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상화를 통해 보는 화가와 후원자 [미술/전시]

전성기 베니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티치아노와 그의 후원자들
글 입력 2023.06.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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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Pater’에서 유래한 단어 ‘Patron’은 예술가를 사회경제적으로 뒷받침하고 작품 창작을 장려하는 후원자를 가리킨다. 우리는 에술가들의 작품을 개인 기질의 표출 또는 천재성의 산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시각도 타당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나 예술가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는 후원자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고대와 중세에는 강력한 사회경제적 권력을 지닌 교회, 왕, 귀족들이 주된 예술 후원자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이와 더불어 새로운 후원자들이 부상하게 된다.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계급이 가문을 형성해 세력이 강해지고, 기존에 존재하던 도시귀족 가문과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이들은 앞다투어 유명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주문했다. 


이 시기부터 예술은 정치,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기능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교회나 왕들의 미술 작품 주문은 종교적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는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여러 가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 작품을 주문했다. 수많은 화가들이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단연코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c.1490-1576)는 16세기 전성기 베니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많은 후원자들이 그림을 그려주길 원하는 화가였다.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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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는 오랜 기간을 도시국가와 가문 후원자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스페인, 독일 등 다양한 지역 출신 후원자들에게 작품을 주문받고, 베니스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려 배송해주는 방식은 당시로서 일반적이지 않았다. 티치아노는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베니스에서 지냈으며 궁정 화가로서 영구적인 직책을 보장받는 대신 다양한 통치자와 가문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그의 성향이 궁정 화가로서 원치 않는 장식 작업에 동원되는 것을 비선호했고, 궁정 화가로서 재정적 안정을 보장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는 뛰어난 사교 능력과 실력을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유명 화가였다.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의 초상화 Portrait of Cardinal Alessandro Far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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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의 초상화 Portrait of Cardinal Alessandro Farnese>(1545-46)은 티치아노가 1540년 곤자가 백작을 떠나 파르네세 가문의 주된 후원을 받게 되면서 그린 초상화 중 한 점이다. 교황 바오로 3세와 추기경을 배출한 이탈리아의 유명 가문인 파르네세 가문은 티치아노의 아들을 위한 혜택까지 마련하며 그를 지원했다. 이 그림에서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는 추기경을 상징하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다부진 자세와 살짝 틀어진 어깨에서는 신체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티치아노는 추기경의 모습을 어두운 배경에 위치해 인물을 강조하고 그의 특징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카를 5세의 기마상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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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5세의 기마상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1548)에서 티치아노는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던 카를 5세(Charles V, 1500-1558)를 위엄있게 묘사했다. 앞서 살펴본 알레산드로 추기경의 초상화와는 다르게 카를 5세는 말에 올라타 창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다. 위풍당당한 모습의 카를 5세는 최고 지위를 가진 통치자를 뜻하는 붉은 띠를 투구와 가슴에 두르고 있다. 어두운 숲에서 밝은 풍경으로 나오는 그의 모습은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을 은유한다. 이처럼 화가는 종교개혁에 대항해 전통 가톨릭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카를 5세를 초상화에서 기사이자 위대한 통치자로서 표현했고, 황제는 이 그림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초상화에 반영된 후원자의 특징


 

앞서 살펴본 두 점의 초상화를 통해 티치아노의 다양한 후원자의 모습과 화가가 시터의 사회적 위치와 특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초상화는 티치아노에게 일종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고, 그에게 그림을 주문한 많은 후원자들의 초상화 수요 또한 높았다. 티치아노는 뛰어난 실력과 감각으로 시터의 옷차림, 표정, 성격같은 개인적 특징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인물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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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6월 2일부터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사람을 향하다》가 10월 9일까지 진행중이다. 이 전시에 티치아노의 초상화 <라 스키아보나(달마티아의 여인) La Schiavona (the woman from Dalmatia)>가 전시중이다. 이 초상화는 후원자가 티치아노에게 주문한 그림은 아니지만 젊은 티치아노의 화풍과 화가가 초상화에서 인물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박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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