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자 조각가가 조합해낸 섬세하고 유려한 책 - 도서 '분자 조각가들'

글 입력 2023.05.0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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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로서 화학 연구는 거의 마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이런 판단이 화학 연구의 논리성을 막연히 이해하고 그 공백을 신비주의로 채우려는 시도가 아니다. 현대 의학연구의 기반이 되는 모든 과정은 시행착오를 통해 합리적으로 조직되었고, 행정과 연구 윤리상 어떤 부분에서 속도를 지체시킬지언정 그러한 체계가 연구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논리적 체계와 엄중한 연구체계를 존중하면서 (또한, 무지에서 비롯된) 나의 이상화를 걷어내더라도, 화학 연구의 원리는 신비롭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들을 분석하고 이해하여 재조합하는데, 그 결과물이 실제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화학자는 연금술사를 기원으로 두고 있다. 현대에서 그들은 신비주의자가 아닌 명확한 논리와 체계를 기반으로 지식을 쌓아가는 과학자다. 하지만 화학자들은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혁신에 대한 갈증 없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어떤 영역이건 인간을 진보시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잉태하려는 인간의 예술적 측면이다. 아주 오랜 시간 전, 플라톤 역시 인간의 영혼을 불멸하게 하는 방법이 예술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모든 개인은 끝없이 변화하는 작품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몇이나 있었건 짧은 시간에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수는 인류 문명이 남아있고, 문명의 산물을 누군가 이해할 자가 남아있다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불멸하고, 끝없는 지식의 발전 흐름 속에서 작지만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 리뷰할 도서 <분자 조각가들>은 아주 적절한 제목이다. 독자로서 이 책의 느낌은 아주 독특한 느낌을 준다. 아마 이 책을 꿰뚫고 있는 관점이 단순히 과학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책은 화학자의 관점에서 기술된 신약개발의 역사(운, 자연,사람, 창조에 의한)와 현대 신약 개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같은 최신 이슈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책은 철저한 역사적 사실이나 당시 이루어졌던 분자 연구에서의 의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끝까지 역사에 대한 편향 없이 서술해나가지만, 각 섹션에서 자신의 감상과 의견을 지워내지 않는다. 정리해서 말하면, 책에서 저자는 전달해야 하는 지식에 대해서는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되 그러한 사실의 조합 속에서 저자만의 예술적 감성을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이런 저자의 태도와 책의 전반에서 드러나는 화학연구의 예술적 측면-분자를 이해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책의 전반에서 조합되지 않을 것 같은 두가지 측면의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 독특한 책의 구성과 더하여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다른 부분은, 저자가 아주 편안한 언어로 글을 쓴다는 점이다.

 

전공자 입장에서, 비전공자를 이해시키는 것은 몹시 어렵다. 대중 교양서를 읽어가다 보면, 독자의 지식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책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해할만해도 한 것이, 오해 없이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선 독자 역시 같은 수준의 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비슷한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보를 쏟아내니 책은 점점 교양서 저너머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은 쉬운 언어를 끝까지 유지한다. 저자가 책을 좀 더 쉽게 읽히게 하려고 사용했던 방법도 흥미롭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책은 신약발견의 과정이나 역사적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전개된다. 그래서 화학자들이 발견한 이론적 내용을 손바닥 한 짝 정도로 줄이고, 나머지 지면을 그 화학자의 일생과 화학 분자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들에 쓴다.

 

종합하면, 이 책이 '화학 역사책'을 넘어선 그 자체로 재밌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글 스타일 가진 매력성과 가장 흥미로운 것만을 추출한 글솜씨 덕분이다. 그야말로 조각가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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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동물로부터 신약 개발한 2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당장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어떤 화학 물질의 작용으로 인간의 생로병사, 희노애락이 결정된다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데, 그러한 화학작용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수 세기 동안 진화해온 결과라는 것이 아무리 들어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보다 인간이 그런 진화과정을 이해하고, 화학물질을 추출하여 인간의 몸을 고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다른 생물이 수세기 동안 발달시켜온 진화의 결과물을 인간이 이해해 그 몸의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연적인 생태가 아닌 인공적인 방법으로 이미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다양한 면에서 자신의 몸을 증대시키는 것은 아직 제한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얼마 안 되는 시간 속에서 다른 생물의 수세기 진화의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반대로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자연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어떤 감상이나 철학적 접근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뻔한 말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연 일부로서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뻗어 나간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기제가 있다는 점에서, 어떤 생물의 멸종은 인간미래 가능성의 부분적인 멸종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인공지능과 관련된 부분에서 서술했듯이,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책에서 계속해서 말하는 부분 중 하나는 신약개발의 과정이 늘 논리 속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신약개발은 화학자의 광기에 가까운 몰입과 우연, 실수, 의도치 않은 발견의 연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책은 더 많은 질문을 남기고 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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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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