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모두가 친구가 되는 정원을 그리다 - 문경 작가

글 입력 2023.06.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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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정원_Acrylic,Gouache,Oilpastel on Canvas_145.5x97cm_2023.jpg

바다정원 © 문경

 

 

그림을 볼 때, 많은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그림의 첫인상을 결정 짓는다. 색색의 꽃과 풀, 나무 그리고 동물이 있는 문경 작가의 작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장난기 가득한 눈’이다. 코끼리 사자, 토끼, 고양이 등 그림 속 동물의 생김새는 달라도 무언가 즐거운 일을 앞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물론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그림 속에서 쉽게 친구가 되어 어울린다.

 

그림 속 동물들은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일상에서 좀처럼 짓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나면 그림에 담긴 씩씩하고 밝은 에너지가 잠시나마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지난 16일에 만난 문경 작가에게 이 밝은 에너지의 출처를 묻자 기분이 좋을 때 주로 그림을 그려서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를 진행하는 문경 작가의 눈에도 장난기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만큼이나 밝고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림과 대화하며 그리는 그림



profile.jpg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익살스러운 표정의 동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요. 동물을 주로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동물을 그릴지 정하는 기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나 짧은 영상을 즐겨 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을 그리게 됐어요. 특히 ‘동화정원’ 테마를 작업하며 동물을 많이 그렸네요. 어떤 동물을 그리겠다고 정해두고 그리지는 않아요. 강아지, 사자, 토끼, 고양이 등등 대체로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들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들어보니 그림에 즉흥적인 요소가 꽤 많은 듯해요.

 

‘동화정원’이나 ‘바다정원’처럼 큰 테마만 정해놓고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작품 하나 그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요. 그리는 속도 자체는 빠른데, 한 번에 완성하는 게 아니라 계속 지켜보며 작업을 이어 나가곤 해서 구성부터 완성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림과 대화하면서 그린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림이 저에게 말을 걸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가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느낌이랄까요?

 

 

최근 작업은 대부분 ‘동화정원’과 ‘바다정원’ 테마인데요, 이 테마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작가는 자기가 느끼고 경험한 것으로부터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당시 노들섬에 작업실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곳 풍경에 영감을 받았어요. 통영과 거제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섬이 많은 바다 풍경에도 영감을 받았죠. ‘동화정원’과 ‘바다정원’ 작품들을 보시면 여름 노들섬의 버드나무와 한강의 분위기, 그리고 통영 거제의 바다 풍경을 느낄 수 있어요. 

 

 

물의정원_Acrylic,Gouache,Oilpastel on canvas_80.3x116.8cm_2022.jpg

물의정원 © 문경

 

 

그림을 그리며 ‘이 작품이 감상자에게 이렇게 다가가면 좋겠다’ 같은 생각도 하시는지 궁금해요. 


작가의 역할은 작품을 온전히 만드는 것까지고, 감상은 온전히 감상자의 몫이라 생각하기에 제가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제 작품이 좋게 와닿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제 그림이 바쁜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자연 안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와 천진난만한 동물 친구들의 유머러스함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작품 중 작가님이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노들섬에서 작업한 작품 중 하나인 ‘물의 정원’을 좋아해요. 그림 속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친구가 되고 달도 물 안에서 쉬고 있는데, 제가 상상하는 물의 정원 모습이에요. ‘봄의 정원’ 테마로 그렸던 ‘분홍 토끼가 일구는 정원’ 역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초창기 그림이라 지금 보면 약간 어설프기도 하지만 그때만의 감성이 담겨 있어서 좋습니다.

 

 

 

모두가 친구가 되는 세계


 

바다정원_Acrylic,Gouache,Oilpastel on canvas_60.6x45.5cm_2022.jpg

바다정원 © 문경

 

 

작가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동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제 성격이 그 표정을 닮은 것 같아요. (웃음) 저도 장난꾸러기 같은 구석이 있거든요. 그런 내면이 그림에 반영되는 게 아닐까요.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때 주로 그림을 그리는 편이기도 해요. 작가마다 다를 텐데 저는 우울하거나 슬플 때는 그림이 안 그려져요. 

 

 

먹고 먹히는 관계인 사자와 토끼가 그림 속에서 함께 있는 모습도 눈에 띄어요.


사자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사자도 성격이 제각각이더라고요. 무리 안에 용맹한 사자가 있다면, 소심한 사자도 있었어요. 그런 사자라면 토끼랑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그림이 시작되었어요. ‘채식주의자 사자와 육식주의자 토끼’라는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죠.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관이 굉장히 뚜렷한 것 같아요. 


제 작품 속에서는 동물과 사람을 비롯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자신만의 세계관이 없으면 작가로서 매력이 없는 것 같아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웃음) 기술적인 부분도 훌륭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자기 생각, 자기만의 것이 확실히 있어야 작가로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뚜렷한 세계관을 만드는 비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의식적으로 노력했다기보다 삶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너무 휘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이 뭐라 하든 나는 이 길로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곧 작가이기에 스스로의 내면을 잘 가꾸어 나가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스스로 확고한 철학과 개성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작품도 개성 있고 매력적으로 나온다고 믿어요.

