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도서/문학]

유형진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를 읽고
글 입력 2023.07.13 22: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30713_231501655.jpg

 

 

 

아름답게 뒤섞인 세계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속 시들은 각각의 특별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시가 작가만의 시적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겠지만, 여기서 이 시집이 달리하는 지점은 각각의 시가 어느 세계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행성처럼 다가온다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피터 판과 친구들―프롤로그」)이 있는 <허니밀크랜드>와 “모든 걸 선회하는 선회”가 “결혼이란 옥수수 치통을 선회하는 세계”(「선회하는 옥수수 치통의 세계」)에 살고, “아주 근사한 할머니 미미”가 블랭킷으로 “깜깜한 것들을 덮어주는”(「할머니 미미」) 어느 작은 시골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신비로운 세계를 창작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시공간을 뒤섞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 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

불면증에 걸린 블랙체리 씨가 말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 없었다


어딘가에서 블랙체리 씨가 아닌 블랙체리 씨가

또 어딘가엔 블랙체리 씨인 블랙체리 씨가

결혼을 하는 동시에 이혼한다

작고 무의미한 사건,

어디에서나 동시에 일어나곤 하는 사건


「사소한 이야기 둘―불면증에 걸린 블랙체리 씨」 부분

 


블랙체리 씨들은 블랙체리 씨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다중 우주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불면증에 걸린 블랙체리 씨가 어느 다중 우주에 사는 블랙체리 씨인지 알 수 없다. 혹은 시에서는 블랙체리 씨라고 명했지만, 불면증에 걸린 블랙체리 씨는 블랙체리 씨가 아닐 수도 있다. 작가는 다중 우주라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으로 모자라 이 모든 블랙체리 씨의 시공간을 단번에 뒤섞어버린다. “나는 지금 여기 없었다”라고 말이다. 현재와 과거가 섞인, 따지고 보면 문법상 맞지 않는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가능한 이유는 블랙체리 씨들은 광활한 우주에서 수많이 살아가고 있고 그것이 현재일 수도, 과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은 결국 블랙체리 씨이므로 작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섞어 한 줄로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허니밀크랜드>도 마찬가지다. <허니밀크랜드>는 이 시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세계이다. 1부에서는 <허니밀크랜드> 속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3부는 <허니밀크랜드>에 사는 「피터 판과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아름답게 뒤섞인 세계에 더 가까운 전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세계의 비극은 이것 말고도

몇 개는 더 있는데

더 큰 비극은 그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시간은

산장에 사는 검은 고양이의 털만큼 셀 수 없다는 것이다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부분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를 

너에게 내밀었을 때

가늘게 좁혀지는 너의 동공,

네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멋진 눈동자로

만족의 화답을 해주었을 때

나는 알았다


아― 평화란, 이런 것이다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산장 캠프의 검은 고양이 띰띰이에게」부분

 


1부에서는 <허니밀크랜드>가 배경인 시가 총 여섯 편인데, 이 작품들이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한 <허니밀크랜드> 속에 있는 어느 것으로 다른 <허니밀크랜드>가 만들어지고, 다른 <허니밀크랜드>에 등장한 것으로 또 다른 <허니밀크랜드>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위의 두 시를 보면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의 마지막 연에 잠깐 등장하는 “산장에 사는 검은 고양이”가 바로 다음 시인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에서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연이어 나오는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에서의 플라잉 낚시―우산 꼭지 같은 버섯 기둥이 낚아 올린 것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각각의 시를 연작으로 서술함으로써 세계 속에 세계가 있는 액자식 구성을 보여준다. 액자식 구성은 보편적으로 소설에서 채택하는, 시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 작가는 시와 액자식 구성을 접합하여 독창적인 시적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 창작 방식의 길을 연 셈이다. 액자식 구성을 통해 독자는 <허니밀크랜드>를 시 한 편의 독립적인 세계라고 여기는 동시에 다른 시와 이어진 거대한 세계라고 느끼게 된다. 


