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런 벽지와 팬티 속 그녀들이 보았던 것은 [도서/문학]

샬롯 퍼킨스 「누런 벽지」,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고
글 입력 2023.07.07 13: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라 하면 어떤 지위와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몇십 년간 이루어진 한국 사회의 가파른 경제 발전과 변화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했으며 그 역할의 선택권이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결혼과 출산의 필수성이 옅어짐에 따라 미혼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과 가사보다 삶의 자유와 미래 개척에 더욱 집중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발전과 개선에 속한다. N번방, 데이트 폭력, 성폭력, 성차별, 가부장제 등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들이 여전히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먼 과거에는 이것들이 당연시되는 사회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다룰 샬롯 퍼킨스의 「누런 벽지」와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이로 인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압박, 강요를 담고 있다.

 

 

 

샬롯 퍼킨스의 「누런 벽지」


 

샬롯 퍼킨스의 「누런 벽지」는 산후우울증을 겪는 화자가 남편 존, 아이와 대저택으로 휴가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작품이다. 의사인 존은 화자에게 ‘휴식 요법’을 처방한다.

 

 

결국 나는 인산염인지 아인산염인지와 강장제를 복용하고, 여행을 다니고 바람을 쐬며 운동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완쾌할 때까지 일하는 것은 일절 금지당했다. 나는 존과 오빠가 내린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기쁨을 찾고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 「누런 벽지」 중

 


‘휴식 요법’은 일이나 사회생활, 가사 그 무엇도 하지 않고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휴식 요법’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대 여성에 대한 인식과 가스라이팅이 존재한다.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여성은 가부장제의 틀에 갇혀 억압과 고통받는 삶을 살았다. 남성들은 여성을 육아와 집안일만 하거나 꽃처럼 집에서 가만히 지내는 위치로 보았고, 책과 창작처럼 교육과 활동적인 일을 할 시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겼다. ‘휴식 요법’은 이러한 당대 여성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압박이자 억압인 셈이다.

 

 

나는 가끔 존에게 이유도 없이 화가 치민다. 예전에는 이렇게 예민하지 않았다. 아마도 신경쇠약 탓이리라. 존은 내가 자기 통제를 제대로 못 한 탓이라고 한다. ……존이 이렇게까지 나를 세심히 보살펴 주는데 고마워하지 않으면 배은망덕한 사람이겠지. ……고작 신경쇠약일 뿐인걸. 겨우 그것 가지고 아내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나는 존을 도우며 그이의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 주려고 했는데 무거운 짐이 돼 버렸다!

 

- 「누런 벽지」 중

 


더불어 화자의 병명이 신경쇠약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일방적인 휴식을 강요한 존의 행위는 가스라이팅으로 볼 수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정의되기 전부터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가 자의에 대한 판단력을 잃고 정신적인 황폐화를 불러일으키는 행위가 존재했던 것이다.

 

존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 화자는 그런 남편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하지 않고, 되려 남편을 챙겨주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한다. 「누런 벽지」에서는 이런 심리 상태를 악취로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방 안을 은은하게 맴돌기만 했던 냄새가 점차 심해지더니 화자의 머리칼과 몸에 스며든 것처럼 그저 말에 불과했던 존의 조언이 쌓이고 쌓여 화자의 사고를 붕괴시킨다.

 

남편의 말에 따라 육아실로 쓰였던 방에서 벽지만 보면 생활해야 했던 화자는 날이 지날수록 벽지의 무늬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 무늬 뒤를 기어다니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여자는 빛에 비쳐 창살처럼 보이는 벽지를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마치 방을 벗어나고 싶은 화자처럼, 방이라는 감옥과 남편이라는 창살에 갇힌 화자처럼 말이다. 결국 화자 스스로 벽지 속 여자가 되는 정신적 붕괴와 광기 어린 결말을 맞이한다.

 


131.jpg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


 

「누런 벽지」가 가스라이팅, 사회적 억압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와 파멸에 집중했다면,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 허구성에 초점을 둔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2002년 작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과 궤를 같이한다. 정이현은 모더니즘을 초월하고 일상을 포착하여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비추었다. 화자 ‘유리’는 매번 남자들에게 잠자리 직전까지만 허용하는데 그 선을 자신의 팬티로 정한다.

 

 

나는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입지 않는다. 고무줄이 헐렁하게 늘어나고 누렇게 물이 빠진 면 팬티는 말하자면, 나의 마지막 보루다. ……팬티를 사수하는 것은 세상을 사수하는 것이다.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중

 


이는 사회의 오래된 관습으로 자리 잡은 순결에 대한 화자의 맹신과 추종을 드러낸다. 이때 순결이란 결혼 전 여러 남자와 자는 것보다 결혼 후 첫 경험을 한 혼전순결을 지킨 여성이 남자로부터 점수를 딸 수 있으며, 이렇게 순수하고 유순하고 연약한 여성만이 결혼 후 가정을 잘 보살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화자는 자신의 낡은 팬티를 이러한 순결을 맹신하는 일의 장치로 사용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위와 같은 의미의 순결은 허구성을 지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작품 속 남자들은 모두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그려진다.