 

 

그럼 작가로 활동하시며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나 특정 순간이 있었을까요?


전시를 하는데, 오늘 오신 분이 다음날 또 오신 걸 봤어요. 이틀 내내 제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감상하시더라고요. 그런 분은 흔치 않죠. 그분께 제가 작가라고 밝혔더니, 제 손을 잡고 이런 그림을 그려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순간 내가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작가로서 정말 행복했어요.


또 소수지만 제가 어디서 전시를 하든 매번 와주시는 팬분들이 계세요. 늘 고맙고 기억에 남아요. 저도 누군가의 팬이긴 한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거든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찾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작업을 계속할 수 있어요. 취미로 그림을 그릴 때는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만 그림이 본업이 되면 제 그림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다음 작업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팬의 존재는 정말 소중하고 감사해요.

 

 

왜 그림 그리는 게 좋으셨나요? 작가님이 그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치유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다를 텐데 제게는 그게 그림이었어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오면 늘 그림을 그렸죠. 물감을 풀어헤쳐 놓고 마음껏 그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도 그림 속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더 그 세계에 푹 빠져든 것 같아요.

 

 

 

취미가 업이 되기까지


 

봄의정원__Acrylic,Gouache,Oilpastel on Canvas__91x73cm_2020.jpg

봄의정원 © 문경

 

 

다른 일을 하시다가 2017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업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려서부터 창작하고 만들고 관찰하는 걸 좋아했지만, 업으로 삼을 생각은 못 하고 전공도 취업도 크게 관련 없는 분야를 택했어요. 주변을 보면 회사와 잘 맞는 친구도 있는데 저는 일을 할수록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커졌어요. 나만의 이야기를 담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죠. 회사에서 승진하는 미래를 그려봐도 그건 내 삶이 아니라는 느낌이었고, 별로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았어요. 


회사에 다니며 계속 그림을 그렸죠. 겸업은 할 수가 없어서 주로 공모전에 참여했는데, 꽤 결과가 좋았어요. 백화점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서 전 매장에 제 그림이 사용되기도 했으니까요. 지금보다 더 현실 감각이 없을 때라 나 진짜 재능이 있나 보다, 이 길로 가야 하나 보다 했죠. (웃음) 

 

 

퇴사 후에는 어떠셨나요.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초반에는 되게 힘들었어요. 그림책 작가를 꿈꾸며 퇴사했지만 생각보다 작가 데뷔가 어려워서 일러스트 외주를 시작했어요. 그것도 저와 잘 안 맞았어요. 저는 제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외주는 결국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순수 회화 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수 회화 쪽에서도 저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워요.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상관없는 회사 생활을 하다가 뛰어들었으니까요. 잘 모르기에 어쩌면 많은 도전을 하며 작가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온 느낌이랄까요? 저와 결이 맞고 프로젝트가 흥미로우면 다양하게 시도해 봤어요. 


서울시 공공미술 북벤치 라이브 드로잉도 해보고 대만문화부에서 주관하는 ‘Creative Expo Taiwan Talent 100’ 해외 초청 아티스트로 선정돼서 대만도 다녀오고, 어린이날 부산 힐튼 호텔 앞에서 테이핑아트와 윈도우 페인팅도 해 봤어요. 다양한 시도와 경험들 속에서 성장을 해왔던 것 같아요. 

 

 

여름안에서_Acrylic,Gouache,Oilpastel on canvas_80.3x116.8cm_2022.jpg

여름 안에서 © 문경

 

 

작가님처럼 업을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을 조언하고 싶나요?


제가 조언을 드릴 입장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니 본인이 원하는 걸 해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일에는 어려운 부분과 좋은 부분이 같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그나마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저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앞으로 작가님이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책 작업을 계속하실지도 궁금해요.


사실 이미 더미북을 만들어본 적은 있어요. 스스로 만족하지 않아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요. 앞으로도 일러스트 작가나 회화 작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것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림책 작업도 다시 해보고, 다른 작가님과 하는 프로젝트도 저와 맞는다면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상반기가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는데요, 중간쯤에서 돌아본 작가님의 2023년은 어떤 모습인가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작가로 지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아요. 올해는 여기저기 좋은 제안을 받아서 좋은 분들과 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반기도 정말 바쁘게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웃음) 앞으로의 일정으로는 일단 7월 5일부터 희림건축과 함께하는 가상 갤러리 ‘라루나’에서 제 개인전을 열어요. 많은 기술이 사용된 전시라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7월 22일부터 열리는 <렛츠 플레이 아트 전>에도 참가해요. 얼마 전에 같은 장소에서 했던 <디자인아트페어>와 같은 주최인데, 다시 한번 제안을 주셨어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이어 기회를 주시는 인연들 덕분에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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