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면체 인간 [문화 전반]

지극히 평범한,
글 입력 2023.05.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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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입체적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쩌다 그 말을 곱씹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마 사람에 대고 입체적이라고 한 누군가의 말을 듣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단순히 내가 알고 있던 '입체'의 의미를 넣어 생각해 보면, 사람이 입체적이라는 것은 아마 평면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형태가 실존하고 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는 도드라짐의 특징을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보통 사람에 대고 하는 '입체적이다'라는 표현은 내가 알고 있는 위의 의미와 다르게 쓰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추측하자면, 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성격이 복수 이상일 때, '입체적이다'라고 표현하는 듯하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늘 들어왔던 '입체적인' 인간의 현실형 버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를 보며 했던 생각들을 오늘 풀어내 보고자 한다.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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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작중 '권민우'라는 인물은 '우영우'를 싫어한다.

 

그가 우영우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영우가 본인보다 더 많은 특혜를 얻고 이해받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나운서 시험에까지 합격하는 실력을 가진 수재인 권민우다. 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는 류의 배려들이 단지 자폐증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영우에겐 허락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권민우가 그녀를 처음부터 싫어했느냐, 묻는다면 아니다. 그가 우영우를 직접적으로 적대한 것은 우영우의 무단결근 사건에서부터 다. 우영우는 사직서를 내고 사표 수리가 되기 전까지는 출근을 해야 되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당연한 룰을 어기고 무단결근을 일정 기간 지속했다. 그러나 로펌의 대표 변호사인 정명석은 그를 퇴사처리하지 않고 기다려 주며 우영우를 배려했다. 이 상황은, 우영우가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며, 특수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배려 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우영우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반감을 드러내는 등의 부정적인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동종업계 종사자의 깔끔한 태도로 우영우를 대하던 권민우는 시청자들로부터 '정말 편견 없는 변호사'라는 평을 얻고는 했었다. 우영우를 그저 동등한 라이벌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권민우가 그녀에 대한 불호의 감정을 드러낸 것은 그 '지극히 일반적임'에서 벗어나 우대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부터 인 것이다.


그가 가진 우영우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우영우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과 차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날고 기는 수재였던, 좋은 학벌과 여러 합격증들을 가진 권민우조차 받을 수 없는 배려를, 우영우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우영우의 아버지와 업계 내 인맥들, 그로 인한 인재 추천형 채용을 통해 우영우가 한바다 로펌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채용이 비리가 아니며, 우영우의 성적이 로스쿨 내 최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로펌 취업을 실패했던 과거가 있다는 현실이 권민우에게 과연 배려의 밑바탕으로써 작용할 수 있었을까?


권민우에게 장애인으로서 배려받는 우영우를 시기하고 비판하는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작중에서는 권민우가 우영우를 인정하는 장면도, 때에 따라 조금은 인간미 있게 허둥거리는 모습도 나타난다. 우리가 평소에 일하고, 공부하고, 삶에 부딪히며 사는 그 모습과 다르지 않다. 권민우 또한, 일관적일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옆 사람과 동등한 혜택을 받지 못하면 심보가 꼬이고,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어떠한 가치로 인해 차별받을 때 화가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권민우'와 같은 인물을 현실에서 찾아 예시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박명수'가 있다. 그는, 늘 선하고 착실한 '유재석'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과도 같은 인물로서, 무한도전의 악역과 같은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야 프로그램의 흐름 속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며, 멤버들과 케미를 살릴 부분을 찾을 수 있었던 당시의 예능 추세에서 그는 '악역' 캐릭터를 통해 쟁쟁한 동료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캐릭터성으로 인해 대중의 억측과 비난을 필터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연예인과 대중의 거리가 줄어들고, 관찰 예능과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이미지가 달라진 박명수는 이제야 그 입체적인 매력이 많이 알려졌다. 조금은 텁텁할지 몰라도 내심 따뜻한, 그저 평범한 사람임이 알려졌을 때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명수를 사람 대 사람으로 진실성 있게 응원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앞에서 말했던 권민우와 박명수처럼,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일관적일 수 없고, 평범하기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일관적으로 선하고 성실하며 대범한 인물이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진다. 편하고 싶고, 원하는 대로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사람으로서 갖는 당연한 욕구이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다. 누구나 내 주변엔 성실한 사람, 착실한 사람이 있기를 바라지 않나?



 

다면체 인간



우리가 소설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어떠한 창작된 작품을 볼 때 가장 사랑하는 인물은 '입체적인' 인물이다. 상황에 따라 모습을 유려히 바꾸는, 성장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하는, 때로는 비열해질 수도 있는 인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열함을 좋아하거나 갈대같이 흔들리는 주관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이다. 동일한 류의 사람을 바라볼 때 그에 대한 거리감이 줄고, 더 많이 공감하며 작품에 이입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인물들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일 테다.


이는, 우리 모두 작품 속에 존재하는 입체적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가 모두 세상 속 살아가는 다면체 인간들 중 하나다. 부화뇌동하거나, 실패하거나, 냉정해질 수 있다. 늘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 때 비로소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 때 가장 사랑받고 이해 받을 수 있다.


언젠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우리의 모습이 바뀌더라도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하므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소한 위로와 격려를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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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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