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바다가 무섭다. [사람]

글 입력 2023.07.0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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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가 무섭다. 정확히는 깊은 물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릴 적 1년 가까이 수영을 배웠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물에 들어갈 때는 어김없이 튜브를 챙긴다. 바다에서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허리춤까지 오는 깊이에서 참방참방 물장구치는 정도.

나에게 물놀이란 '원할 때 언제든지 땅을 딛고 물 밖으로 일어선다'는 필요 조건을 전제한다.

물 표면이 귀까지 차오르면 주변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 고요함이 전달되는 순간 두려움이 휘몰아친다. 내 목소리가 주변으로 퍼지지 않고 몸 안에서 울리는 현상도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마치 컴컴하고 광활한 우주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수경도 안 챙겨 눈까지 못 뜨는 상황이라면 물속에서 몸을 푹 담근 채 단 5초도 버티지 못한다.

비슷한 일례로, 어두워 거리 가늠이 안 되는 공간이나 칠흑 같은 밤을 마주할 때도 종종 숨이 턱 막히곤 한다. 어둠이 날 삼켜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압도될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깊은 장소뿐만 아니라 빠져나오기 어려운 심오한 감정이 나에겐 늘 기피 대상이었다.

구슬픈 발라드는 내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러본 적이 없고, 안타깝거나 비극적인 영화 및 드라마 장면은 무조건 건너뛰기 기능을 사용한다.

심연이란 늘 무서운 법이다. 정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발을 담그면 현실로 돌아오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나의 경우 더 심하다. 오죽하면 신문 사회면에 실린 사건/사고 소식에 며칠 밤이 심란한 적도 있다.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에도 마음이 무거울 정도니.

웬만하면 심연 그 근처도 얼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그런데 삶은 또 어쩔 수 없이 심연과 맞닿아 있더라. 삶에도, 내 안에도 깊숙한 바다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쓸 때 종종 심연까지 헤엄쳐 묵직한 무언가를 꺼내 와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괜히 커피를 마시고 명상 음악을 듣고 휘갈겨 쓴 일기장을 뒤적거려 보기도 한다. 사실 헤엄도 못 치고 돌아올 때가 더 많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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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에 카오스가 있어야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매일 일몰 후 찾아오는 어둠처럼 심연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냥 밝은 곳에서 예쁜 것만 보며 참방참방 물장구치듯 살고 싶은데.

내 소망과 달리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한다. 심연은 삶에서 당연하고 꼭 필요한 요소라고.

책<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심연이란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 저자인 니체는 심연을 ‘빠져나오기 힘들지만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도약을 위해, 위대함을 위해 감수 해내야 하는 위험인 것이다. 다만 너무 심연에 빠져 허무주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의도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모두의 심연을 품고 살아간다.

나처럼 심연에 절대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

반면, 지체 없이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흠뻑 젖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깊숙이 잠수하면서도 언제든지 육지로 올 수 있다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해낸다.

난 아직도 심연이 두렵다. 겁도 많아서 깊은 바다에 다이빙하는 순간은 평생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차피 심연이 사람의 숙명이라면 조금은 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밤이 찾아오면 와인 한 잔 곁들여 밤의 고요함을 즐겨보고, 바다를 만나게 되면 짧은 거리의 잠영에도 도전을 해볼까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 언젠가 춤추는 별을 만날 수 있겠지.
 
 
[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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