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뒤피, 행복의 멜로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 展

글 입력 2023.05.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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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와 지하철의 광고 칸에서 전시 광고를 보았다.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눈에 담았다가 흘러갈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 전시 광고 속의 작품은 참 알 수 없게도 오래도록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화사한 색감으로 가득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봤더니 분홍색 글씨로 라울 뒤피라고 쓰여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술을 엄청 잘 아는 게 아니다보니, 라울 뒤피라는 이 화가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처음 듣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듣는 사람이어서 더 궁금해졌다. 이렇게 색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배경으로 이런 화풍을 갖게 된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색을 쓰는 사람이라면 풍경화를 많이 그렸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전시에 대해 찾아보니 지엔씨미디어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와 협업하여 라울 뒤피의 원화 130여 점이 처음으로 한국에 오는 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을, 그것도 원화로 다양하게 볼 수 있다면 이것도 꽤나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라울 뒤피를 처음 접한 순간이,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퐁피두센터와의 콜라보로 기획된 전시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라울 뒤피의 전시 소식을 인지한 순간, 나는 이 전시를 꼭 다녀오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 전시 소개 >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과 더현대서울, 지엔씨미디어가 주최하고,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후원하는 금번 전시는, 20세기 주요 예술가 중의 한 명인 라울 뒤피의 작품 세계를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선보인다. 라울 뒤피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의 수준 높은 작품들로 구성되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뒤피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뒤피의 최대 역작이자, 전기와 빛의 시대에 대한 경외와 찬사를 환상적인 색채와 선으로 표현한 “전기 요정”의 연작 오리지널 작품이 전시된다. 총 130여 점의 작품을 12개 주제로 구성하였으며,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공간 연출과 함께, 축복과 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의 예술적 여정을 살펴볼 것이다.

 



 

Autoportrait, 1898.jpg

Autoportrait, 1898



라울 뒤피 전에 오기 전에 뒤피에 대해서 미리 조금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알 수 있었던 가장 큰 뒤피의 특징이, 바로 특정 사조에 국한되지 않고 본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나갔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뒤피의 이름이 나처럼 미술에 약간의 관심만 있는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뒤피는 회화뿐만 아니라 디자인, 삽화, 장식예술, 민중예술까지 아우른,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관람객의 시선에는 뒤피의 자화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드뷔시의 달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 그가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기도 했으니 이런 인상주의 음악이 나올 법도 하지. 뒤피의 자화상은 총 세 작품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느낌으로 그려진 그의 자화상을 보면 마치 이번 전시에서 뒤피가 인상주의로 시작해 야수파와 입체파를 거쳐갈 것이라는 걸 예고하는 듯하기도 했다.



Port de Martigues, 1903.jpg

Port de Martigues, 1903



뒤피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인상주의였다. 아무래도 인상주의가 프랑스에서 두드러진 사조이기도 하니까 그가 충분히 영향을 쉽게 받았으리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기억할 수 있듯이, 인상주의는 처음 등장했던 때부터 인정을 받았던 사조는 아니었다. 그래서 라울 뒤피는 파리에 가서 처음 인상주의 작풍을 접할 때, 큰 미술관이 아니라 작은 개인 화랑들에서 인상주의 작품들을 다수 접했다고 한다. 비록 규모가 작은 곳에서 만났다 하더라도, 인상주의 특유의 빛의 효과에 대한 관심은 라울 뒤피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다.


<마르티그의 항구>는 외젠 부댕의 작품과 닮았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라울 뒤피는 빛의 속성을 잘 드러냈고 이로 인한 양감의 표현을 아주 두드러지게 하면서 전반적인 피사체의 율동감을 살렸다. 이런 설명 없이 보기만 해도, 뒤피가 쓴 밝은 빛과 부피감이 느껴지는 작품 속 면면들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인상주의가 뒤피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La Place Saint-Gervais à Falaise, 1906.jpg

La Place Saint-Gervais à Falaise, 1906



그런데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았던 뒤피는 1906년 경에 이르러 야수파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라울 뒤피는 붓 터치가 점점 더 넓어지고 형태의 윤곽선을 사용하면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인상주의 시기의 그의 작품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강렬한 색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상주의 섹션 1에서 야수파 섹션 2로 넘어오게 되면, 방금 전까지 인상주의적인 작품을 남겼던 바로 그 화가의 작품이 맞는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팔레즈의 생-제르베 광장>은 야수파적인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뒤피의 작풍을 볼 수 있다. 야수파의, 정확히는 마티스의 무엇이 그토록 라울 뒤피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가 그린 인상주의적인 작품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화풍을 바꾸면서 새로운 도전을 한 뒤피의 계기가 괜스레 궁금해졌다. 야수파에 영향을 받았던 뒤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입체파로도 자신의 화풍을 바꾸면서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넓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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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s pour l'été, 1920



그런데 라울 뒤피는 인상주의-야수파-입체파로 화풍만 바꿨던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다양한 회화 화풍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이나 다방면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예술가였다. 그가 패션이나 민중예술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다는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패션 쪽으로는 작물패턴 작업과 드레스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확연히 드러내면서 사람들에게 뒤피를 각인시키고 성공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가 점점 흘러가면서, 뒤피는 민중예술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어 다양한 판화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작품활동들도 했다. 예술을 고상한 이들을 위한 사치재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두에게 예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이에 맞게 작품을 생산했다는 것이 참 사려깊다고 느꼈다. 물론 여기에는 뒤피가 애국심이 충만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프랑스 국기를 정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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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anthéon, 1924-1929



