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퍼를 바라보는 15가지 키워드, 도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글 입력 2023.06.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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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8월 28일까지, 에드워드 호퍼 전 '길 위에서'가 진행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실제로 접한 적이 없었던 나는 4월에 전시가 시작된 첫 주에 바로 전시를 보러 갔었다. 사람이 정말 많은 전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전시였다. 전시의 구성이 엄청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호퍼의 둔탁하고도 무심한 터치가 어쩔 도리 없이 마음을 건드리는 걸 느꼈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새삼 호퍼 전을 보러 가기 전보다 다녀온 후로,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호퍼에 대한 책이 나오게 되면 유심히 보게 된 것도 호퍼의 작품을 직접 본 이후부터였다. 당장 5월에도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곧바로 읽어보았는데, 이번에도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신간 소식을 접하게 되니까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연식이 저작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다.


에드워드 호퍼 저작권사가 공식 인증한, 국내 저자가 출간해낸 최초의 공식 인증 에드워드 호퍼 비평서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에 대해 미술사가 이연식은 과연 어떤 비평을 내릴까. 그가 바라본 호퍼는 어땠을까. 그가 말하는 호퍼는 나에게 또 어떤 의미로 와닿을까. 그런 점들을 생각하니까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책 소개 >


미술사가 이연식이 국내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세계를 조명하고 분석한 책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출간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후 미술이론을 연구한 이력을 바탕으로 캔버스의 안과 밖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분석, 미술사를 다각도로 살펴보며 예술의 정형성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다양한 저술·번역·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호퍼의 작품을 15가지 주제로 나누어 바라보고, 그의 작품 세계에 숨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 이연식은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55점을 수록하여 분석한다. 이 중에는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에드워드 호퍼 전에서 감상 가능한 작품도 있다. 그래서 아직 전시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의 작품을 보고 이 책을 읽거나 혹은 반대로 이 책을 읽어본 다음 전시를 보는 것도 감상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접한 시점 자체가 이미 전시를 본 후였기 때문에, 이후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 우리가 쉽게 접하는 키워드는 바로 도시, 고독, 빛과 어둠 같은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에드워드 호퍼 전을 볼 때에 그런 생각들을 주로 하면서 감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미술사가 이연식은 호퍼를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볼 것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오직 그림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을 담고자 했던 호퍼의 시선이 어떤지를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히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주의 화가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이지 않기도 하다. 그 묘한 간극을 두고, 저자 이연식은 호퍼의 그림은 호퍼와 관객이 벌이는 하나의 게임으로 분석한다. 그림 속에 뻔한 암시를 담기도 하고, 의문을 자아내는 요소를 추가하고, 당황시킬 만한 요소까지 넣어 관객들이 작품을 뜯어보게끔 만든다. 혼자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법한 이 요소들을, 저자는 어떻게 살펴볼 수 있는지 책 속에서 편안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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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에 대해 저자 이연식이 제시한 여러 키워드 중에서, 생각보다 크게 에드워드 호퍼를 설명하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에로티즘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작품들을 보면 은근히 혹은 대놓고 성적인 요소들을 제시하면서 마치 관람객들을 우롱하는 듯하다. 이런 작품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고 뻔뻔스럽게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든, 은근하게 드러나든 간에 변함없는 것은 에드워드 호퍼가 상당히 짓궂은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호퍼가 그린 여성들, 특히 누드로 그려진 여성의 모습들은 대개 자신의 아내 조세핀을 토대로 스케치한 후 거기서 변형을 주어 만든 가상의 인물들이다. 그런데 전라가 아니라, 마치 관람객이 관음하는 듯한 형태로 그려진 여성들의 모습도 굉장히 많다. 이를 두고,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미명이 있기는 하지만,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의 창 속을 바라보는데 마침 그 속에 여성이 샤워타올을 두르고 있다거나 반쯤 헐벗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는 등 묘하게 표현해 두었다. 누가 봐도 관음하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에드워드 호퍼는 에로티즘이라는 카드를 아주 뻔뻔하고 대담하게 관객들에게 들이밀고 있는 셈이다.


