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쾌한 세계관 속 깊은 메시지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영화]

글 입력 2023.07.2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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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액션 장르의 영화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 주로 액션 영화는 영화 속에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액션 그 자체의 화려함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고, 영화 속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고 그에 감동을 얻어야만 영화에 재미를 느끼는 내 지독히도 엄격한 기준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보면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라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 여행을 가던 길에 비행기 안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 계기는 상당히도 사소했지만, 이 영화만이 가지는 아주 독특하고도 진중한 매력에 빠져들어 계속 그 내용을 곱씹고 있다. 그리고 매력을 느끼는 것 그 이상으로, 인생을 살며 고민하던 부분이 해결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1. 멀티버스와 인생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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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multiverse)’는 최근 많은 콘텐츠가 주목하고 있는 소재 중 하나이다. 이제는 단일 세계관에서 시야를 넓혀 다중우주, 평행세계에 도달하여 인물들의 더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이 소재는 양날의 검이다. 화려한 세계관인 만큼 복잡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더욱 깊은 고찰과 탄탄한 서사 쌓기가 필요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이러한 멀티버스를 신선하게 해석한다. 다중우주 속 ‘나’를 별개의 인격체로 생각하기보다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로 발생하는 수많은 경우의 ‘나’로 표현한다. 즉,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나’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다중우주의 도면은 마치 가지를 뻗어나가듯 표현된다. 우리가 흔히 보던 ‘예’ 혹은 ‘아니오’라는 선택지로 가지를 뻗는 도표처럼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에블린은 다양한 선택지에 따라 영화배우가 되기도 하고, 가수, 요리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다중우주 속 에블린은 평범한 인간일 뿐만 아니라 손가락이 핫도그가 되기도 하고, 인간의 형태에서 벗어나 장난감, 돌 등의 물체가 되기도 하고, 3차원 영역에서 벗어나 2차원의 평면 속 그림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다중우주 속 ‘나’가 인간일 것이라는 편견과 한계를 넘어서 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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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다중우주 세계관 속에서 에블린은 ‘버스 점프(verse jump)’를 통해 다른 우주 속 에블린의 능력을 현재로 끌어와 싸우거나, 아예 다른 우주로 이동하며 그 속에서 직접 선택을 하기도 한다. 현재의 에블린은 수많은 선택지로 만들어진 아무 능력도 없는 가장 ‘하찮은’ 인격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양한 능력을 흡수하며 영화의 히로인으로 거듭나는 빛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다중우주가 주는 또 다른 유의미한 메시지는 ‘인연’과 관련되어 있다. 나와 아무 관련이 없던 사람이 다른 우주에서는 깊은 인연을 맺고, 나에게 악연이었던 사람이 다른 우주에서는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특히 세금 문제로 그녀의 터전인 세탁소를 압류하겠다며 에블린을 괴롭히던 국세청 조사관 디어드리는 오히려 다른 우주에서는 그녀의 연인이 되는 반전을 보인다. 


이렇게 한계를 뛰어넘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던지는 다중우주 세계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2. 인생과 허무주의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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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는 ‘빌런’으로 등장하는 ‘조부 투파키’(알파버스 속 에블린의 딸 ‘조이’)라는 존재가 있다. 하지만 구태여 빌런이라는 단어를 따옴표로 강조한 이유는, 영화 속에서 ‘물리쳐야 할 존재’로 표현되지만, 막상 ‘악역’이라고 말하기에는 복합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에블린은 히로인, 조부 투파키는 빌런이지만 그 둘은 결국 다중우주를 모두 깨우친 사람으로서 같은 사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바로 ‘허무주의’이다.


