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독일 모더니즘과 러시안 아방가르드 - 전시회의 가장 첫 번째 섹션에서는 거친 붓자국과 원색의 과감한 색채를 통해 인간 본성의 순수하고 원시적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회의 한쪽 벽에 적혀 있는 위와 같은 설명을 읽은 후 곧바로 작품들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혹자는 곧바로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우선 나는 아니다. 글을 읽고서도 내가 글을 읽은 것인지 모호한 상태로 작품을 보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프란츠 마르크의 「소들」을 보고 나는 곧바로 거친 붓자국, 원색, 과감한 색채, 순수하고 원시적인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동성이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런 것일까?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거친 붓자국이 남아 있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02. 피카소와 동시대 거장들 - 조르주 브라크의 「유리병, 레몬, 과일 그릇」 속 레몬에는 그 어떠한 빛의 표현도 없었다. 그 옆의 유리병 역시 입체감이 표현되지 않은 채였다. 어딘가 모호한 듯 보이면서도 분명 단호한 그림이었다.
피카소의 「작업실에서」를 통해 나는 조금 피카소와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처음 얼핏 볼 때에는 알 수 없는 선들의 향연인 줄로만 알았는데 눈이 익숙해지니 캔버스에 사람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볼 수 있었다. 작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그 순간은 소중하고도 매번 새롭다.
03. 초현실주의부터 추상 표현주의까지 -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 운동인 초현실주의. 장 뒤뷔페는 어린이나 정신질환자같은 비전문가의 단순하지만 대담한 표현의 화풍을 표현한다.
칼 로토 쇠츠의 「1955년 3월 6일의 그림」은 나로 하여금 수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지금과 비슷한 그 날짜에 대체 무엇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약 70년 전의 3월의 날씨는 현재와 비슷할까? 혹은 조금 더 선선했을까? 이 그림에 사용된 노란색은 기쁨의 노랑일까, 황폐함의 노랑일까? 역동적인 붓놀림은 즐거움의 일렁임일까, 복잡하거나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 그림 한 장을 두고 감상자가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나에게 언제나 큰 영감으로 다가오며,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이 작품과 그것의 창조자에 대한 존경을 하게 된다.
에른스트 빌헬름 나이의 「장밋빛 리듬 안에서」. 그는 왜 리듬을 장밋빛으로 표현했을까?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귀로만 들을 수 있는 리듬을 색채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정말 벅차고 아름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그림 속에서의 붓터치는 음표같기도 하고 박자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악기같기도, 춤을 추는 사람같기도 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장밋빛의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04. 팝아트와 일상 - 팝아트는 일상적 이미지를 예술적 표현으로 사용했다.
리처드 에스테스의 「식료품점」은 단순하게 정말 식료품점을 그린 것이 전부이다. 처음 그림을 마주하고는 놀라서 멈춰 서 있었다. 왜 가게 그림이 작품으로 걸려 있을까?
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현재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 사진을 찍어 남기는 습관이 있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나는 순간 이 작가와 교감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일평생을 살아온 동네를 거닐다가 갑자기 이 순간의 이 공간이 황홀해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곧 팝아트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일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이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예술이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똑같은 상표 그림들을 흰 상자들에 찍어냈다. 모두 직사각형의 흰 상자들이었지만, 그 흰색 박스들은 정말 새하얀 것에서부터 누렇게 된 것까지 그 색상이 다양했다. 모양 역시 어떤 것은 정사각형 반듯한 모양, 어떤 것은 세로로 길쭉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다 똑같은 상표가 찍혔지만 조금씩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
05. 미니멀리즘 경향 - 1933년 요제프 알버스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색채 조합의 상대적인 시각적 효과를 실현한 그의 「정사각형에 대한 오마주 : 초록향」 작품은 착시현상을 이용한 색채 전이와 변화를 실험하는 옵아트의 등장에 기여했다.
이 작품은 초록색 네모 안의 초록색 네모 안의 초록색 네모 그림이다. 이 초록색 네모들은 저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다. 굉장히 단순한 그림이다. 직선, 네모 세 개, 색깔 세 개. 그 조그마한 요소들에서 옵아트가 발전했다. 정말 단순하고 작은 것들도 모이고 모이면 큰 현상을 이루어낼 수 있다. 옵아트의 시작처럼 말이다.
귄터 워커의 「큰 나선 1(검은색)과 큰 나선 2(흰색)」은 채색된 캔버스에 나무와 못을 이용한 작품이다. 몸 만한 캔버스에 수 백, 혹은 수 천 개의 못을 박아서 그 못이 큰 나선을 이루도록 했다. 뻣뻣하고 딱딱한 직선의 못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었다. 작품의 크기가 커서 더욱 그랬는지는 몰라도, 작품에 압도된다는 말을 몸으로 체감한 정말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 단순하고 단순한 재료로, 단순한 반복 행동-못을 박는 일-으로 이런 작품을, 이런 감정을 나에게 줄 수 있다니.
06. 독일 현대미술과 새로운 동향 - 마지막 세션에서는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이미징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영역으로 성장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여준다.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는 전쟁의 폐허와 국가의 분단으로 인해 상실된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고통받는 인물들을 묘사한다. 볼프강 마트호이어(Wolfgang Mattheuer)는 라이프치히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동독에 남아 당대 고립된 사회를 그렸다.
볼프강 마트호이어의 작품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요』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직관적으로 보인다. 다리를 뻗고 눕지도 못 할 조그마한 섬에 고립된 사람들은 각자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끊어진 안테나 선, 땅 속에 파묻혀 몸을 반만 내밀고 있는 사람,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사람, 그럼에도 거울로 빛을 반사해 무언가 신호를 보내려는 사람까지. 때로는 직관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 굳이 어렵게 표현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해당 전시는 현재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관람 가능하다. 마이아트뮤지엄은 한, 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전시를 2023년 3월 24일부터 8월 27일까지 개최한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쾰른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 피카소, 달리를 비롯해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 등의 다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 세 번째 규모의 피카소 컬렉션과 세계 최고 수준의 팝아트 컬렉션은 미술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