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이파네마 말고 리우에서 온 여자

손님, 환상은 끝났습니다
글 입력 2023.07.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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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을 외면으로만 보아 그 달콤한 과육은 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어떠한 것을 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에서는 다채로운 브라질 문화를 다룹니다. 삼바와 축구, 자유와 열정… 그 속에 있는 이야기에 한 입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왜 브라질이냐고요? 이유는 없습니다. 수박, 맛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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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tell you about a different Rio (yeah)

또 다른 리우에 관해 말해줄게

The one I'm from, but not the one that you know (hey)

내가 태어난 곳, 너는 모르는 그곳 말이야

The one you meet when you don't have no Real (ay)

헤알화가 없을 때 가게 되는 곳이지

 

 

 

‘돈내’ 나는 뮤비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것 같지만 한동안 케이팝 팬덤 사이에서 ‘돈내가 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주로 아이돌 신곡 뮤직비디오를 칭찬할 때 쓰이죠. 특히 코로나의 시대였던 2020년도, 2021년도에는 ‘돈내가 난다’는 표현이 이미 막강한 마케팅 문구로 자리 잡았던 것 같았습니다. 케이팝은 언제부턴가 자본의 논리가 막강하게 작용하는 세계가 된 것 같습니다.

 

케이팝의 세계에서 뮤직비디오는 음악 산업의 오랜 역사와 같이 여전히 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마케팅이라는 노골적인 목적을 숨기며, 대중의 지적인 호기심과 욕구까지 채워주는 예술에 경지에까지 도달했죠.

 

새로운 체험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좋은 소품과, 좋은 카메라, 더 좋은 세트, 더 좋은 배우와 더 좋은 작가를 사용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시기부터 ‘돈내나는’ 혹은 ‘부내나는’이라는 수식어는 케이팝에서 어떤 하나의 지향점이자 미래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과거에는 자본의 힘을 받지 못해 어설픈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가 나중에는 돈이 펑펑 쓰인 티가 나는 영상에서 춤추는 아이돌을 볼 때 리스너들의 쾌감이 더 강해진다고 할까요.

 

브라질 디바 아니타의 ‘Girl From Rio’ 뮤직비디오 역시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우선 한번 보시죠.

 

 

Anitta - Girl From Rio MV

 

 

 

과거로 돌아가는 브라질 가수


 

아니타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성공한 탑급 가수입니다.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잘 정돈되고 깔끔한 세트를 보여주죠. 이번 뮤비에서 그의 의상은 완벽합니다. 백댄서로 등장하는 남자들의 피지컬 역시 끝내주고요! 이번 컨셉은 화사하고 귀여운 숙녀인가 봅니다. 'Girl From Rio'라는 노래의 제목부터가 ‘Girl From Ipanema’,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이자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찬가를 오마주했음을 드러내니까요.

 

그렇지만 처음의 허술한 가벽이 사라집니다. 아름답고 깔끔하던 배경은 사라지고 웬 버스가 나옵니다. 프리미엄 관광버스? 아니요, 그냥 왁자지껄 사람들이 타는 일반 버스요. 깨끗하고 도자기 같은 피부와 화장 따윈 없고 ‘날것의’ 아니타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뮤직비디오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죠.

 

아니타의 2022년 싱글 ‘Girl from Rio’는 성공한 그가 얼마나 부유한 뮤직비디오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리스너들의 기대를 과감히 좌절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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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ta - Girl From Rio. 아름다운 리우를 배경으로 하는 가벽이 사라지고 현실이 드러납니다.

 

 

 

‘두 유 노우 클럽’과 아니타


 

혹시 ‘두 유 노우 클럽(Do You Know Club)’이라는 밈을 아시나요?

 

이 밈의 유래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문화적 영향력을 떨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2000년대~2010년대로 돌아갑니다. 저는 두 유 노우 클럽을 '해외의 연예인이나 외국인을 인터뷰하는 리포터가 인터뷰 내용, 주제와는 관련이 없이 ‘두 유 노우’ 하며 한국을 대표할 만한 것들을 물어보는 관행을 자조하며 나타난 밈'으로 정의하겠습니다.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문화적 요소들이 주로 이런 클럽에 들어가는데, 과거에는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같은 운동선수들이 많았다면 2010년대 들어서는 싸이와 BTS를 비롯해 케이팝 아티스트들도 많이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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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에 업데이트된 두 유 노우 클럽 가입 멤버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갑자기 ‘두유 노우 클럽’을 물어보는 이유는, 만약 브라질에도 ‘두 유 노우 클럽’이 있다면 그곳에 가장 처음으로 가입할 만한 인물이 바로 아니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디바’라 했을 때 우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몇몇 이름들이 있죠. 아니타는 그들과 비슷한 영향력을, 어쩌면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로 치면 BTS나 싸이와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러 언어권을 섭렵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두 유 노우 싸이’라고 질문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에 더 나아가서 대외적인 상황에 있을 땐 싸이라는 가수가 한국의 문화적 상징이 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우리는 ‘흠뻑쇼’를 열정적으로 즐깁니다.

