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12가지 키워드로 보는 ‘요즘 미술’ -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정서연 작가

글 입력 2023.05.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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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_표지(평면).jpg

 

 

‘요즘’이 앞에 붙는 것들은 종종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 바탕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있다. ‘요즘 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덧 난해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현대미술을 두고 ‘이게 예술이냐’식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뿐, 한번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언어를 갖게 된다면 현대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은 수없이 많다. 

 

현대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는 12개의 키워드로 그 맥락과 흐름을 짚어 나간다. 미니멀리즘부터 인공지능까지 ‘요즘 미술’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현대미술을 보고 느끼고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될 것이다. 현대미술과 미디어아트를 연구하며 미술 전문 미디어 ‘와이아트’를 운영 중인 정서연 작가가 잘 읽히는 문장, 깊이 있는 내용과 함께 현대미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지난 4월 24일, 대중과 현대미술 사이에서 친절한 가이드를 맡은 정서연 작가를 만나 ‘요즘 미술’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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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알고 연구에 몰두하기보다

공부한 내용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최근 미술과 관련된 책이 많이 출판되는데,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 현대미술을 다룬 책이라서 눈에 띄었어요. 작가님이 현대미술을 택한 이유,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 박사 과정으로 현대미술을 공부 중이라 자연스럽게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만 알고 연구에 몰두하기보다 공부한 내용을 쉽게 다듬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글을 쓰던 중 좋은 제안을 받아 책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작가를 더 널리 알리자는 목적도 있었어요. 정말 좋은 작가인데도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책에는 김윤철, 최우람, 김주리, 이미래 이렇게 네 명의 한국 작가 작품이 도판으로 실려 있어요. 이 책이 현대미술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책은 12개의 키워드로 현대미술을 살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키워드는 어떻게 선정하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일 년에 전시를 100건에서 150건 정도 봤어요. 국내에서 열리는 웬만한 전시는 거의 다 본 거죠. 봤던 전시를 정리하고 분석하다 보니 많이 언급되는 몇몇 키워드가 자연스레 나오더라고요. 그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 가면 적어도 전시 현장에서 당황하지는 않겠다 싶은 키워드를 제 나름대로 큐레이션했습니다. 

 

 

전시를 1년에 150건 가까이 보셨다니, 본 것을 정리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듯해요. 전시를 보고 돌아와 어떻게 정리하셨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본 전시를 다른 사람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준다고 생각하며 정리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와이아트’라는 미술 전문 미디어를 운영하며 꾸준히 전시, 미술 관련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어서 더 열심히 정리하려 노력해요. 전시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이 전시를 어떻게 보면 좋을지 계속 생각하죠. 집에 돌아와 생각이 잘 안 나는 부분은 따로 공부하며 내용을 추가하기도 하고요. 그 과정이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돼요. 

 

 

제시하신 12개의 키워드 중 딱 한 챕터만 읽는다면 어떤 걸 추천하고 싶나요?


6장 ‘장소 특정적 미술’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화이트 큐브’가 전시의 기본이 되었어요.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벽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아요. 화이트 큐브는 예술을 일상과 분리시키고, 감상자가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죠.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 위에 작품을 걸면 그 작품만 보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며 화이트 큐브에 반발하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작품은 창고나 거리 등 다양한 장소를 전시 공간으로 삼아요. 더 나아가 특정한 장소에만 있어야만 하는 미술작품도 탄생했는데, 이를 ‘장소 특정적 미술’이라고 해요. 이 키워드를 알고 전시를 보러 가시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일 듯해요. 최근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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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을 감상하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면

내가 사는 세계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이 담겨 있는데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작가 및 작품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를 좋아해요. 죽은 연인의 몸무게만큼의 사탕을 쌓아놓고 관람객이 자유롭게 먹거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해둔 ‘무제(LA의 로스 초상화)’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이번 책의 ‘관계미술’ 파트에서도 QR코드로 해당 작품을 볼 수 있어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하는 대신 사탕으로 표현한 점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이 직접적인 언어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지는 않지만, 토레스는 동성애자였고 죽은 연인도 남성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쌓인 사탕을 보고 나면 관련된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되죠. 