조부 투파키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치 영화 <루시> 속 ‘루시’를 보는 기분이었다. 다중우주의 모든 자신(에블린의 딸 ‘조이’)을 흡수하고 그 드넓은 세계를 모두 깨우치며 어느 우주에서든 한계를 뛰어넘는 강한 능력을 보이지만, 모든 것을 통달하였기에 오히려 공허했던 눈동자, 그리고 모든 것을 죄책감 없이 파괴하는 행보가 유사하다. 두 인물이 말하는 메시지도 비슷했다. 세상은 그저 원자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이 창조해낸 것들은 무한히 팽창하는 가능성과 점으로 귀결하는 소멸(죽음) 앞에서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것.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에블린과 관객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면, 결국 내가 겪는 고통과 고난 또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는 결코 끝이 좋을 수는 없다. 내 삶의 고통뿐만 아니라 행복도, 그리고 삶의 의미조차도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결론은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조부 투파키 또한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서 ‘베이글’이라는 블랙홀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베이글’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파괴할 수 없었던 조부 투파키는 자신을 파괴해줄 다른 사람을 찾는다. 자신처럼 다중우주를 완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허무주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이 현재의 에블린이었다. 다중우주의 자신을 모두 흡수한 에블린 또한 이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느끼고 각기 다른 우주에서 파괴적인 행보를 보인다. 그렇게 조부 투파키를 물리치려던 히로인에서 그녀의 조력자가 되어 ‘베이글’로 모든 세계를 파괴하려던 에블린을 붙잡은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3.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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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 현재의 에블린처럼 수많은 웨이먼드 중 가장 ‘하찮은’ 웨이먼드였다. 그렇다고 에블린처럼 다중우주의 능력을 깨우쳐 뛰어난 히어로가 되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엉뚱하고 철없는 인물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저 그런 조연으로만 표현될 것만 같았던 이 남자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바로 ‘다정함’이다.


에블린은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도 웨이먼드를 속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항상 모든 것을 망치기만 하는 나약하고 한심한 남자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한 다른 우주를 엿보고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녀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그녀를 구출하는 것은 늘 그였다. 융통성 없고 냉정해 보이던 디어드리를 현재 우주에서도, 그리고 또다시 세탁소를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 가까운 우주에서도 설득하며 에블린을 의아해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파괴되려고 하는 혼돈에 휩싸인 현재 우주에서도, 웨이먼드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에블린에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다정함을 보이라고. 그리고 에블린은 웨이먼드와 함께 해온 제 인생을 다시 되짚어본다. 비록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무능력한 남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를 늘 행복하게 해준 것은 그였고, 그와 함께해온 인생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고. 그렇게 ‘다정함’에 설득당한 에블린은 조부 투파키와 그녀의 부하를 물리치려는 것이 아닌, 설득하기 위한 싸움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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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우리는 ‘다정함’이 가지는 강력한 힘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착한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 지금의 세상 속에서, 간혹 사람들은 착한 이들은 만만하고,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오히려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리고 스스로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다정함은,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닐 미약한 인간들을 서로 단단하게 붙들며 살아가게 해준다.


다시 영화 속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블린은 ‘왜 현재에 머물러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전해준다. 다중우주를 깨우치기 이전의 에블린은 그저 다중우주가 뒤섞인 이 혼란스러운 상황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것을 회피하고 현재에 ‘안주’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다중우주를 깨우치며 얻은 허무주의, 그러나 다정함으로 얻은 찰나의 따스한 온기로 에블린은 현재의 ‘소중함’을 조부 투파키, 그리고 조이에게 설득한다. 비록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 또한 한낱 찰나일 뿐인 이 세상 속에서,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며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소중히 하며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것. 그 ‘설득’은 결국 ‘이해’, 그리고 ‘화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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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허무주의와 염세주의가 커지는 현대 사회에 유쾌한 방식으로 뜻깊은 메시지를 던진다.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고 암울해지는 미래, 그리고 전쟁과 기후 변화로 자꾸만 세상의 끝을 암시하는 상황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끝내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다정함’을 추구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어떤 생각지도 못한 인연, 그리고 온기를 찾으며 이 찰나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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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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