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리를 조절한다는 건 [드라마/예능]

한 발짝 두 발짝.
글 입력 2023.04.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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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늦겨울에 시작하여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의 설렘에 한몫 보태었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다들 보셨을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땐 화제성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오히려 당시의 나는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재밌어하는 걸 따라 재밌어하고 싶지 않은, 괜한 반항심이 들어서였던가. 종영하고서도 한참 동안 볼 생각이 없었더랬다. 결말이 어떻더라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와도 말이다.


그러다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마지막 화가 방영된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갈 때쯤, 겨울 방학을 맞이한 나는 심심한 틈을 타 유튜브의 숏츠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던 것 같다. 볼 게 없네, 생각하며 화면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무수한 인물들을 특별할 것 없이 바라보던 중 희도가 엉엉 우는 걸 목격했었다. 당시의 내가 인간관계에서의 답답함과 학업의 지지부진함으로 인해 약간의 번아웃을 겪고 있었는데, 영상 속에서 속 시원할 만큼 크고 서럽게 울어주는 희도에게 위로를 받았었나, 그랬던 것 같다.

 

'용두사미'라며, 이제는 클립으로 뜨는 영상조차 꼴도 보기 싫다는 가족들의 평에도 굴하지 않고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던 나는, 그 드라마에서 너무나도 많은 위로와 교훈을 얻는다.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반은 의심이었던 머릿속을 배신할 만큼. 그리고 내가 극 중에서 가장 공감했던 대사는, 드라마의 극 초반인 3화에 등장하는 희도의 대사이다. 그리고 그 '토로'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 전반을 관통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펜싱에서 제일 중요한 게 상대방과 거리 조절이거든. 지금 내가 그걸 못하네.."

 

-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나희도

 

 

**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2022년 2월 12일부터 4월 3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16부작의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케이블 방송사에서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11.8%의 높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나희도와 고유림, 그들을 둘러싼 친구들 간의 우정, 그리고 방송 기자 백이진과 나희도 사이의 사랑을 그린다. 1998년 IMF 금융 위기 상황 속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그 청춘들의 꿈과 우정,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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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너와 내가 같을 수는 없음을.


 

극 중의 희도는, 펜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방과의 거리 조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희도 자신이 펜싱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고 한다. 평생 반대편에서 치고 빠지는 이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스포츠를 해 온 희도다.

 

실제로 잘한다. 못한다고 본인 입으로 말은 하지만, 나름 한국에서 펜싱 잘하는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20번대 안에 있는 유망주였다. 슬럼프를 조금만 더 일찍 극복했다면 더 앞 순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희도가 바라보는 이가 당시의 한국 1번으로 꼽히는 선수, 동년배의 '고유림'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부족함을 느꼈을 테다.

 

어찌 됐건 희도의 그 말은, 제 펜싱 실력에 대한 불신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같은 속도로 다가와 주지 않은, 또는 한 발짝 다가갔을 때 두 발짝 멀어진 상대방들에 대한 실망이었다. 동경했던 유림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고, 위로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이진이 그렇게 해주지 않았던 것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거리 조절에 실패한 희도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잘 알아서, 나는 다음 장면으로 이야기가 넘어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희도의 울분 섞인 대사는, 다 컸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만큼 지나서 보면 삶의 과정 속에서 가장 많이 실수했던 부분이 어딘지 보이지 않나. 보이는데도, 또 범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할 수 없는 오류와도 같은 선택들. 마음의 크기를 조절하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와 발걸음의 속도를 맞추는 것과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 나는 항상 실패하곤 했다.

 

내가 주는 만큼 상대방이 주길 원하고, 내가 바라는 만큼 상대방도 바라길 원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마음은 없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이들을 기대하지 않고, 그들에게 아낌없는 믿음과 사랑을 주지 않을 것이라 큰소리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돌려받지 못하는 마음을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내뱉을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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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이야기 전반에서는 물리적인 거리의 변동에 따라 나타나는 주인공들의 인격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극이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건, 떨어져 있는 '몸'의 거리보다 상대를 가까이 느끼는 '마음'의 거리가 중요하다는 교훈이었던 것 같다.

 

이진이 희도와 끝내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이진이 뉴욕 특파원으로 가게 되어 멀어진 '몸'의 거리 때문이 아니었지 않나. 희도에게 온전히 기대지 못하게 한, 모든 걸 털어놓고 아이처럼 의지할 수 없게 만들었던 이진의 마음 속 벽이 결정적으로 둘의 이별을 낳은 것이다.

 

이진과 희도가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과, 그들이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마음의 벽이 있는 한 그들의 이야기는 더없이 완벽한 허상, 그 이상이 될 수 없음을 보는 이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 이야기가 허상이었기에 시청자들이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 허상인 김에, 마음의 벽을 허물고 몸의 거리를 극복하는 그 어려운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더 크게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진의 배신과도 같은 행보와 그들의 헤어짐이 더욱이 충격적이었던 것 아닐까. 현실에선 그들의 사랑이 성사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더 잘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사하던 그 여름날의 녹음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교실 창문을 열면 머리를 젖히며 들어오던 햇빛의 냄새, 쉬는 시간이면 내 어깰 두드리던 말랑한 손길들. 때로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체육복의 눅눅함까지도 그날의 다행감을 만드는 일부분이었다. 

 

당시 나와 감각을 공유했던 순수한 나의 친구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내가 어린 마음에 많이 기대기도, 언젠가는 내치기도 했던. 돌이켜 보면 사랑이었을 수도 있는, 누군가의 온정도 부담스러웠을 때가 있었더랬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내가 그러한 온정을 주었겠지. 그게 사랑인 줄도 모르고.


다가오고, 다가가고, 멀어지고, 스쳐가는 모든 형태의 감정들이 마음의 몸통에 생채기를 입히기도, 혹은 원래 있던 상처를 파고들기도 했다. 상처의 따가움은 너무나도 생경하여 나 외의 사방을 가렸고, 어떤 것이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료하는지는 그때의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파하기에도 바쁜 소년(小年)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기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 컸다고 말할 순 없지만, 예전보단 많이 높아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제야, 내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고,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내어 주던 이들의 선함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간 이들의 배려와 눈길이 느껴질 땐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찾아오는 감정은 아무래도 '감사함'이 아닐까 싶다.

 

그토록 지긋이 쏟아졌던 배려와 선의는 양분이 되어, 작고 약했던 묘목으로 하여금 그늘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는 나무로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했다. 이제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피해 쉴 곳을 찾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자리를 내어주는 여유 정도는 가질 수 있는, 마음이 넉넉한 무언가가 되어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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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도와 이진이 결국에는 헤어졌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그 시절의 서로를 사랑하듯이. 아직은 밉지만, 종종 그리울 때도 있는 친구들을 떠올렸을 때 미소 지을 수도 있는 여유를 갖고자 한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나가 버린 인연들의 빈 자리까지도 추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지 않을까?

 

다가오다가, 이내 스쳐 지나갈 인연들을 다독일 수 있는 아량을 보듬어 왔듯이, 이미 멀어진 이들과의 이야기도 다정히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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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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