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의 당신에게 전하는 어제의 예술에 관한 모든 이야기 -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

책으로 만난 KBS 화제의 교양 프로그램,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을 읽고
글 입력 2023.06.0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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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마주쳤던 순간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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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다녀왔던 유럽여행에서 살면서 가장 많은 미술 작품을 관람했다. 미술과는 거리를 두며 살아왔던 내게 원작의 아우라를 발견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멀뚱히 작품 앞을 서성이는 시기를 지나 스쳐 지나가는 모든 작품들에 무감한 시선을 던지기 바빴을 무렵, 수많은 인파가 몰린 장소 앞에서 마침내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난 것이다.

 

딱히 좋아하던 화가도 아닌데, 그저 비운의 천재로 알고 있던 그가 왜 그리도 반가웠을까. 낯선 장소에서는 우연히 마주친 어색한 지인마저 반갑게 느껴지는 것처럼, 예술의 세계에 심취한 관람객들 사이에서 좀처럼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하던 내게 고흐의 그림이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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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알고 있을 정도로 그의 비극적인 생애가 유명했기 때문에 고흐라는 화가와 그의 작품들이 기억 속에 친숙한 대상으로 남아있었던 것도 같다.

 

 

그림은 어쩌면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던 고흐가 세상에 보내는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237p. 미술관에 걸린 편지, 빈센트 반 고흐 中

 

 

마찬가지로 그 이름들의 명성과 낯익은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좀처럼 연결되지 못했던 과거와 작별하고, ‘썰’을 통해 만난 17인의 예술가들과 이제는 좀 더 친해질 준비를 한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교양’이란 이름과 그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야기를 통해 탐구하는 이 세계가 이처럼 신비롭고 흥미롭다는 걸 <예썰의 전당>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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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을 통해 17인의 화가들의 삶을 여행하며, 작품을 느끼고 감상하는 방법을 배우는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새로운 발견을 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내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모든 누군가의 삶은, 그들을 품은 이 세상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사랑을 전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예술가들과 소통하다가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하나의 작품을 본다는 건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삶을 보는 일입니다.

어제의 예술이 오늘의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떠한가요?”

 

-7p. 프롤로그 中

 

 

시간은 연속성을 띠는데 반해 역사를 통해 만나는 과거는 나와는 완전히 분절된 세계인 것만 같았다. 몇 주 전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결국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수천 년 전의 인류 역시 그릇에 담아 식사를 하고, 화려한 장신구를 향한 욕망을 가졌으며, 평안한 잠자리에 들기를 바랐을 것이다. 수많은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며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때로는 이별에 아파하며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했을 사람들일 뿐이라고. 지금의 우리처럼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난 17인의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노력한, 위대한 예술가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으로 존재했던 그들이었다. 막연한 동경과 명성에서 느껴지는 괜한 거리감을 제거한 채 감상하니 오히려 그들의 작품이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본인을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자신이 보고 느끼는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며, 잘못된 사회를 꾸짖기도 때로는 세상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한 예술가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 했던 동시에,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모든 삶들에 존중의 시선을 담아 내기도 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여전히 어떤 작품이 훌륭한지 평가할 재간이 없고 작풍을 분석하는 능력은 전혀 없지만, 예술가들의 삶과 당대의 시대상을 통해 과거의 그들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작품과 문화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비록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작품을 통해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내가, 나아가 그들이 머문 어떤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이 연결될 수 있다니! 

 

현대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실현 불가능한 시간 여행이 예술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의 세계가 경이로울 뿐이다.

 

 

비록 그것이 고단하고 서글프더라도 삶의 양식을 길러내는 고귀한 농부의 일, 정직하게 땀 흘리는 농부의 삶을 위대하게 기록한 밀레. 그는 평생에 걸쳐 그림을 통해 노동하는 인간의 고귀한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208-209p. 삶을 위로하다, 장 프랑수아 밀레 中

 

 

어떤 예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정답은 없는 문제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럼에도 각기 다른 삶으로 구별되는 존재들이기에. 각자의 취향과 생각이 다른 것처럼, 하나의 작품에서도 서로 다른 것들을 감상한다. 

 

다채로운 우리의 삶을 닮아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예술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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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굳이 나의 답을 꺼내자면,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에는 언제나 ‘사랑’이 담겨있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을 사랑하고 인류를 포용하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삶을 존중하는 것.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낀 때인 것 같다.” - 빈센트 반 고흐

 

-241p. 미술관에 걸린 편지, 빈센트 반 고흐 中

 

 

고단하지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일궈내는 농부의 삶에서 고귀함을 포착한 밀레.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열망과 소중한 존재를 향한 사랑을 정성으로 그려낸 고흐.


 

“내 예술은 개인적인 고백이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길을 잃은 배와 같았을 것이다.” - 에드바르 뭉크

 

-307p. 밤의 방랑자, 에드바르 뭉크 中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과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모네와. 그림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이 발견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려 했던 뭉크. 

 

그들의 작품이 나의 가슴을 울린 이유이다.

 

 

성스러운 것을 담아냈던 예술이 인간을 담기 시작하면서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습니다.

 

-5p. 프롤로그 中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은 위의 문구가 담긴 프롤로그로 첫 막을 올린다. 책을 완독하고 예술의 의미와 나의 취향에 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난 뒤 다시 첫 장을 펼친 순간,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문구가 새삼스러운 감동이 되었다.

 

 

“나는 걱정 속에서도 웃을 줄 알고 고통 속에서도 힘을 찾고 반성을 통해 용기를 얻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22p 위대한 도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中



평범한 나를 미워했던 때가 있었다. 괜히 특별한 누군가를 투기하기도 했다. 성스러운 존재나 높은 신분이 아닌, 당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존경의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을 보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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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나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어제의 예술이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 것처럼.

 

 

[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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