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지금 여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글 입력 2023.06.1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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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에 대하여

 

‘다중우주’는 작금에 이르러서는, 마블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게 다가온다. 메인스트림에서 다뤄지는 다중우주는 평면적으로 다뤄지고, 진지하고 입체적인 고찰이 부재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읽었던 테드 창의 <숨>에서도 ‘다중우주’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작품에서 주로 다뤄졌다.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평행우주’이고 에에올은 ‘다중우주’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여하튼, 테드 창의 작품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와 교신할 수 있는 프리즘이 등장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나’와 소통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작품은 그러한 세계 속 사람들의 삶과 고뇌를 다룬다. 해당 작품은 나에게 ‘자유의지’를 비롯한 실존주의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해주었는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역시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에에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생긴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했다면 그 연애를 선택하지 않은 우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삶에 있어 선택의 무거움이었다.

 

웨이먼드와 결혼한 에블린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어떤 에블린은 성공한 배우가 되었다. 선택으로 인한 작은 차이가 삶의 물결에 휩쓸려 전혀 다른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선택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 어느 정도의 여파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좀 더 나아가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 관한 생각도 이어졌다. 샤르트르는 “인간은 모든 인간을 선택함으로 스스로를 선택한다.”와 “스스로를 선택함으로 개인은 인간 전체를 선택한다.”라고 말하며, 개인의 앙가제가 인류 전체의 앙가제로 이어짐을 역설한다. 이러한 이유로, 샤르트르는 실존주의를 휴머니즘과 앙가주망의 학문이라고 주창한다.

 

한편, <에에올>은 그 선택의 범위를 인류 전체에서 온 우주로 확대한다. 알파 버스의 에블린이 내린 선택은 조부 투파키를 만들어내고, 이는 여러 우주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영화의 배경을 보고, 앙가제의 범위가 우주 단위로 확대되는 동시에 책임의 무게도 가중되었음을 느꼈다.


정리하자면, 선택은 무겁고 깊은 영역이다. 순간적인 선택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언젠가 삶의 전반을 바꿔버릴 정도의 힘을 지닌다. 더불어, 선택의 책임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인 영역까지 무한히 확장된다. (<에에올>은 그 범위를 무한한 우주의 영역으로 끌어간다.) 내가 내린-혹은 내릴- 선택은 개인적 운명과 공동체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이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은 우리에게 불안으로 다가온다.


샤르트르에 의하면, 불안은 무위로 이끄는 감정이 아니라 선택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뜻을 가진다. 또한, 여러 실존주의자도 선택에 있어 불안은 필연적이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역설한다.하지만 솔직히, 저런 말이 와 닿는가? “너의 선택은 정말 중요하니, 신중히 고민해야 해. 불안하지? 근데 그 불안이 나쁘지 않은 거니 행복하게 생각하렴.” 개인적으로, ‘특정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재한다면, 이렇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가능성에 대해서

 

그렇지만, <에에올>은 단지 선택의 무거움에 편중되지 않고, 선택에 대한 가능성을 조명한다. <에에올>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웨이먼드와 결혼한 에블린은 빨래방 주인이 되었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에블린은 유명한 배우 혹은 쿵푸 고수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세상에는 요리사가 되었고, 심지어는 손가락이 소세지가 된 에블린이 있기도 하다. 무수한 선택으로 파생된 우주에는 무한한 모습의 에블린이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지금 여기의 나는 대학생이지만, 과거 어떤 선택으로 분절된 우주에서의 나는 축구 국가대표 혹은 최연소 대통령일 수도 있다. 즉, 모두는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선택의 책임, 그 무거움과 동시에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점.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가능성의 우주를 부유하고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든,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는 점. <에에올>은 벅차고 희망찬 메시지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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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과 친절에 대하여

 

그저 답답하기만 한 웨이먼드가 친절이 자신의 싸움 방식이라고 말하는 점. 다정으로 일관한 웨이먼드가 모든 잘못됨이 자신의 탓이라고 말할 때. 더불어, 에블린에게 친절한 방법을 선택하라고 소리 지를 때. 앞서 언급한 장면은 가슴이 벅찰 정도의 감동을 선사했는데, 개인적인 삶의 태도에 있어 응원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담이지만, 난 ‘호구’라고 불린 적이 꽤 많다. 착해 빠졌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으며,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조언 아닌 조언 역시 익숙하다. 다정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였고,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은 삶의 목표 중 하나이다. 영화 <원더>에서 “옳음과 친절함을 선택해야 할 때, 친절함을 선택하라.”라는 대사는 삶의 레퍼런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의 태도에 회의를 느낀 적 역시 다분하다. 선의를 이용한 사람도 많았고, 소위 말하는 호구 취급하여 나에게 못되게 군 사람도 많았다. 때로는 ‘내가 잘못 살고 있나’라는 후회가 들기도 하였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정리되고 있지만, 아직도 친절함의 정도와 옳음에 대한 답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나에게 <에에올>의 내용은 따뜻한 축복처럼 느껴졌다. 여태까지 잘 살아왔다는 격려로, 앞으로도 친절과 다정의 가치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으로 다가왔다. 영화의 내용은 다시 한 번 나의 깊은 곳에 자리 잡았고 앞으로 삶의 방향성에 대해 흔들릴 때, 다시 한 번 굳세게 나를 지켜줄 듯 싶다.


앞서 계속해서 언급한 주제에서 보자면, 선택의 기준으로 친절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모를 때, ‘친절’의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 그럼에도, 지금 여기.

 

에블린이 그랬던 것처럼, 무한한 선택의 영역에서 ‘지금 여기’에 대한 회의가 순간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 더불어,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동행할 수 있겠다. 무한한 선택과 가능성의 세계에서, 통계적 필연성에 의한 허무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비근한 예로, 우리 역시 ‘그때 그럴걸’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가.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매혹적인 법. 과거 선택에 대한 후회와 다른 선택지에 대한 동경은 모두가 공감하는 기억일 것이다. (-반사실적 사고라는 심리적 개념과 상통한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건강한 결과를 도출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다름의 동경은 ‘지금 여기’의 가치를 약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 그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에블린의 경우를 보면,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더라면 딸을 출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 지닌 소중한 가치는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때에는 없었을 것이다.


세상 그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더라도, 지금 여기의 딸에게 포옹을 건네는 에블린. 나 역시도, 모든 가능성의 세계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소중함이 있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유한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한 소중함과 행복을 주의 깊게 살핀다면,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

 

 

[김민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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