때 나름대로 해석하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뮤지션을 본다.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그런 비장한 각오보다 각자의 우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 노래가 가서 닿을 때, 그리고 같은 노래지만 다른 감상을 느낄 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며 음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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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구하는 음악세계를 장르적으로 구분한다면? 혹시 롤모델이 있나?

 

Ahyun] 굳이 나누자면 포크 또는 포크발라드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싱어송 라이터’라는 비공식 장르도 생겨나는 시대다. 음악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쉽진 않다. 포크 장르에는 김민기, 한대수, 조동진, 권진원, 장필순, 유재하, 김광석 등 정말 기라성 같은 인물이 많다.

 

그 중 음악적으로는 김민기 선생님을 닮고 싶다. 멜로디 흐름은 단순한 편인데 그 멜로디가 가사를 너무 잘 담는다. 노랫말은 서정적인데 명료하다. 가볍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힘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 같은 노래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유는 모른다. 김민기만의 짙은 영혼이 느껴진다. 김민기의 음악처럼 항상 마음에 남는, 마음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음악을 하는 게 꿈이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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