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퍼석한 삶이 설렘으로 촉촉이 메워질 때 ft.신혼일기 [사람]

글 입력 2023.04.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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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벚꽃잎 바람에 흩날리던 어느 저녁. 노랫소리도, 사람도 없는 한적한 그런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다. 활짝 열어 둔 문으로 아직은 선선한 봄 공기가 불어왔고, 해는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넘어가며 오렌지빛을 저 멀리까지 퍼뜨리고 있다. 연달아 마신 소주에 달큼한 취기가 올라왔다.


“요즘 일 하는 거 힘들지 않아? 매일 늦게 끝나고, 어깨도 손도 아프다고 했잖아.”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 지 약 2개월 차. 하나부터 열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 쓰고 손과 발이 따라붙어야 하는 시점이다. 아침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급성으로 온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아침에는 차키 버튼 하나 누르는 것도 힘들어했다.


“우리 같이 웃고 있는 사진. 그거 보면 괜찮아져. 그리고 열심히 살다가 몰디브 또 가기로 했잖아. 그거 생각하면 설레고 힘도 나.” 남편은 자꾸 괜찮다며 웃었다. 아빠가 할 법한 대답에 나는 괜히 시큰해진 눈으로 창밖을 보다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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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으로 만 3년, 결혼한 지는 반년이다. 아직 병아리 부부지만,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연애할 때는 예쁜 곳에 가고, 재밌는 걸 같이 하고, 즐거운 것만 봤다. 힘들거나 좋지 않은 감정은 숨기고 함께 있는 시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부부가 되고 나서는 나의 모든 기분과 상황을 상대와 공유해야 하고, 또 부끄러운 것도 들킬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야식 먹고 난 다음 날 아침의 퉁퉁 부은 얼굴 말이다. 연애할 때는 함께하는 시간이 늘 ‘반짝’거리는 것뿐이었다면, 지금은 우리의 시간에 포근한 향과 따뜻한 색깔이 도톰하게 입혀진 느낌이다.


상대가 내게 이벤트 대신 일상이 되어주는 과정은 꽤 감미롭고 촉촉하다. 퍼석하게 갈라진 일상 속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꽤나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남편의 아내이지만, 때로는 누나도 되었다가 엄마, 동생,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남편도 때로는 동생이자 오빠, 든든한 아빠다.


웃음 몇 번이 더 생긴 내 일상

 

10분 간격으로 울려 대는 알람 소리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버티다 신음을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킨다. 욕실로 가 양치를 하고, 샴푸를 하고. 또 긴 머리칼을 말리고 로션을 바른다. 날씨를 확인하고 그제야 고민하는 옷차림. 나보다 출근이 1시간 늦은 남편과 포옹으로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급히 집을 나선다.

 

타닥타닥 키보드 치는 소리밖에 안 들리는 조용한 사무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괜히 간식도 당긴다. 여러 생각들 사이에서 아침에 나눈 출근 전 인사, 어젯밤 와인 한잔에 곁들인 가벼운 대화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입가에는 잠시 미소가 생기는 것이다. ‘오늘은 오빠랑 이런 이야기 해야지’, ‘다음 주에는 여기로 데이트 가야겠다’같은 생각에서 슬며시 얻은 힘으로 다시 일을 이어간다.


내 결혼 축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온 마음 다해 사랑해라”는 엄마 친구분 말씀이다. 결혼식 당일 저녁 감사 전화를 드렸는데 대뜸 하신 첫 마디였다. 왠지 그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신혼집에 돌아와서 함께 주말을 보낼 때도, 사무실에서 앉아 일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온 마음 다한 사랑이 뭘까. 끊임없이 물었던 그 질문에 이제야 답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의 일상에 잠깐의 미소가 되어주는 일. 건조한 일상에서 서로를 웃음 짓게 하는 일만큼 대단하고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자꾸만 설레고, 기다려지고, 같이 할 그 모든 것들을 꿈꾸게 되는 일. 대단한 선물 대신 서로의 일상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것이 더 고맙고 따뜻하다. 그 마음을 함께 유지해 나가는 것이 온 마음을 다한 사랑 아닐까 싶다.

 

30년, 40년이 지나서도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있길.

 

 

[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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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기린
    • 마음 따뜻해지는 글 잘봤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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