앞서서는 액자식 구성으로 시들의 연결점을 나타냈지만, 시의 이미지로도 각 시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에서의 플라잉 낚시―우산 꼭지 같은 버섯 기둥이 낚아 올린 것들」와 「<허니밀크랜드>의 녹슨 이마와 축축한 손」이 그 예이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머리카락, 형광 연두색 금붕어, 리시안셔스, 라넌큘러스, 프리지어, 검은 안경, 돼지 모자, 갸우뚱거리는 고개, 얌체, 숟가락 받침, 스머프 마을, 로렐라이, 아르페지오, 접시 닦이, 구두코, 빈 라덴, 조각보, 두근거리는 심장, 반쯤 마시다 만 얼 그레이 홍차 잔. 너는 왜, 수수깡, 시름시름 앓는 병아리, 뉴햄프셔, 아그리콜라, 미친 흰수염고래, 오로라, 스웨덴, 별모양 사탕 과자, 지리멸렬,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에서의 플라잉 낚시―우산 꼭지 같은 버섯 기둥이 낚아 올린 것들」 부분

 

 

너는 녹슨 이마를 가졌고

나는 축축한 손을 가졌다


나는 축축한 손으로 네 이마를 만졌고

내가 만질 때마다 너는 아팠다

네가 아픈 건 내 죄가 아닌데

나는 죄책감에 시달려

너보다 조금 천천히 걸었다

 

「<허니밀크랜드>의 녹슨 이마와 축축한 손」 부분

 


위 두 시에서는 제목에서 언급한 <허니밀크랜드>를 제외하면 “산장 캠프의 검은 고양이”와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처럼 제목과 소재의 연결점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호수에서 건져 올린 물건들이 길게 나열된 전자 시의 축축하고 습한 이미지를 후자 시에서 “녹슨 이마와 축축한 손”이 이어받는다.

 

녹슨 이마를 가진 너와 축축한 손을 가진 내가 걷고 있는 이 시는 「<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에서의 플라잉 낚시―우산 꼭지 같은 버섯 기둥이 낚아 올린 것들」과 액자식 구성을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마치 호수에서 금방이라도 건져 올린 것만 같은 녹슨 이마와 축축한 손이 또 다른 <허니밀크랜드>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액자식 구성뿐만 아니라 시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통해서 연결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를 창작하는 입장으로 봤을 때는 이것들이 전부 ‘연결’이지만, 시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였던 세계가 여러 개가 되고 여기 있던 세계가 저기에도 있는, 시공간이 엉켰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뒤섞임’으로 보인다. 이것이 유형진 시적 세계의 특징이자 독보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할 수 없는


  

뒤섞이고 엉킨 세계 속에서 시의 화자들은 사랑을 말한다. 사랑과 반드시 함께 말하는 게 있는데 바로 ‘아픔’이다. 시 속 사랑은 보편적으로 사랑, 하면 떠오르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아프고 깨지고 잃어버리고 슬프고 그래서 눈물 흘리는 ‘고통’에 가깝다.

 

 

너를 사랑해서 아프다고 소리쳤어, 그 소리는 뻗어나가 천장에서 날카롭게 얼어붙지. 유리처럼. 공중에서 부딪혀 깨지는 소리, 바스러지는 소리,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 (……) 전기 압력 밥솥의 뚜껑도 일그러져 모양이 반듯하지 않지만 처량하게도 제구실을 하며 매일매일 칙 칙 칙 칙. 압력을 빼며 밥을 짓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아프다고, 이렇게 내 안에는 폭발할 게 많은데 참고, 참고, 참고, 참으며 다 끌어 담고. 매일매일을 규칙적으로 칙 칙 칙 칙. 시간 맞춰 빼주지 않으면 스스로 빠질 수 없는 화를 가득 담고. 매일 저녁이면 밥 짓는 냄새가 집집마다 흘러나오지.

