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Jazzy Night: 강재훈 트리오 Gershwin Song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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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장르 중에서 개인적으론 클래식이 좋다. 보다 정확히는, 가사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기악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가사로 인해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이 좀 더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재즈 역시 참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누구에게나 익숙한 작품들로도 재즈를 연주할 수 있고, 클래식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즈는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나에게도 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정작 재즈 공연을 많이 다녀보지는 못했다. 재즈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매력적이면서도 복잡하기도 하고 그 이유로 어렵게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차에, 7월 7일에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거슈윈 작품으로 재즈 공연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공연의 연주자는 강재훈 트리오였다. 재즈 피아니스트 강재훈과 베이시스트 박진교, 드러머 최무현이 만나 예술의전당에서 펼치는 재즈 공연. 심지어 이들이 연주할 것은 조지 거슈윈의 작품들이었다. 예술의전당에서 재즈 공연이 열리는 것 자체가 흔하지 않은 기회인데, 심지어 그들이 연주할 작품이 오롯이 거슈윈의 작품이라고 하니 내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주저 없이 이 공연을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프로그램 >
I Was Doing Alright
Strike Up The Band
The Man I Love
Who Cares?
Oh, Lady Be Good
Somebody Loves Me
- Porgy&Bess : Medley -
It Ain't Necessarily So
Summertime
I Loves You, Porgy
Bess, You Is My Woman Now
Liza
How Long Has This Been Going On?
Nice Work If You Can Get It
Soon
그런데 공연에 다녀오기로 결심을 한 것 치곤, 나는 새삼 재즈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재즈 음원을 듣기는 하지만, 정해놓은 아티스트의 연주를 듣거나 이를 파고 든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가볍게 듣기만 했을 뿐이어서 대략적인 용어를 들어만 봤을 뿐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재즈 공연을 단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재즈를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고, 하다못해 페스티벌에 가서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새삼 이번 강재훈트리오의 무대가 나에게 어떻게 와닿을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원래 재즈 공연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강재훈트리오의 거슈윈 송북 무대는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었다. 클래식에선 아무리 짧은 편인 1시간 반 남짓한 공연이라 해도 인터미션이 있는 편인데 1시간 30분을 내리 달리는 게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공연을 보고 나니 내가 했던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재훈트리오가 들려준 재즈의 순간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처음 예정된 프로그램에서 꽤 변경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거슈윈의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My Man's Gone Now가 원래는 공연의 첫 곡이었는데 이 작품이 빠지고, 원래 두 번째로 예정되어 있었던 I Was Doing Alright이 첫 곡이 되었다. 그리고 거슈윈의 재즈 중에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I Got Rhythm이 당초의 계획과 달리 연주되지 않았다. 너무 아쉬웠다. 대신에 강재훈트리오는 스탠더드 중의 스탠더드인 The Man I Love은 당초 계획대로 연주하고 Summertime은 공연 계획을 바꿔가면서까지 넣었다. 그래서 공연 당일의 세트리스트는 변경은 꽤 많았으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구성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공연의 시작은 재즈피아니스트 강재훈의 짤막한 인삿말 이후 연주된 I Was Doing All Right으로부터였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더웠던 여름날의 기억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마치 선선한 가을밤이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덥고 습하고 끈적이는 모든 것들을 씻어내리는 연주였다. 피아니스트 강재훈의 터치는 특히 이 가볍고도 산뜻한 분위기를 잘 살려서 연주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드러머 최무현의 연주, 베이스로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베이시스트 박진교의 연주와 어우러져 낭만적이고도 재지한 선율이 순식간에 리사이틀 홀을 가득 채웠다.
강재훈트리오의 연주는 스윙을 베이스로 했다. 그들은 스트레이트 어헤드를 그대로 계승하는 연주를 지향하기 때문에, 흔히들 재즈 하면 생각할 법한 그 리듬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윙이 두드러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을 연주할 때, 재즈피아니스트 강재훈의 터치는 주로 가볍고 통통 튀는 느낌이 있었다. 스윙감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타건이 주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연주할 때나 휘몰아치는 즉흥 연주를 할 때에나 그 대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베이스가 달랐던 작품이 있었다. 바로 Porgy&Bess에서였다.
