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뒤피, 행복의 멜로디 -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라울 뒤피'

자신의 색채로 빛을 담아낸다는 것
글 입력 2023.06.0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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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 70주년 기념 ‘뒤피, 행복의 멜로디’ 전시가 더현대서울 6층 특별 전시관에서 열렸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그럼에도 더현대서울 백화점은 저마다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와 반짝임을 지니고 있었다. 탁 트인 실내 정원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동안 알 수 없는 설렘과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이번 전시는 더현대서울 2주년 기념 특별 전시이다. 라울 뒤피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의 수준 높은 작품들로 구성되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뒤피의 예술세계가 총망라되어 전시되어 있다. 총 130여 점의 작품을 12개 주제로 구성하였으며,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공간 연출과 함께 축복과 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의 예술적 여정을 차례대로 따라가 볼 수 있다. 


처음 표를 받고 전시장에 입장할 때까지, 매우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뒤피 특유의 아름다운 색채와 작품들로 디자인되어있는 전시장 입구와 발권받은 표마저 마음에 들었다. 


 

 

라울 뒤피의 인상주의


 

12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를 차례대로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라울 뒤피의 생애와 함께 시간에 따라 변화했던 그의 예술 방식들을 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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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프랑스 르아브르의 가난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라울 뒤피는 음악과 예술을 매우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성장했다. 이른 나이부터 돈을 벌어야 했던 뒤피는 15세부터 정식으로 미술을 배웠으며, 인상주의에 심취했으나, 이후 마티스 작품에 깊게 매료되어 야수파 대열에 합류한다.

 

이후 뒤피는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으며, 오늘날에도 그의 밝고 화려한 작품들은 그 앞에 선 관람객들로 하여금 근심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세상의 축복과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인상주의 화가답게 ‘순간적인 느낌을 살리는 묘사’를 강조했던 초기 뒤피의 화풍이 인상깊었다. 1905년의 색채 실험과 함께, 그는 작품을 그릴 때 현실의 객관적인 재현보다 화가의 주관적 판단과 재해석 능력에 더욱 주목했다. 강렬하게 폭발하는 색채와 그만이 담아낸 어떤 빛의 색감은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어떤 순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화가가 자신의 색채로 빛을 담아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그린 것들을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도록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색채가 아닌 빛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색채란 본연의 색채가 아니라 화가의 언어를 이루는 단어와도 같은 팔레트 위의 색채를 말한다. 

 

- 라울 뒤피

 

 

1908년 여름,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했던 짧은 입체파 시기를 거쳐 그는 판화, 목판화 도구를 통한 조형적, 장식적 아름다움에 매료된 시기를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를 살고 있었던 라울 뒤피는 19세기 초 에피넬 판화 방식을 참고하여 순수한 애국심이 담긴 선전용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폴리네르 동물시집을 위해 목판화로 그려냈던 여러 동물 삽화들도 인상 깊었다. 특히나 유명한 코끼리 삽화와 함께, 오르페우스 행렬을 위한 삽화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패션과 조형예술


 

라울 뒤피는 1911년 폴 푸아레와 함께 라프티트 위진이라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다. 초창기 벽면 장식용 천과 직물을 인쇄했던 이 회사는 실크를 생산하는 회사와 첫 3년 계약을 맺었고, 이후 뒤피가 실내 가구, 일상 직물제품을 모델링하고 제작하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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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서도 또한 그의 활동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드레스나 외투의 스케치를 그려내기도 했다. ‘1920년 여름 원피스’라는 작품은 가제트 뒤 봉통 잡지 제4호 삽화의 습작으로 뒤피 특유의 섬세하고 경쾌한 필치가 돋보인다. 드레스를 위한 습작, 금 상작된 새틴 소재의 여행용 외투, 디마스크 소재의 이브닝 외투, 오르페우스 행렬 패션 크로키 등등 평소에도 패션과 크로키에 관심이 있는 터라 더 유심히 재미있게 관람한 것 같다. 매우 세련되고 아름다운 디자인에 감탄했다. 


 

자연을 탐구하자.

예술가같이 구상하고 장인처럼 만들어내자.

 

- 라울 뒤피

 

 

한 시대의 취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가들이며 대부분의 장식가들은 예술가를 뒤쫓아가는 존재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뒤피는 예술가이자 장식가였을까? 도자기, 태피스트리, 일러스트와 광고벽보 작품 등 다양한 장식예술 분야에서 뒤피의 자유롭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피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변형, 아라베스크 취향의 벽면 장식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었다. 