국내 작가 중에서는 최우람 작가를 좋아합니다.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최우람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코로나 시대의 인류가 처한 위기와 곤경을 잘 담아낸 작품이었어요. 지금의 현실을 그저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준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현대미술 책에서는 동시대 작가들을 많이 다루다 보니 유의해야 할 점도 더 많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한창 작품을 창작 중인 젊은 작가님들의 경우 작품 세계가 완성된 게 아니라 계속 바뀌어 가며 진행 중이라 더 비평이 어려워요. 특정한 키워드로 작품을 해석해버리면 그 틀 안에 작품을 가둔다는 느낌도 들고요. 꼭 책을 쓸 때가 아니더라도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다룰 때는 늘 주의하려 합니다. 

 

 

말씀을 듣고 나니 현대미술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님은 ‘틀린 해석’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틀린 해석’, ‘맞는 해석’이 분명하게 있지는 않아요. 다만 ‘합의된 해석’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해석이 나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가와 비평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있는 거죠. 그게 한 작품에 대한 적합한 해석으로 자리 잡고, 그걸 바탕으로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다른 새로운 해석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기존의 해석이 바뀔 수도 있고요. 그 모든 과정이 현대미술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게 현대미술의 매력으로 느껴지는데요,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현대미술과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우리 삶에 현대미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대미술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이에요. 각각의 작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매개체 또는 창이 되죠. 그래서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면 내가 사는 세계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인식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2개의 키워드 중 마지막으로 나오는 ‘인공지능’이 요즘 뜨거운 감자인 듯한데, 사진의 등장이 미술을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놓았듯 인공지능도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관련해 작가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책에도 썼는데, 저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무조건 적대적인 관계로 보지 말아야겠다는 입장이에요. '인간과 인공지능'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인간이 사물에 영향을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 사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인공지능을 하나의 독립된 객체로 인정하고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인공지능의 위험성과 부작용도 많이 제기되고 있어요. 이 부분은 인류가 지혜를 모아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최근 예술계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어요. 책에서는 김윤철 작가님의 작품 <쏟아지는 입자들의 폭포>와 함께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이 작품에서는 인간이 아닌 여러 물질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인간이 입력한 값 외에 스스로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내는 ‘생산형 AI’ 알고리즘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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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경제부 기자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 이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과 경제 분야가 완전히 상반된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연결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는 입장이에요. 처음에 경제부에 간 것도 세상 모든 것이 경제로 수립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실제로 이 책 뒷부분에서도 미술시장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경제부 기자로 일하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이직을 했고, 거기서 방송, 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자주 접하다 퇴사하고 대학원에 갔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원에서도 문화 연구 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이 운영하고 계신 미디어 ‘와이아트’도 그 무렵 만들게 된 걸까요? 와이아트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건지도 궁금합니다.


와이아트를 하겠다고 퇴사를 한 건 아니에요. 퇴사 후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관련된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거기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사람들이 원하는 일의 접점을 찾은 거예요.


접점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와이아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역시 미디어 환경의 변화 덕이었어요. 제가 처음 기자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개인이 미디어를 운영한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거든요. 기자 개인보다 그 기자가 어느 매체에 소속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했죠.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개인이 창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구독 시스템도 보편화되며 저도 와이아트를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접점'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매번 글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나도 재미있게 쓸 수 있으면서 사람들도 읽기를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려 노력하지만 꼭 예상대로 되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미지근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그 접점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해요. 내가 원하는 것만 쓰거나 반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쓴다면 지속하기가 어렵거든요. 내가 원하는 것만 쓰면 유의미한 수요가 없을 테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쓰면 내가 쓰는 재미가 없어요. 저 역시 지금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절한 접점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 접점을 찾아가며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현대미술 책은 교수님들이 쓴 전공서인 경우가 많아요. 제 책은 어려운 현대미술을 쉽게 풀어쓰는 데 차별점을 뒀기에,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제목에서부터 현대미술을 보는 사람들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담았거든요. (웃음) 관심은 있지만 현대미술 앞에 서면 막막해지는 분들,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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