 

「芸亭 6」 부분

 


위 시에서 화자는 첫 행부터 “너를 사랑해서 아프다고 소리쳤”다고 말한다. 그 소리가 “공중에서 부딪혀 깨지는 소리, 바스러지는 소리,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로 뻗어나가는 것으로 보아 화자의 사랑은 고백이라기보다 울분을 쏟아내는 일이다. 심지어 그 고통과 화를 마음대로 쏟아내지도 못하고 참고 참다가 뚜껑이 일그러진 전기 압력 밥솥처럼 정해진 시간에만 쏟아낸다. 분명 화자는 너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굉장히 고통스럽고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을

그녀는 자주 목도한다


사랑이 어떻게 깨지는지

깨진 사랑이 어떻게 가루가 되는지

가루가 된 사랑이 어떻게 녹는지

그 녹은 사랑이 어떻게 질척해지는지

그 질척한 사랑이 그리는 마블링을

목도한다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부분

 

 

충치 맛 비가 내리던 저녁

사람들은 서둘러 사랑하는 사람의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국숫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잡히지 않는 버그에 대해서 생각한다


돌아갈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시간의 구멍을 잊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빗속을 헤매는 벌을 받은 사람들


(……)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못한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미싱을 돌리고

윗실과 밑실의 장력을 맞추지 못해

바늘땀은 자꾸만 뜨고

끝내 바늘은 부러진다

 

「<허니밀크랜드>의 안개 아침」 부분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에서는 사랑이 깨지고 이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이 부풀어 오르든 깨지든 관심 밖이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목도하는 그녀가 있다. 다만 주목하지 않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그녀는 사랑이 깨지는 것을 나서서 막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랑이 깨지고 녹아서 마블링을 그리기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그녀의 이러한 수동성은 정해진 시간에만 화를 쏟아낼 수 있는 「芸亭 6」의 화자와 유사한 제한적인 면모로 보인다.

 

「<허니밀크랜드>의 안개 아침」은 “사랑하는 사람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돌아갈 시간을 잃어버”리고 “시간의 구멍을 잊어버”렸다. 사랑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여러 방해와 장애물로 인해 “영원히 빗속을 헤매”고 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못한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미싱을 돌리”지만 “끝내 바늘은 부러”지고 만다. 사랑을 하는 사람도 아프지만,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의 세계 또한 부러지고 무너진다.


야속하게도 이러한 사랑의 고통과 깨짐은 예상치 못하게 화자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벌어진다.

 

 

붉은 양귀비가 

번외의 야드에 피어났을 때


나는 그것을 너에게 몹시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는 나에게 쌀쌀하게 말한다


<이제 그만 전화해 피곤하다>


화단을 만들고 흙을 돋우고

잡초를 뽑아주고 물을 준 곳에서는 말라가는데


나는 한 번도 돌보지 않은,

지게차가 건축 폐기물을 쏟아붓고 간 그 자리에

왜 그 붉은 양귀비가 피어 있을까


너무 붉은 그것은

언젠가 손목에 상처가 났을 때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 같아

흰 수건으로 꽁꽁 동여맸지만

자꾸 손수건에 배어나는 그,

찝찔하고 물컹하고 따뜻한 그것

그리고 양귀비의 잎은 꼭 쑥갓 같아서

씹으면 씁쓸할 것 같은데

꽃잎은 사랑에 빠진 연인의 피처럼 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이제 피곤해, 제발 그만 연락했으면 좋겠다>


계절은 유월인데 십이월에 가 있는 너의 목소리

나에겐 언제나 번외의 야드

 

「番外의 야드」 전문

 


화자가 가꾸는 화단에서는 말라가던 붉은 양귀비가 예상치 못하게 건축 폐기물이 가득한 곳에서 피어난다. 화자가 사랑하는 너는 마치 붉은 양귀비 같다. 화자가 정성스럽게 사랑을 주고 아껴줄 수 있는 공간에서는 쌀쌀하다가 화자의 번외 공간에서는 생기 있게 피어있다. 그래서 화자가 본인의 야드에서 보는 번외의 야드 속 양귀비는 “언젠가 손목에 상처가 났을 때/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처럼 고통스럽기만 하다. “흰 손수건으로 꽁꽁 동여맸지만/ 자꾸 손수건에 배어”나서 이 고통스러운 사랑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붉은 양귀비의 꽃말은 약한 사랑, 덧없는 사랑이다. 약하고 덧없을지라도, “씹으면 씁쓸할 것 같”아도 어쨌든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피처럼” 달콤하다. 이것이 작가가 이 시집에서 사랑을 말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통과 아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정말 그렇다면 ‘고통과 아픔’에서 그쳤을 터, ‘고통스럽고 아픈 사랑’일 필요가 없다. 이 시집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바로 ‘사랑’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쨌든 사랑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음이 고통 사이사이에 드러난다.