미술사가 이연식이 표현한 것처럼, 이는 다소 유치한 방식이다. 그린 것은 호퍼 본인이면서 마치 관람객이 관음증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장치는 고약하다. 성적인 것을 활용하면서 더 깊은 것을 은유하거나 우회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호퍼는 그저 노골적으로 성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여성의 성만을 말이다. 왜 그래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다소 든다. 결국 그것이 '팔리는' 요소이기 때문인가?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이나 감정, 시각을 그려내는 방식에서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에로티즘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에드워드 호퍼의 의중이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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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유독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구도에 대한 것이다. 호퍼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일부 작품들은 보다 보면 대체 그가 뭘 그리려고 한 것인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을 그릴 때에 활용된다고 생각되는 그 정석적인 구도를 벗어난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메인으로 그린 것인지 모르겠고, 마치 시야가 방해받은 듯 잘못 찍힌 사진 같은 느낌도 들고, 때로는 제목과 작품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왠지 모를 의외성을 띤다.


그런데 아마도 사람들은 이 의외성 때문에, 무의식 중에 더욱 호퍼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심 어딘가에서 오늘,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장면. 작품으로서 완벽하게 갖춰진 구도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실재성이 있는 장면. 에드워드 호퍼가 자신만의 구도로 담아내는 것은 작품으로서는 의외성을 띤 것들일 수 있지만, 우리의 일상으로 시각을 넓혀본다면 지극히 편재(遍在)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을 비범하게 그려내는 것에 끌리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의 구도에 대해 저자가 설명하는 꼭지는, 생각보다 짧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대목이었다. 관람자가 마치 관음하는 듯 혹은 관조하는 듯한 구도로 바라보는 호퍼의 프레임 속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지를 받아들인 다음 다시 작품을 살펴보면,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해보게 된다. 당장 구도에 대한 소제목들만 읽고 에드워드 호퍼 전을 보러 가기만 해도 감상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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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전에서 좋았던 작품은 바로 호퍼가 그린 풍경 중에서도 어스름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도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에서 호퍼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로 어스름을 제시한 것이 굉장히 반가웠다. 실제로 어스름 파트에 담겨 있는 작품 4개 중 <황혼의 집>과 <철길의 석양>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이다. 전시회에서도 손에 꼽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에 대해 전문가가 해주는 설명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어스름은 변화하는 시간 중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그 변화 중인 시간의 단면을, 우리는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그 장면을 그려낸 호퍼의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호퍼는 많은 것을 말한다. 무언가가 도래할 것 같은 느낌도 전달하고, 안주하지 않고 떠나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어스름을 표현한 순간들은 누가 관람하건 간에 자신이 마주했던 시간의 편린에 덧대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의 감상에 어려움이 없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나에게 <철길의 석양>은 호퍼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도 묘한 작품이다. 실제로 보면 ,이 작품은 규모가 꽤 큰 편이다. 그 큰 화폭 속에 담겨 있는 석양 속의 풍경은, 나에게 마치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갈 때를 알고 떠나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저자 이연식은 이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도 끝도 없는 여정'이라는 소제목을 활용했다. 사는 것이 그런 게 아니던가. 우리 생의 시작을 그 누구도 스스로 의도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 역시,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이라는 여정은 적어도 내 인지의 범위 내에선 시작도 끝도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손길을 빌어 액자 속 철길 위에서 바라본 석양은, 그 끝없는 여정을 다시금 떠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나눠주기 위해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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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명백히 입체적인 것을 그리고자 했으나 화폭 속에 지극히 평면적으로 담겨있다. 그런데 평면적으로 보이는 그 대상이 내포한 함의는 너무나 다차원적이다. 아마 그 간극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에드워드 호퍼에게 끌리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호퍼의 작품들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저자 이연식은 우리에게 열다섯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두고 호퍼의 시선과 미술사가 이연식의 시선이 동시에 제시가 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우리는 호퍼의 작품을 바라볼 때에 우리 자신만의 시각을 어떻게 구축하면 좋을지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 저자가 제시한 키워드 중에서 가장 와닿는, 혹은 가장 배척하게 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나 스스로가 호퍼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요소나 생각하게 되는 인상들을 정리하다보면 호퍼에 대한 나만의 시선을 충분히 함양할 수 있지 않을까.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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