 

브라질에서는 정확히 이 위치에 아니타가 있습니다. 브라질이라는 나라를 대표하고 대중적인 인기가 있으면서도, 막상 해외에 나가면 괜히 쑥스럽게 만드는 문화적 기호. 어떤 나라의 문화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대표하는 어떠한 것. 이 중에서도 브라질 사람들이 아니타를 좋아한다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쑥스러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녀가 훵키(Funk, 이후부터 브라질의 훵크는 ‘훵키’라고 표기함)를 주로 다루는 음악가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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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ta - Vai Malandra. 아니타는 꾸준히 파벨라 파티의 이미지를 재해석합니다.

 

 

 

훵키 NO, 보사노바 YES


 

브라질 하면 어떤 음악이 떠오르세요?

 

당연히 삼바와 보사노바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삼바, 브라질로 팔려온 흑인 노예들만의 문화에서 발전해온 유서 깊은 음악과 춤 장르입니다. 보사노바, 1960년대 리우데자네이루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삼바를 재해석한 잔잔하고 로맨틱한 음악이죠. 이들의 역사와 비교해 보았을 때, 펑키의 역사는 비교적 짧습니다. 훵키라는 음악이 본격적으로 대중화가 되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이거든요.

 

훵키는 미국에서 건너온 펑크, 마이애미 베이스 장르를 브라질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장르입니다. 지금은 브라질의 훵키와 미국의 훵크가 완전히 다른 장르로 느껴지겠지만, 80년대~90년대의 훵키를 들어보면 미국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훵키라는 장르는 초기부터 브라질 사회에서 흑인이나 빈민층들이 겪는 차별과 공포, 사회적 문제를 담은 가사를 담은 노래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 음악 장르가 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유행했기 때문입니다. 파벨라의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파티를 열었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훵키=파벨라' 라는 문화적인 공식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르가 성장하면서 훵키의 다양한 하위 장르도 생겨났고, 파벨라 밖의 대중에게는 그중에서도 범죄와 관련되었거나 저속한 가사를 담은 훵키 음악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훵키는 저속한 음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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훵키에는 자극적인, 그렇지만 파벨라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있고 그것이 이 장르가 문화적인 편견과 차별에 시달린 이유입니다. 그래서 훵키는 브라질의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와 엮일 수밖에 없는데, 음악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훵키는 클럽이나 파티에서 틀 만한 빠르고 신나는 비트에 여전히 저속한 가사를 담고 있는 노래들이 많이 있지만, 그 속에는 브라질의 현대 사회가 빠짐없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성 훵키 음악가를 칭하는 '훵케이루'만이 있었다면, 현재는 여성 '훵케이라'도 있고, 훵키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퀴어 아티스트들도 존재합니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훵키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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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ta - Girl From Rio. 그가 이야기하는 진짜 리우가 이곳에 있습니다.

 

 

 

브라질의 과거와 미래, 아니타의 과거와 미래


 

다시 Girl From Rio로 돌아옵시다. 이 음악의 흥미로운 점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과거의 보사노바 음악에 트렌디한 트랩 비트를 믹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브라질의 풍경이 아닌 파벨라 사람들의 브라질을 보여줍니다. 이는 아니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 역시 브라질의 작은 파벨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기에 아니타는 더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가사에는 자신의 배다른 오빠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불장난 같은 연애 방식을 전시합니다. (아니타는 마음대로 연애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아티스트거든요) 그러면서도 브라질 여성들의 다양한 몸의 형태를 보여주고, 이들 모두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아니타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근간을 이루는 파벨라를 기억하는 이 작품을 그가 본격적으로 세계에 진출하기 직전인 2021년도에 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출신지를 기억했기에 그녀는 단단한 발판을 바탕으로 세계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아니타는 '엘리트의 음악'이기에 브라질의 문화를 충분히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던 보사노바의 대표적인 명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거기에 다양성이라는 브라질의 가장 큰 강점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아니타를 브라질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두 번째 에피소드 - ’이파네마 말고 리우에서 온 여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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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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