 

 

아무도 각설탕의 각이 어떤 각인지

정확히 설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세계의 가장 큰 비극인데

사실 비극은 너무 천차만별이고

이 세계는 너무도 세심하게 갈라져 있어서

그 틈 사이에 사는 난쟁이 배우들이 생겨날 수밖에


나는 그들과 밤마다 만난다

만나서 꿈의 계산서를 받아 온다

그들은 각설탕의 각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계산한다

심지어 사막에 사는 염소, 아라비아오릭스의 뿔까지도

너무 잘 계산하고 있어서

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모르는 각설탕의 角」 부분

 


화자의 세계에서는 각설탕의 각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각설탕의 각이 어떤 각인지/ 정확한 설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 세계의 가장 큰 비극”이다. 사랑이 세계의 중심이지만 사랑이 깨지는 것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그것을 목도하는 그녀마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세계의 비극”(「<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인 것처럼 말이다. 

 

다만 “비극은 너무 천차만별이”라 세심하게 갈라진 세계의 틈 사이로 난쟁이 배우들이 생겨난다. 화자는 밤마다 꿈속에서만 그들을 만나 꿈의 계산서를 받아 온다. 화자가 바라던 대로 “각설탕의 각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계산”하고 있어서 화자는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사랑이 깨지는 비극에도 틈은 있고 그 사이로 그럼에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그것이 비록 현실이 아닌 꿈일지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 자체에 의미가 있다. 꿈은 현실 세계에서의 욕망이나 바람이 드러나는 장이다. 화자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뒤섞이고 깨지는 세계에서의 아픈 사랑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작가가 앞서 비극과 무너짐을 보여줬다면 이제부터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비가 오면 발이 빠진다

발이 빠지면 우리는 녹는다

녹은 후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녹지 않으려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모서리부터 회색으로 칠한다

회색에서 짙은 먹색, 먹색에서 검정으로


(……)

 

먹구름이 아무리 비를 퍼부어도

태평양에 나가면 얼마든지 비의 재료를 만날 수 있으니까

우리는 홍수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썩은 흙의 강바닥, 흐르지 못하는 역겨움,

픽셀의 심연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픽셀의 심연」 부분

 


위 시 속 우리는 “녹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을 모서리부터 회색으로”, 그것이 검정이 될 때까지 칠한다.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자주 목도”(「<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하기만 했던 그녀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녹은 후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녹지 않기 위해 “정육면체가 구가 될 때까지” 구석구석 칠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는 홍수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썩은 흙의 강바닥, 흐르지 못하는 역겨움,/ 픽셀의 심연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것은 마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위로 같다. 이 시집의 주요 세계가 시공간의 뒤엉킴과 사랑의 고통이듯 위 시에서는 화면의 아주 작은 점인 픽셀만큼의 공간에도 심연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이제 아프기만 하진 않는다. 홍수가 넘치고 흙의 강바닥이 썩고 흐르지 못하는 역겨움을 견디자고 말한다. 그 작은 픽셀의 심연까지도 말이다. 견디는 것을 넘어서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나아간다. 혼란스러운 세계 탓에 우리의 사랑이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이 검정으로 칠해질지라도 “동굴의 늑대가 볼 수 있는/ 몸을 숨긴 오소리를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수풀의 뱀이 볼 수 있는/ 덜덜 떨고 있는 두더지를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검은 우주는 더 이상 검지 않”(「검은 우주는 검지 않다」)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유형진이 시집『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 속의 시와 이 글에서 계속 말했듯 참으로 아프다. “내가 만질 때마다 너는 아”프고(「<허니밀크랜드>의 녹슨 이마와 축축한 손」) 아파서 “집 안에서도 눈이 내려 쌓이는 집에서/ 나는” 운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을까. 아파서 사랑이고 아파도 사랑이고 그렇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뒤엉키고 모든 게 섞여버린 세계마저 아름답게 보일 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타조가 “날지 못하는 새라서가 아니라” “달리기를 너무 잘하고/ 게다 눈이 너무 예쁘고 착해서 슬픈 거였”(「새 이름을 부릅시다―시인 이영주에게」)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변정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