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뒤피의 블루 -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프랑스 국립 현대 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
글 입력 2023.05.3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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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무드인디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환상적인 색채부터 상상력을 뛰어넘는 귀엽고 발랄한 연출까지 시시각각 취향을 저격하며 정신을 쏙 빼놓는다. 영화에서 실뭉치는 케이크가 되고, 사람을 닮은 쥐가 텃밭을 가꾸는 등 말도 안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이런 마법 세계같은 <무드인디고>의 장면들은 내가 몇 번이나 꿈꾸던 판타지다. 그리고 라울 뒤피는 잠자던 나의 상상을 다시 깨웠다. 파스텔톤으로 뒤덮인 콜랭의 세계처럼 뒤피가 바라본 세상은 여러 색깔로 뒤덮여 있다. 나는 작품을 보며 달콤함을 느꼈다. 딸기나 망고, 생크림이 적절히 섞인 크림 캔디같은 달콤함. 그림을 맛볼 수 있다면 난 뒤피의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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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피는 한 화면에 여러 가지 색상을 담는다. 핑크, 오렌지, 블루와 같은 개성이 도드라지는 색들이 그림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든다. 행복한 꿈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그는 그림 속에 여러 요소를 담길 좋아했던 것 같다. 한 화면에 두 개의 날씨를 넣기도 했다. 한 쪽은 먹구름이 낀 비오는 풍경인데 한 쪽은 무지개가 뜬 화창한 풍경인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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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뒤피는 화가로 회화만 작업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씬에서 활동했다. 패션, 장식예술, 삽화 등 ‘뒤피 스타일’은 책과 옷, 도자기, 섬유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섹션 6: 장식예술> 파트에서 보았던 ‘전원 음악회’와 다수의 도자기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도자기, 태피스트리, 일러스트, 광고, 벽보를 작업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예술 밖에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 


‘전원 음악회’는 섬유로 직조된 작품으로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벽면에 거는 장식품으로 예상된다. 직조물이지만 섬세한 회화작품처럼 선이 유려하고 자유롭다. 색의 이용 또한 평소 그의 작품처럼 여러 색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양한 톤의 녹색은 음악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흔들리는 풀과 나무, 비가 내리는 구름과 무지개가 뜬 하늘. 음악회는 날씨처럼 버라이어티하게, 그리고 강렬한 선율로 진행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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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는 보통 다채로운 색상으로 삶의 아름다운 장면을 조명했다고 소개된다. 해석처럼 그의 색채는 세상의 아름다운 색상만을 꺼낸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파란색에 눈길이 갔다. 뒤피의 블루는 무척 매혹적이다. 바다를 풍경으로 한 회화부터 실내 풍경, 초상화, 암피트리테 등 파란색이 인상적이던 작품이 많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은 샤갈만의 파란색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둘의 파랑은 다르다. 샤갈은 몽환적이고 꿈꾸는 듯한 화풍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가 사용한 푸른 색감은 짙은 심해 속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샤갈의 블루에서는 우울함과 처연한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후 아내를 잃고 나서 그의 블루는 절정을 맞이한다. 아마도 그것은 사랑인 동시에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반대로 뒤피의 블루는 구름을 머금은 하늘처럼 푸르다. 투명하고 부드러워 때론 솜사탕처럼 느껴지고, 때론 따뜻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또 뒤피의 블루는 초록색과 섞일 때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완벽한 짝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는 ‘숲속의 말을 탄 사람들(캐슬러 일가)’다. 나는 이 작품과 마주치자마자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움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벽면을 채우는 커다란 캔버스는 말을 탄 캐슬러 일가가 내 앞으로 다가올 것만 같은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초록과 파랑이 섞인 숲 속의 정경에서 이슬에 촉촉이 젖은 숲 냄새가 나는 듯 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탄 말은 신화 속 신들이 타고다니는 정령처럼 느껴졌다.

 

('숲속의 말을 탄 사람들'은 사진으로는 절대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진은 실물을 담지 못할 뿐 아니라 원본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정도다. 그렇기에 첨부하지 않았다. 직접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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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피에르 제스마의 초상>, <도빌의 경주마 예시장>, <판테온>, <조개껍데기를 든 목욕하는 여인>, <암피트리테>, <미셸 비뉴의 초상, 일명 비뉴 씨의 아들> 등은 뒤피만의 블루와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다. 특히나 그의 초상화는 당시에도 인기였다고 하는데 지금 보아도 독보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자유로운 선과 부드러운 색상이 섞여 아름다운 초상화가 탄생했다. 내 얼굴을 뒤피 스타일로 의뢰를 맡기고 싶을 정도로 그의 초상화 작품은 매력적이었다. 


<수영하는 붉은 빛 여인>은 바다와 여인의 조합을 테마로 한 작품 중 하나다. 바다 속에서 수영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몸의 여인이 화면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 좌측의 바다는 절단되어 전혀 다른 시공간인 것처럼 보인다. 바다 위에는 몇 가지 형태의 장면이 단순하게 스케치 되어 있다. 여자와 남자, 시가를 피우는 남자, 물을 뿜는 고래, 나비, 커다란 돛단배와 구름과 집. 여인은 바다를 헤엄치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하다.


그가 바다와 여인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암피트리테에게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암피트리테는 바다의 여신이자 포세이돈의 아내이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만 전시장에서 세 개는 본 것 같다. 바다와 여인, 암피트리테는 서로 연관이 있어 보였다. 바닷가 근처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블루가 남다른 것도 그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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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 현대 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라울 뒤피의 작품이 매우 다양하고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뒤피의 회화 세계를 넘어 여러 활동 분야에서의 개성과 다채로움을 접할 수 있었다. 


뒤피의 아우라가 넘실거리는 전시를 보며 그가 바라본 삶의 의미를 느껴본다. 아쉬운 점은 작품의 수와 다양성과는 달리 굿즈샵에서 판매하는 엽서는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위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시에서 본 작품을 엽서로도 구매하고 싶었지만, 생각외로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전시 구성이 미술사조 위주로 나열된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다. 그의 활동을 시기별로 세분화하여 전시 초반에 알리고 정석대로 설명한 것은 좋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느끼기에는 해석이 부족한 느낌이다. 뒤피의 여러 면모 중 몇 가지를 특정지어 컨셉으로 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그의 생애와 더불어 생각,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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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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