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해 못 해도 공감하게 만드는 영화 음악

음악 감독 딕콘 힌크리프, <로스트 도터>(2021), <피키 블라인더스>(2016), <로크>(Locke, 2013)
글 입력 2023.04.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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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는 자각은 제각기 다른 시점에 찾아온다. 보통은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영화를 본 직후에는 별 감상이 들지 않다가 몇 번 곱씹고 나서야 애정이 가는 경우도 있다.


또는 정반대로, 영화의 첫 장면을 본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이 영화를 참 사랑할 것임을 직감할 때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음악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화 <로스트 도터>이다.

 

 

 

첫 장면부터 빠져드는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2021)


 

영화 <로스트 도터>는 엘레나 페란테의 동명 소설(한국어판은 <잃어버린 사랑>으로 번역되었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원작 소설 작가가 유명해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올리비아 콜먼의 주연작이라 어렵게 상영관을 찾아갔다.


솔직히 말해 영화를 보고 싶어 한 것과는 별개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모녀 관계를 다룬다는 줄거리 설명에 흥미가 끌린 건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이 영화를 완전히 즐기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작품을 선호하는지라 섬세한 감정선 위주의 영화를 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의문만 품거나, 지루해할 때가 자주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하품만 참다 나올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마음 한구석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과 동시에 흘러나온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첫 소절을 듣자마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너무 좋다. 너무 좋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는 사실을 다들 알 것이다. 이때도 무의식적으로 큰 한숨을 푹 내쉬어 놓고, 제풀에 놀라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관객이 적어 내 한숨에 방해를 받을 사람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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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영화와는 다른 독립 영화만의 분위기가 있다. 영화에 관해 아는 것이 없는 입장이라 모르고 하는 소리이지만, 독립 영화에는 살짝 어설픈 미완의 느낌이 남아있다. 그림으로 비유했을 때 상업 영화는 채색까지 완성한 후 밑그림을 깔끔하게 지운 상태라면, 독립 영화는 그 밑그림을 남겨둔 채인데 그 연필 자국까지도 완성된 작품의 일부로 포함하는 것 같다. 


바로 그 점이 독립 영화의 매력이고 수많은 팬을 양성하는 부분이지만, 나로서는 그런 분위기를 선호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에도 그 ‘밑그림’이 남아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고 매력이겠다마는 독립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내게는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딕콘 힌크리프의 음악이 나를 영화 안에 메다꽂아 버리면서 금방 그 불편함을 잊게 했다.


<로스트 도터>는 휴양지 해변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 음악은 언제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네스호에 떠다니는 백조를 떠올리게 한다. 성품 좋아 보이는 우아한 고학력자 주인공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영화의 화면보다도 사운드트랙이 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장면과 캐릭터에 알맞게 바뀌면서도 미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모든 스코어가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곧장 내 플레이리스트에 사운드트랙을 추가하고 음악 감독을 검색했다. 이때 딕콘 힌크리프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하니 눈에 띄는 이름이 더 있었다. 

 

 

 

삽입곡과 스코어의 합작, <피키 블라인더스> 시즌3 (Peaky Blinders, 2016)



<피키 블라인더스>라는 이름이 반가운 사람은 나뿐이 아닐 테다. 1920년대 버밍엄을 주름잡은 갱단 두목이 주인공인 이 영국 드라마는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국내에서도 알음알음 인기를 끌었다. 또한 딕콘 힌크리프가 시즌3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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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키 블라인더스>는 삽입곡을 잘 사용하기로도 유명한 시리즈이다. 삽입곡이 강렬하면 그 그림자에 스코어의 존재감이 흐려지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두 음악을 각기 다른 상황에 사용해 삽입곡과 스코어 모두 빛을 발한다.


대다수의 누아르 작품이 그렇듯,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일당도 매력적으로 비치는 장면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는 덩달아 멋진 삽입곡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 작품의 본디 목적은 이들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은 수시로 내적인 갈등에 빠진다. 그런 무거운 장면에서 긴장감이 고조될 때는 스코어가 돋보이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잔악무도한 냉혈한 같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고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역할이다.


<피키 블라인더스>의 감독 스티븐 나잇과 딕콘 힌크리프의 만남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 작품까지 확인하면 힌크리프가 만드는 음악이 어떤 색인지 좀 더 선명히 보인다.

 

 

 

선하지 않은 주인공, <로크>(Locke, 2013)



스티븐 나잇이 감독을, 딕콘 힌크리프가 음악을 맡은 영화 <로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자동차 안에서 하는 통화 내용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형식을 지닌다.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맞닥뜨린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 내용의 전부다. 하다못해 과거 회상이나 상상으로 장면이 전환되는 법도 없이 계속해서 차 안의 주인공과 차 밖의 어두운 밤길만 등장할 뿐이다.

 

시각 자극이 다른 영화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청각 자극의 역할이 특히나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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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이야기한 세 작품의 주인공 모두 선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갱단을 이끄는 <피키 블라인더스>의 주인공이야 말할 것도 없고, <로스트 도터>와 <로크>의 주인공 또한 각자의 잘못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도 나오고 짜증도 난다. 그뿐일까,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니 그들에게 마음이 치우칠 법도 한데 이렇게 이해가 안 가는 행동만 쏙쏙 골라 하는 걸 보고 있으면 헛웃음도 나온다.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주인공을 관객이 이해할 수 없다면 작품에 관한 호감도는 물론이고 관심도까지 뚝 떨어진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좋은 성품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가 성행한 게 아닐까 싶다. 선한 생각과 선한 행동이 보편적이기에. 여기서 내가 말하는 보편적이라는 표현은, 선한 사람이 절대다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선한 것이 합리적인 것, 그리고 옳은 것이라고 줄곧 배워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선하지 않은 주인공들에게 알듯 말듯 정을 붙이고, 이들의 한심함에 혀를 차다가도 은연중에 응원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가 이 이상한 악인들을 이해하지는 못할망정 이들과 공감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힌크리프의 음악에 돌리려 한다.

 

 

 

이해 없는 공감



보통 이해를 먼저 하면 공감이 뒤따라오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 세 작품은 좀 다르다. 작품을 보고 있자면, 머리로는 이 인물의 행동이 하나 같이 맘에 안 들고 이들이 하는 고생이 다 자기 업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감상은 그런데, 문제는 힌크리프의 음악이다. 사운드트랙은 이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갈등, 긴장까지 내게 전달한다. 그래서 정신 차려 보면 나도 같이 안달을 내며 주인공의 문제에 빠져있는 것이다. 


마냥 부정적인 감정만 전달하는 음악이라면 불쾌함에 거리를 두고 싶어질 텐데 그렇지도 않다. 가장 먼저 이야기한 작품 <로스트 도터>에서 언급한 네스호의 백조처럼, 그의 음악은 위험하지만 우아함이 있어서 계속 듣게 된다. 


이 이해 없는 공감은 기묘하지만, 꽤 재밌는 경험이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고뇌를 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저런 인물을 본다면 그냥 눈살만 찌푸리고 지나갈 텐데, 작품을 보고 있을 때는 그게 나의 문제가 되기도 해서 나도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공감 후에 이해가 뒤따라온다는 느낌까지 든다! 이미 내 판단력이 흐려져서겠지만서도, 이는 창작물을 볼 때나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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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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