거슈윈이 만든 오페라 Porgy&Bess는 재즈뿐만 아니라 흑인영가, 블루스의 영향까지 고루 녹여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왔던 노래들로 메들리를 만든 이번 리사이틀 플레이리스트들은 그 앞서 연주되던 스윙재즈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블루스적인 요소가 더 많이 느껴졌던 것이다. 특히 피아니스트 강재훈이 솔로로 연주했던 I Loves You Porgy는 블루스풍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또한 협주가 아니라 독주를 하는 강재훈이 보여주는 비르투오소적인 면모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다른 세션 없이도 그는 타건만으로 순식간에 관객들을 집중시키고 또 압도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피아노만이 메인인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즈는 솔로도 가능하지만 트리오가 된 이상, 모든 악기가 다 필수적인 악기들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그 풍성한 사운드와 살아있는 리듬감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베이시스트 박진교의 역할은 참 컸다. 손으로 콘트라베이스의 현을 하나하나 뜯으면서 베이스를 연주해주었던 그는 가장 기본이 되는 코드음을 짚으면서 저음부의 중심을 잡아 앙상블의 근간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베이시스트 박진교가 워킹베이스를 보여줄 때에 보고 들으면서 느끼는 그 쾌감, 심지어 베이스로 그가 카덴차마냥 솔로 즉흥연주를 선보였던 순간은 극도로 짜릿했다.
베이시스트 박진교의 제자이자 재즈씬에 기라성처럼 등장해 성장하고 있는 드러머 최무현 역시 아주 인상적인 연주를 보여주었다. 첫 곡에서부터 드러머 최무현이 손에 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보통 드럼을 칠 때 스틱을 쓸 텐데 그는 마치 붓처럼 생긴 무언가를 들고 드럼과 심벌즈를 치기도 하고 또 두드리거나 긁듯이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공연 끝나고 찾아보니 그가 쥐었던 게 와이어브러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번 재즈를 음원으로 들었다보니 드럼 소리가 참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효과를 내는 게 와이어브러쉬였던 것이다. 그는 와이어브러쉬뿐만 아니라 스틱도 종류를 바꿔가면서 사지를 따로 놀려가며 스윙감을 극대화했다.
베이시스트 박진교가 즉흥연주의 순간을 가졌던 순간은 한 곡이었던 데에 반해, 드러머 최무현이 이번 리사이틀에서 솔로 즉흥연주의 기회를 가진 순간은 두 번 있었다. 바로 두 번째 곡이었던 Strike Up the Band와 공연의 말미 즈음에 연주되었던 Liza에서였다. Strike Up the Band에서는 강재훈의 즉흥연주를 이어받아 가벼운 터치로 드럼의 리듬감을 눈부시게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Liza에서 최무현이 솔로로 선보인 순간은 훨씬 더 강렬하고 압도적이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터치로 드럼을 두드리면서 그야말로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이렇게 멋진 재즈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관객들이 강재훈과 박진교, 최무현에게 환호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마지막 곡 Soon이 끝나자마자 객석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강재훈트리오에게 화답했다. 세 사람은 잠시 무대 뒤로 빠졌다가 약간의 시간을 가진 다음 다시금 무대 위로 나섰다. 앵콜곡을 연주하기 전에, 마이크를 잡고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강재훈으로 인해 관객들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마치 앵콜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박수와 환호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듯이 말하는 그 상황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런 연주를 보고 들었는데 어쩜 관객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강재훈트리오는 관객들에게 Embraceable You를 들려주었다. 짧지만, 본 프로그램만큼이나 여전히 아름다운 거슈윈의 작품이었다. 본 프로그램의 여운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어서 더욱 대미를 장식하기에 적합했던 듯하다. 끝나는 순간 벅차는 마음을 안고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강재훈트리오의 거슈윈 송북 무대는 그 어느 한 순간도 빛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한여름밤에 만나는, 마치 선선한 가을녘의 아름다움 같은 재지한 그 순간들을 쉬이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강재훈트리오는 재즈브릿지컴퍼니와 함께 기획하고 주최한 이번 무대를 필두로 국내에서 다양한 연주활동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들이 앞으로 더 많은 트리오 활동을 보이면서 거슈윈뿐만 아니라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개발하고 관객들에게 선보여주길 바란다. 훗날 다시 강재훈트리오를 만났을 때 그들이 얼마나 눈부신 순간들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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