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한국의 전통 설화, 주변부의 이야기에 전환점을 선사하다 -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

글 입력 2023.07.2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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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에 위치한 스페이스k 서울은 7월 1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제이디 차(Zadie Xa)의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Nine Tailed Tall Tales: Trickster, Mongrel, Beast)〉를 개최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제이디 차 작가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회화와 조각, 설치, 전시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캐나다, 이탈리아, 중국 상하이를 거쳐 작년에는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와 제주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하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이민 2세대로서의 자전적인 서사와 어린 시절 어머니께 전해 들었던 한국 문화 및 설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풀어낸 33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은 총 3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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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디 차 (b.1983 Zadie Xa)

 

 

제이디 차 작가는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 문화 및 설화 중에서도 구미호, 마고할미, 바리공주 등 여성 캐릭터 연구에 몰두해 왔다.

 

여성 캐릭터는 한국 전통 설화와 샤머니즘을 주도하는 존재로,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긍정적으로 비추어져 오진 않았다. 전시의 영문 제목에 나와 있듯 사기꾼(Trickster), 잡종(Mongrel), 짐승(Beast)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제이디 차는 일반적인 문화적 상징을 뒤집어 작품 속에 나타내고, 익숙한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이를 위해 소외된 주변부의 대상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해 권능적이고 신성한 존재로 탄생시킨다.

 

이러한 작업은 '사회의 가치 있는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물음에서 출발한 작품은 사회에서 가치 있는 존재를 구분할 수 있는지, 우리는 그 존재를 구분하는 게 마땅한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3개의 공간, 33여 점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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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첫 번째 공간에서는 해태를 타고 있는 마고할미의 형상과 양옆에 설치된 기하학적 무늬의 천이 보인다.

 

마고할미는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자로 중앙에 위치해 관람객들을 맞이하며, 일상과는 분리된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임무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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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와 짐승>, 50x100x110(h) cm, 2023

 

 

한국 민속 신앙에서 비범한 능력으로 한국의 지형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마고할미는 신화 속의 동물 해태를 타고 있는데, 본래 짐승 위에 탄 길잡이의 모티브는 남성 유학자의 형상이 보편적이다.

 

이에 작가는 여신이자 창조신으로 기록됐지만, 권력 구조에서 남성보다 무력한 존재로 여겨져 온 마고할미를 해태의 등에 태워 보편성을 깨뜨리고 이전과는 반대되는 상징을 부여했다. 마고할미는 새로운 사회 문화적 의미 속에서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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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두 번째 공간은 미로처럼 이루어져 있다.

 

미로 내부에는 크고 작은 캔버스가 전시되어 있고, QR코드를 찍으면 해설을 듣거나 볼 수 있어 용이하다. 공간이 협소한 미로의 특성상, 작품을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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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할미>, Oil on canvas, 70 x 100 cm, 2023

 

 

두 번째 공간에서는 작가의 회화적 정체성이 담긴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바다 할미>는 할머니 초상화로, 바닷새 여러 마리와 함께 있는 강인한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제이디 차 작가는 삶의 터전에서 자주 보았던 밴쿠버의 바닷새와 함께 사회적 약자이자 포근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등장하곤 했던 할머니가 아닌, 주위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과 담대함을 지닌 인물로 표현한다.

 

마고할미 설화에서 더 나아가, 이 작품 또한 나이 든 여성들에 대한 인식과 묘사되는 방식에 전환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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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우리들>, Oil on canvas, 55 x 70 cm, 2023

 

 

<미래의 우리들>은 상반신을 포착한 초상화로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가 한층 강조된다. 측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주름이 짙은 할머니에게서 눈에 띄는 점은 여우 같은 귀 모양이다. 이는 한국 설화에서 여우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둔갑하는 내용에 영감을 받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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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할미>, Oil on canvas, 70 x 90 cm, 2023

 

 

나이 든 여성만이 품을 수 있는 세월의 주름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아름다움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마주하게 될 미래의 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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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공간은 대형 회화와 사당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 허공에 매달려 있는 의복 작업과 형형색색의 카펫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적 요소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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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계(母系)>, Oil on canvas, 360 x 200 cm, 2023

 

 

어둡고 신비한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모계(母系)>는 모계사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중년 여성의 얼굴을 한 왼쪽 인물과 젊은 여성의 얼굴을 가진 오른쪽의 인물이 중심적으로 배치돼 있고, 무언가 교감을 나누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어 있다.

 

작품은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흡수하는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다. 두 인물 중간에 날아다니는 까마귀는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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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 잡종, 짐승>, Oil on canvas, 600 x 240 cm, 2023

 

 

세 폭으로 이루어진 사당 형식의 대형 회화는 세 번째 공간을 압도하며 위치해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인물은 등장하지 않고 오직 '동물'만이 등장한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작가의 반려견, 프렌치 불독 치코와 현재 키우고 있는 반려견 피지, 상상 속의 동물들이 작품의 중앙에 나타나 있다. 동물들 뒤로는 초자연적인 세계가 나타나 있는데, 이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동물의 위상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과 작가로서의 다짐이 큰 화폭에 담겨있다. 제이디 차의 앞으로의 행보를 자연스레 지켜보게 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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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K 서울에서 살펴본 제이디 차 작가의 작업 세계는 한국 전통의 근본을 해치지 않으면서, 색다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그 누구보다 한국의 전통과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주변부의 존재에 오랜 시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느껴질 만큼, 작품에서의 문제 제기와 메시지는 하나의 맥락에서 다채로운 지점에 점을 찍고 있었다. 일관성 있고, 작품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높은 몰입도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제이디 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한국의 다양한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작가의 바람처럼, 그의 따스한 시선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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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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