뒤피는 장식예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스페인에 피카소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라울 뒤피가 있는 느낌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재다능할 수 있지? 피카소도 여러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도자기 만드는 작업도 했었는데, 이번 전시를 보니 라울 뒤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와 함께 다양한 도자기 작업을 했고 섹션 6에서는 그들이 했던 작품들 일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도자기 작업으로까지 관심이 뻗을 수 있었던 것은 라울 뒤피가 자식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그림체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뒤피만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도자기의 형태로, 도자기의 표면 위로 녹아났던 것이다. 손을 대기만 하면 뭐든 잘하는 뒤피의 작업 활동을 보고 있자니 미술 쪽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약간 질투가 나기도 했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다 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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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addock à Deauville, 1930



뒤피의 또 다른 관심사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뜬금없게도 뒤피는 다양한 작품 속에서 말을 많이 그렸다. 말이 작품 속에 들어있는 게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의 경우 말이 그려져 있는게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어서, 어떻게든 말을 작품 속에 그려넣고 싶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말이 좋았나보다. 그렇게 말을 좋아했어서 그런지 라울 뒤피는 경마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고향인 노르망디 지방에서 경마장을 운영해서 경제적인 부를 얻기도 했다고 하니,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를 한 셈이다.


그런데 굉장히 가벼운 필체로 말을 그린 것이 보여도, 자세히 뜯어보면 말의 특징을 정말 잘 살려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의 부피감, 근육의 모양과 역동성, 그리고 심지어 살아있는 듯한 눈망울까지 뒤피는 세세하게 그려냈다. 일부 말들은 마치 사람의 눈처럼 서로를 흘겨보고 있다거나 마치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하기도 해서 말 한 마리 한 마리를 뜯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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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Cavaliers sous bois (La Famille Kessler), vers 1931–1932



그리고 말에 대한 라울 뒤피의 관심이 가장 화려하게 열매를 맺은 순간은 아무래도 케슬러 일가의 초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실제로 보면 한 벽면을 크게 차지할 만큼 굉장히 화면이 크다. 그리고 푸른 색감이 온 화면을 감싸고 있다. 그런데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굉장히 따스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가족들이 그냥 소파 주변에 앉아있는 모습이 아니라 각 가족 구성원이 자신이 탄 말과 교감하고 있는 순간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모두 어우러지는 초상화니까 말이다.


라울 뒤피는 케슬러 일가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배경이 되었던 케슬러 일가의 사유지를 여러 번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다소 의문이 들었다. 뒤피는 이 작품 속의 배경을 정밀화마냥 세세하게 그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배경을 충분히 그리기 위해 여러 번 방문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 사유지의 풍경이 그에게 그토록 아름다웠을까? 작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이 생명력이, 실제 그 장소에선 더욱 선명했던 걸까? 나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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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ée Electricité

 

 

이번 뒤피 행복의 멜로디 전에서 유일하게 촬영할 수 있는 작품은 바로 그의 거대한 대작인 <전기요정>이었다. 그야말로 거대했다. 그런데 심지어 이게 작품 전체가 아니라는 점이 놀랍다. 우리나라에 온 건 축약본이라고 한다. 얼마나 더 크고 거대하고 방대할까. 지금 더현대 ALT.1에 있는 작품만 해도 화폭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다. 파리만국박람회를 꾸미기 위해 제작된 이 벽화는 고대에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전기가 발명되는 과정이 그려져있다.


라울 뒤피는 이를 위해 역사 속의 저명한 인물들과 다양한 풍경들을 담아냈다. 이 거대한 벽화를 그리기 위해 그가 연습했던 습작들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큰 작품 속에 다양한 것들을 녹여내야 하는 만큼 화면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라울 뒤피의 고심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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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lier, vers 1940



라울 뒤피는 다양한 것을 그렸던 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 그 중에는 자신의 아틀리에도 있었다. 뒤피의 아틀리에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아틀리에 자체를 그리기도 했고, 아틀리에에 두었던 악기를 그리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아틀리에에는 파블로 카잘스가 곧잘 출입하면서 소소하게 연주회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음악가 집안 출신인 라울 뒤피와 역대 최고 첼리스트 중 하나인 파블로 카잘스의 조합이라니, 그야말로 신기하고도 오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뒤피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음악 쪽으로 진로를 잡은 것이 아니라 미술 쪽으로 나아갔지만, 그의 삶에는 항상 어릴 때부터 접했던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났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카잘스와 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음악성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 그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아틀리에에서 음악회를 열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그가 바이올린을 그린 작품을 보면, 악보 상단에 '라울 뒤피의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구를 적어두었다. 그는 음악과 미술 속에서 아름다운 예술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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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violon rouge, vers 1948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는 변화를 도모하며 도전했던 라울 뒤피. 그런 그에게는 뜨겁게 사랑한 조국이 있었고, 그 조국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자신의 업이었던 미술 뿐만이 아니라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음악까지 함께 있었다. 그랬기에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사조를 넘나들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일관되게, 우리에게 행복과 즐거운 감정을 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마치 전시관을 내내 감싸고 있었던 아름다운 음악들처럼 말이다.


전시를 다 보고 나니, 더현대 ALT.1의 이번 뒤피 전의 부제가 왜 '행복의 멜로디'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뒤피의 일대기를 쫓아가면서 나도 조금씩 행복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사실 행복이라는 건 엄청나게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렇게 삶의 순간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작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도 충분히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밝게 그리고 때로는 어둡게 다양한 색과 빛 그리고 양감을 넘나들며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뒤피의 작품들이 상기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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