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비타민 같은 콘텐츠를 만듭니다" -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잭스트리' 이원철 대표

글 입력 2023.06.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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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만들어진 <팔라독> 시네마틱 영상.

잭스트리의 첫 번째 시네마틱 영상으로, 현재까지 약 37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꿈을 좇아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온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며 자란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업계는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여러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만큼 업무량이 많고 불안정하기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멋진 일이지만 업계를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은 이유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잭스트리’이원철 대표는 이 업계에서 오래 버티려면 그냥 좋아하는 것 이상의 ‘사명감’과 더불어 자기 작품을 향한 깊은 애정이 필요하고 말한다. 그 역시 한 차례 회사 폐업을 경험한 바 있다. 지금의 잭스트리는 이 대표가 3D 애니메이션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후 2011년에 창립한 회사다. 애니메이션과는 관계없는 전공을 하고 폐업을 겪으면서도 이 일을 계속한 이유를 그 사명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처음 3D 애니메이션 툴을 배우고 ‘평생 갖고 놀아도 질리지 않는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는 이원철 대표를 만나 보았다. 

 

 

잭스트리

 

3D 기반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튜디오. 2011년 창업 후 여러 게임 회사들과 함께 <팔라독>, <몬스터 길들이기>, <달빛조각사> 등 다수의 게임 광고 및 홍보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해 왔다. 2017년에는 VR 게임 <좀비버스터>를 제작해 스팀 마켓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9년부터는 자회사로 베트남에 모션 캡처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쓰고 있다. ‘잭스트리(Jack’s Tree)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무처럼 높게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달빛조각사.png

카카오게임즈의 게임 <달빛조각사>의 시네마틱 영상 캡처

 

 

“3D 애니메이션에 사용되는 툴이 정말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고 실제 작품에 적용시키는 과정이 재밌어요.”

 

 

대표님,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최근에 잭스트리에서 한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요즘은 카카오게임즈에서 출시하는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게임 시네마틱 영상이란 게임의 중요 캐릭터 및 세계관을 짧은 영화처럼 만든 것으로, 잠재적인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홍보 영상이에요. 외주로 하는 영상 제작 외에는 자체 제작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버추얼 아이돌을 기반으로 한 쇼츠 애니메이션과 오리지널 IP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개발 중입니다.

 

 

작업은 대략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일의 간략한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영화 한 편에 감독, 배우만이 아니라 조명기사, 촬영기사, 의상 디자이너 등 다양한 담당자가 있듯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예요. 영화 제작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은 디지털 툴에서 이루어진다는 차이점이 있죠. 


시네마틱 영상 제작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보통 30~40명의 인원이 투입되어 두세 달 동안 2분 남짓 되는 영상을 만드는데, 가장 먼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영상의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기획부터 시작합니다. 일종의 설계도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이 천차만별이라 조율하는 게 어려워요. 설계가 끝나고 클라이언트와 합의가 되면 비주얼라이징 과정에 들어가요. 스토리보드를 제작하고 아주 세세한 계획을 세우는 거죠. 그다음에 실제 영상 제작이 시작됩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3D 캐릭터와 배경을 만들어요. 이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고 렌더링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3D 애니메이션 결과물이 나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영상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친 후 최종본이 나오면 작업이 종료됩니다.

 

 

대표님은 그중 어떤 작업을 담당하시나요?


저는 대표지만 작업을 좋아해서 경영보다 실제 영상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실무자 대표’에 가깝죠.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걸 현실에 구현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커요. 또 3D 애니메이션에 사용되는 툴이 정말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고 실제 작품에 적용시키는 과정이 재밌어요. 무언가를 창조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좋아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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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회사 '토일도일'에서 제작했던 2D 애니메이션 '포레스티아' 시네마틱 영상 중 캡처

 

 

“3D 소프트웨어를 다뤄보니까 평생 가지고 놀아도 지루하지 않은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처음에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요.”

 


대표님은 원래 애니메이션 분야를 전공하셨나요? 


전혀 관계없는 불어불문학과 전공인데요. (웃음) 학생 때부터 게임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미대 졸업 후 진로가 다양하지 않아서 불어불문학과에 갔죠. 

 

 

그럼 회사는 어떤 계기로 설립하신 건가요? 


첫 직장이던 여행사가 IMF에 휘청일 때, 동생과 함께 게임을 하다가 ‘우리도 게임을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때 만든 회사가 ‘토일도일’이에요. 잭스트리는 두 번째 회사죠. 토일도일에서는 지금과 달리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프로듀서이자 기획자로 일했어요. 지인에게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리는 분을 소개받아서 함께 작업했죠. 


주로 2D 기반의 교육 애니메이션이나 케이블 방송에 나가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투자를 받지 못해 접어야 했어요. 돌아보면 제가 순진했죠. 투자가 될 만한 작품을 기획해야 하는데, 그냥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나 꽂힌 작품을 만들려 했으니까요. (웃음) 하지만 열정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어요.

 

 

토일도일이 2D 애니메이션 기반이었다면, 본격적으로 3D 애니메이션에 발을 들인 건 언제였나요? 