전원 음악회, 오르페우스 화병, 목욕하는 여인들과 같은 작품들을 즐겁게 관람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전시 포스터에 대한 습작 ‘코끼리’는 그 귀여운 생김새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파리의 예술문화 센터이자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음악 및 음향 연구센터, 공공도서관이 모두 함께 있는 ‘퐁피두센터’에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이 흘러넘치는 공간과 뒤피가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바다와 말, 그리고 여행자의 시선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주제는 ‘바다와 말’ 섹션이었다. 바다 특유의 푸른 빛과 함께 달리는 말의 자유로운 속도감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인상주의 화풍이었던 초기작부터 마지막까지, 뒤피의 고향 해안선과 맞닿은 영불해협의 여러 풍경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1904년 남부의 햇볕이 내리쬐는 지중해의 경치는 뒤피의 영감의 샘이었다. 뒤피에게 바닷가란 여가 생활, 자유롭고 여유로운 어떤 풍경을 상징했다. 바다 물놀이하는 여인의 형상, 바다의 여신인 암피트리테 작품에 그러한 여유로운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헤엄치는 여인과 조개껍데기의 이미지들, 대형 판화에 그려진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 그림에서는 아름답고 다채로운 바다의 푸른빛이 느껴진다.  


바다, 물과 함께 말, 승마에 대한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뒤피가 당시 바닷가에서 즐겼던 승마와 관련 있다. 선명한 색채의 기수가 말을 타고 달리는 승마, 경마의 속도감 있는 광경이 많다. 그의 수채화 회화 대다수 작품엔 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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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피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다수의 풍경화 작업을 이어나갔다. 1924년엔 ‘뒤피 스타일’이라는 명칭까지 생겼다. 1922년에서 23년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다채로운 색감과 자유로운 풍경화 양식의 전원풍경을, 1933년에서 36년엔 프랑스 랑그드 인근의 전원풍경을, 1949년엔 스페인의 전원풍경을 그려냈다. 뉴욕 백화점 파사드 그림에선 소비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는 수채화 작업을 활발히 했었다. 한때 작업했던 수채화 작품을 한 상자 가득 베니스로부터 뉴욕까지 전시회를 위해 운반하려고 했으나, 세계대전의 여파로 침수되었던 안타까운 일도 겪었다. 


타오르미나의 고대극장, 랑그드의 귀리밭 수확, 그리스 전경과 같은 작품엔 뒤피 특유의 환하고 경쾌한 색감, 특유의 가벼운 필치가 느껴진다.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도 뒤피가 여행했던 외국의 한 도시, 마침 해가 지던 그 장면 그 곳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단순히 객관적으로 장소를 묘사하는 것만이 아닌, 그 장소에서 화가 본인이 느꼈던 어떤 감상, 어느 날의 감동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게, 또 그걸 관람하는 사람도 느낄 수 있다는게 마냥 신기했다. 언젠가 어떤 풍경 앞에서 느꼈을 화가의 잔잔한 감동과 행복까지, 알 수 없는 편안함까지 전달할 수 있는 뒤피라는 화가에 대해 새삼 대단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그 실재의 힘을 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겼던 뒤피의 말을 그림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순간 아니었을까. 어쩐지 ‘뒤피 스타일’로 그려진 풍경화를 보며 라울 뒤피라는 화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림 앞에서 종종 이유 없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는 나 자신을 느끼게 되면서 말이다. 




검은색


 

대형 전기요정 석판화, 파리에서 바다까지 등등 여러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대형 판화 작품들 전시를 지나 마지막으로 다다른 전시는 ‘검은색’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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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빛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눈이 먼 상태가 된다. 후반부 그의 작품 속 노르망디 해안은 마치 잠시 우리가 태양을 쳐다보고 풍경을 바라본 것처럼 전체적으로 흐리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변화무쌍한 날씨 아래 구름 잔뜩 낀,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진 순간을 포착한 것 같기도 하다.


그의 후반부 마지막 작품이었던 ‘검은 화물선 연작’은 화가가 남기는 유언이라는, 어쩌면 가슴 시린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리운 검은색이 그의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평생 색을 찬미하며 그림을 그려온 화가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던 이미지가 ‘검은색’이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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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친절하며 볼거리 많은 전시였다. 섹션별로 또 시간별로 친절하고 감각적으로 배치된 전시는 ‘라울 뒤피’라는 예술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즐겁고 유익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한다. 나 또한 이 전시로 처음 알게 된 프랑스의 화가 라울 뒤피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그와 관련된 엽서와 도록을 사고 나왔다. 


올 여름, 바라보는 것만으로 어쩐지 다정하고 행복한 어느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더현대서울 라울 뒤피 전시전을 추천하고 싶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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