 

남자들은 다 똑같다.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 저 여자랑 한 번 자볼까 하는 궁리밖에 하지 않는 주제에 급할 때마다 비밀 병기처럼 사랑을 들이댄다.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중

 

 

여기서 남자들은 육체적 관계를 우선시한다. 차가 없어서 폼 나지 않거나 차가 있음에도 사랑한다는 말로 어떻게든 하룻밤을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결혼을 위해 잠자리 십계명에 따라 남자와 완벽한 하룻밤을 보내려고 하는 유리 또한 어리숙하게 그려진다. 십계명까지 외워가며 순결에 집착하고 본인의 혼전순결을 강조하지만, 수건에는 피 한 방울 묻어 나오지 않는다.

 

더불어 남자가 준 명품 브랜드의 가방은 단순히 선물일 수도 있지만 하룻밤을 보낸 대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는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순결과 그 관념의 허구성을 잘 보여준다. 순결한 여성이 우대받음에도 막상 관계에서 남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죄인이라도 된 듯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 또한 순결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허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리가 순결을 추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리가 꿈꾸는 것은 제목에서도 언급되듯 낭만적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이란 낭만이 가득한 사랑, 즉 유리에게는 완벽하고 안정적인 결혼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랑을 말한다. 유리는 남자의 능력과 재력을 따지고 자신의 순결을 이용하여 낭만적 사랑을 비즈니스처럼 행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낭만을 이루기 위해 낭만을 버리고 철저한 계획과 사회성을 이용하는 것 또한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리가 이 같은 모순을 행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다 큰 기집애들이 겁도 없어. 너희들, 세상이 아무리 바뀐 거 같아도 여자는 여자야.”

……“금 가는 순간. 그 순간 끝장나는 거야!”

“그렇지. 못 붙이지.”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중

 

 

유리의 부모님은 금이 가고 깨지는 유리처럼 여자를 조악하고 연약한 대상으로 생각한다. 또한 유리의 가정은 가부장제의 모습을 띠고 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허울만 좋은 중소기업 임원의 아내로, 이십 몇 년 결혼 생활 동안 백화점 세일 때 허접한 옷 골라 사고 문화센터 노래 교실에 다닐 수 있게 된 걸 생활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쉰 살 다 된 여자의 인생을 떠올리면 정신이 바짝 나곤 했다. 나를 임신하지 않고 아빠 같은 남자와 서둘러 결혼하지 않았다면 엄마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중

 

 

유리의 어머니는 결혼 후 본인보다 가정에 충실한 주부로 살아왔다. 유리가 어머니를 묘사한 대목을 보면 그녀는 어머니와 같은 삶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편향적인 인식을 가진,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유리가 사회적 관습인 순결에 의지하여 낭만적 사랑을 비즈니스처럼 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41.jpg


 

 

두 작품의 공통점


 

그렇다면 두 작품이 공유하고 것은 무엇일까. 「누런 벽지」와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여성에 대한 시대별 인식과 그에 따른 여성의 부조리, 차별, 억압을 그려낸다. 각 작품에서 이를 담고 있는 요소가 바로 ‘장소’라고 생각한다. 

 

「누런 벽지」는 결혼한 여성의 삶과 그 속의 억압, 고통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이는 육아실이었던 ‘’으로 나타난다. ‘방’은 한 층 전체를 차지할 만큼 넓고 통풍이 잘 되며 바람과 햇빛도 넉넉하게 들어오지만, 화자는 이곳에 갇혀 사회와 차단되고 의지와 자유를 빼앗긴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사회적 관습으로 굳어버린 낭만적 사랑과 순결에 대한 허구성을 비판한다. 여기서는 ‘강남’이라는 지역이 그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강남’은 불빛 가득한 높은 건물들이 빼곡하고 줄지어 선 차들이 보이는 곳임에도 정작 유리는 스프링이 삐걱대는 침대, 변색된 조악한 품질의 도배지가 발린 콧구멍만 한 크기의 방에서 팔 년 넘게 살았다. 즉 ‘방’과 ‘강남’은 겉보기에는 좋고 휘황찬란하게 보이지만 그 내막은 억압적이고 허황된 공간으로, 작품 속 주인공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녀들은 누런 벽지와 누렇게 물이 빠진 팬티 속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누런 벽지」의 화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열악함과 부조리,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남편의 강요와 억압을 사랑으로 볼 수밖에 없었으며, 벽지 무늬에서 감금되고 억압받는 스스로를 보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유리는 가부장제 가정을 지켜보며 여성이라는 성별과 순결을 편협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사랑을 낭만성, 즉 흠도 탈도 없이 결혼으로 완주하는 완벽한 과정과 비즈니스로 본다.

 

화자와 유리는 벽지와 팬티에 물든 누런색을, 오래되어 빛이 바래고 곰팡이가 슬며 다 뜯기고 늘어난 그 누런빛을 만지고 보고 입으면 살았다.

 

 

산다는 건 정말, 수많은 판단과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중

 

 

그러나 유리가 깨달은 바처럼 삶은 수많은 판단과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녀들, 그리고 우리는 온전한 자의를 가지고 판단과 선택을 할 자유가 있으며 이를 통해 각자의 삶을 개척해 나갈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누런 벽지」와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여성이 사람이며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정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2.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