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외에는 외국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저자에게 1년간의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14년 동안 쉼 없이 직장생활을 했던 그에게 정해진 루틴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기란 분명 쉽지 않았을 테다. 이에 저자는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루어 낼 목표를 정한다. 바로 스스로를 교육하겠다는 결심이다.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뉴욕에서 혼자 외롭지 않았느냐고. 그렇지 않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1년간 죽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내가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종종 버겁기도 했지만, 그 덕에 나는 나를 좀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데리고 다닌 1년이었다. (9p.)
본격적으로 그의 여행기가 시작되기 전, 서론에 나오는 문장이다. 페이지를 이제 막 넘기고 나서야 만난 글이지만 뒤돌아보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저자가 혼자 지내는 것을 나와 지내는 것, 나를 진심으로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바라본 게 인상 깊다.
“소련의 한 미학자가 아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건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했어. 책이나 음악과 달리 그림은 복제본을 소유하는 게 의미가 없잖아. 장소 특정적이라 그 도시의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림과 관람자 간에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는 거지. 어떤 그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그런 관계 때문이라는 거야.” (64p.)
이를 보고 좋아하는 그림을 보기 위해 해외 미술관 투어를 가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오히려 내가 아는 그림을 실제로 보아도 생각보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워낙 책이나 미디어에서 많이 봤더니 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근데 이 문장을 읽고 그 장소가, 소장처가 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선 저자가 다녔던 학교의 수업 방식이 가장 흥미로웠다. 틀린 답, 정해진 답이 존재하기보다는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 특히 예술에는 수학처럼 정해진 하나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100명에게 질문하면 100명의 의견이 다 다르기에 예술에 흥미를 느끼는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수업 방식이었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뒤러 세미나를 청강한 노인들의 얘기도 실제로 내가 그들을 만난 것처럼 몰입해서 들었다. 나도 점차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지적 호기심이 여전히 번뜩이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는 대중이 미술에 다가갈 수 있는 문턱이 더더욱 낮아져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가격에 초점을 맞추면 장벽은 더 높아진다. 경매에서 어떤 작품이 비싸게 팔리고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이 뉴스로서의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일간지 기자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대중이 미술작품을 쉽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8-109pp.)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늘 가지고 사는 사람이기에, 이 문장에 몹시 공감했다. 이를 읽고 바로 비교적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청년층을 타겟으로 한 아트 페어가 떠올랐다. 바로 더프리뷰나 빈칸 아트 페어이다. 둘 다 기존 아트 페어의 틀을 깬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테면 더프리뷰는 신예 미술작가와 신생 갤러리 위주로 부스를 구성하여 컬렉팅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한다. 특히 십만 원대의 작품 또한 곳곳에서 볼 수 있었으며, 카드 결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쉽게 지갑을 열기 어려웠던 대형 아트 페어와 달리 심리적 부담감을 대폭 낮추었다.
한편 빈칸 아트 페어는 행사 준비 단계서부터 예술 본질에 집중한 페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전시 계획서와 블라인드 인터뷰만으로 아티스트를 선정했다고 한다.
아울러 두 페어 모두 기존 행사에서 보기 어려웠던 퍼포먼스나 아티스트 토크, 관객 참여형 전시 등을 선보이며 청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예술과 자본, 경제의 관계에서 돈보다 예술에 더욱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을 수강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 영화관〉
에드워드 호퍼, 〈뉴욕 영화관〉, 1939, 캔버스에 유채, 81.9x101.9cm
카네기홀에 조성진 독주회를 관람하러 간 저자는 우연히 ‘붉은 옷을 입은 공연장 안내원이 앙코르 직후 연주자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본다. 이후 호퍼의 〈뉴욕 영화관〉에서 스크린이 보이는 자리로부터 소외된 안내원을 보고 고독과 단절, 지루함과 쓸쓸함을 느꼈던 저자가 이를 달리 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면서도 공연을 즐기는 사람으로 말이다.
뒤이은 챕터에 "직장인이 일터에서 각자 자기 일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 ‘고립’이고 ‘소외’일까? 우리는 호퍼의 작품을 외로움과 인간소외라는 키워드로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라는 문장이 있다. 저자가 〈여자들을 위한 테이블〉(1930)을 미술관 측의 설명과는 달리 활기차고 에너지가 가득한 그림으로 본 것처럼 〈뉴욕 영화관〉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앞서 잠깐 말한 대로 예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혹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그가 놓인 상황이나, 현재 감정 등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기에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읽어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한다.
뉴욕, 호퍼, 괴테 등 여러 키워드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막상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삶'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없이 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자는 오직 그 자신과 온전한 시간을 보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나를 돌볼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참고자료
서울문화투데이, 새로운 아트 페어 모색한…‘빈칸 아트 페어’, 2021. 12. 28.
네이버 블로그, 디자인프레스, 젊은 미술 작가와 갤러리의 라인업은? ‘2023 더프리뷰 성수’, 2023. 0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