첫 회사를 폐업한 후 광고 회사 기획팀에서 일하던 중 회사 프로젝트로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데 3D 애니메이션 초창기라 인력 풀이 좁다 보니 제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죠. 그냥 제가 배워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3D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3D 소프트웨어를 다뤄보니까 평생 가지고 놀아도 지루하지 않은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처음에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 2011년, 지금의 잭스트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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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 설립된 언리얼 게임엔진과 모션캡쳐 기반의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애니모스트'

이원철 대표(오른쪽)

 

 

그때부터 지금까지 13년 가까이 잭스트리를 운영하시며 회사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일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VR 이야기가 한창 많이 나오던 2017년에 <좀비버스>라는 VR 슈팅게임을 만들었어요. 스팀에 런칭해서 VR게임 카테고리 1등을 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VR 기기가 고가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유저를 끌어모으진 못했어요. 게임은 호평을 받았지만 크게 수익은 되지 않은 거죠. 그 게임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회사가 위기에 처했어요. 그때 무척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게임은 ‘언리얼엔진’과 모션캡쳐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2019년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CG Vietnam’이란 회사와 함께 ‘애니모스트(ANIMOST)’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어요. 지금도 저희 오리지널 IP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이쪽에서 진행이 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위기가 또 하나의 기회가 된 셈이네요. 이 업계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대표님이 보시기에 애니메이션 제작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일은 한계가 없어서 힘들 수 있어요. 어찌 보면 그림 그리는 것과 비슷해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의 기준이 모호하고 잘 그리기 위한 노력이 끝이 없는 것처럼, 3D 애니메이션도 깊게 파자고 마음먹으면 끝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주변을 보면 그냥 좋아해서 시작한 분들보다 이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자기 작품에 애정도 큰 분들이 오랫동안 업계에 남아 있습니다. 성장도 빠르고 결과에 상관없이 일을 계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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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스트리가 '스튜디오 애니멀'과 공동제작 중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아홉산숲>

 

 

“그래서 저는 콘텐츠라는 게 진통제처럼 필수적인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타민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업계에서 잭스트리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번 함께 작업한 클라이언트는 3년, 4년씩 저희와 계속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으로 예전에 초창기 모바일 게임인 <팔라독>이 출시될 때 저희가 시네마틱 영상을 맡았는데, 이후에도 작업을 몇 번 더 같이 했죠. <몬스터 길들이기>도 거의 3년 동안 함께했고요. 안 좋은 이유로 협업이 중단되는 경우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어요. 작은 스튜디오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 맞춰 퀄리티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게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만들 때 대표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외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 요구를 맞춰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창작 애니메이션의 경우,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도 재밌어야 하지만 만드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하죠. 또 어떻게 하면 한정된 예산과 리소스를 가지고 좋은 퀄리티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상당히 많이 고민하고 신경 써요. 요즘은 눈이 높아져서 일정한 수준이 되지 않으면 바로 외면당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앞서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힘쓰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일의 비중을 따지면 외주와 창작이 몇 대 몇 정도일까요? 


특히 올해부터 창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어요. 작년에 저희가 스튜디오 애니멀과 같이 만드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홉산숲>이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와 BIAF(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제작비 지원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일의 70~80퍼센트가 창작 쪽이에요. 버추얼 아이돌 기반의 콘텐츠 역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서 열심히 진행 중입니다.

 

 

창작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고 제작에 힘쓰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마 애니메이션 만드는 모든 사람의 로망일 거예요. 처음 애니메이션을 시작하는 이유가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공감해주면 거기서 또 용기를 얻어 다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 모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로망이죠. 하지만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는 데 워낙 많은 돈이 들기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희는 다행히 작년부터 여건이 마련되어서 창작에도 비중을 둘 수 있게 되었어요.

 

 

잭스트리는 좋은 콘텐츠가 한 사람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철학을 내세웁니다.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여기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비슷해요.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거 좋아했고, 만화책 보는 것도 좋아했고. 저도 엄청 좋아했어요. 다양한 콘텐츠를 보며 즐거웠고 위로와 감동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저는 콘텐츠라는 게 진통제처럼 필수적인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타민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잭스트리에서 꿈꾸는 미래가 궁금합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꿈이나 미래에 대해 생각했을 때 생각이 복잡해져요. 우리가 보기에 성공한 회사도 과연 그게 꿈을 실현한 걸까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거든요. 저도 지금 작업하는 자체 애니메이션을 완성하고 나면 또 어떤 꿈이 있을까, 두 번째 세 번째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드는 게 내 꿈인가 질문하게 돼요. 잭스트리도 회사로서 5년 후, 10년 후의 정량적인 목표는 있지만 정성적인 목표는 또 다른 이야기죠. 


좀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결국 잭스트리가 꿈꾸는 미래는 규모와 상관없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남는 거예요. 외주 일 없이도 회사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창작 일의 비중이 커지는 지금이 변화의 기점인 것 같아요. 올해와 내년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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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성기
    •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소중함을 간과하게 되는 비타민.
      잭스트리의 컨텐츠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그 비타민 같음이 아닐까..
      항상 응원하게 되는 회사
      그리고 이원철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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