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나의 이야기 - '레드북' 김청아 배우

글 입력 2023.03.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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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고 또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뮤지컬 <레드북>은 이런 시대에 감히 글을 쓰는 여자, 그냥 글도 아니고 자신의 신체와 사랑을 글로 쓰는 안나라는 여자를 앞세운 이야기다. 탄탄한 짜임새와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초연부터 호평받았던 작품은 어느덧 삼연을 맞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레드북>의 주인공은 안나이지만 안나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로렐라이 언덕에서 만난 여성들 덕분이다. 줄리아, 코렐, 메리. 이들에게도 이름이 있다. 관객이 기억하는 이름은 안나뿐일지라도 이 여성들은 묵묵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중 메리 역을 맡은 김청아 배우를 만났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메리로서, 무대 아래에서는 김청아라는 이름의 뮤지컬 배우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쓰는 중이다. <빨래>, <청춘소음>에서 고민 많은 청춘을 연기했던 그에게 <레드북>은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메리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배우 김청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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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희망적인 메시지와 벅찬 행복감을 느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14일부터 <레드북>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공연은 잘 마치셨는지요. 이번 공연에 합류하게 된 소감도 궁금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레드북>은 큰 사고 없이 잘 시작되었습니다. 2년 전에 관객으로 <레드북> 공연을 봤을 때 짜임새 있는 구성과 신선한 소재에 놀랐어요. 명확한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나간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때부터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참여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했던 과정도 들어보고 싶어요. 


추웠던 겨울에 공연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서울에서 대극장 공연은 처음이라 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극장 크기가 커지니 뒤쪽 관객석은 잘 안 보여서 처음으로 렌즈를 사서 끼고 연습을 했던 게 신선한 경험이었죠. (웃음) 함께하는 배우분들의 리액션이 좋아서 연습하는 동안에도 무척 즐거웠어요. 

 

 

이번 공연에서 로렐라이 언덕의 ‘메리’를 비롯해 다양한 얼굴로 출연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공연에 임하는 배우님만의 다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떤 공연을 하든 관객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많이 고민해요. 관객분들이 집에 돌아가실 때 이 공연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셨으면 좋겠고, 공연에서 희망적인 메시지와 벅찬 행복감을 느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이번 공연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배우들끼리 ‘오늘도 한번 재밌게 놀아보자’ 이야기해요. 저희 연출님이 첫 연습 때 여러분이 이 공간에서 아이들처럼 놀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우리가 재밌게 놀다 보면 그 기운과 에너지가 관객에게도 잘 전달될 것이고, 결국 좋은 공연이 나올 거라고 하셨죠. 

 

 

배우님이 <레드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또는 넘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매 순간 바뀌는데 요즘에는 브라운이 안나의 레드북을 읽고 난 후 혼자서 짧게 노래하는 부분을 정말 좋아해요. 브라운이라는 중산층의 고지식한 남자가 안나라는 한 여자로 인해 사상과 신념이 변하고, 지금껏 자신이 안나에게 건넨 말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죠. 그러고 나서 안나에게 앞으로 변하는 걸 기대해달라는 이야기를 해요. 사람이 변하기가 쉽지 않은데, 타고난 계급과 성격을 넘어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브라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 장면을 좋아합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넘버인 ‘난 뭐지?’도 좋아해요. 처음에는 가사 중 ‘나머지’가 ‘난 뭐지?’로 연결되는 걸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감탄했어요. 이 넘버에서 안나라는 인물이 다른 이들과 달리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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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여성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가며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매력이 있어요.”

 


관객일 때 본 <레드북>과 출연 배우일 때의 <레드북>은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많이 달라요. 정말 좋았던 공연에 배우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는 부담감이 커요. 제가 보면서 좋았던 부분을 이제 직접 표현하고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거니까요. 관객으로 한번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배우로 연습하며 발견하기도 해요. 좋은 부분을 새롭게 발견할 때면 그런 부분까지 관객분들에게 다 전달해드리고 싶어져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매번 생각하죠. 

 

 

그럼 이번 공연에 배우로 참여하며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나 더 잘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로렐라이 언덕의 메리 역할을 맡고 있지만, 관객으로 <레드북>을 봤을 때는 신사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고지식한 신사의 면모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이 신선하고 재미있거든요. 무대에 서는 입장이 되어보니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이 눈에는 덜 띄어도 안나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중요한 사람들이더라고요. 이들이 안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었기에 안나가 레드북을 쓸 수 있었죠. 그래서 이 모임이 관객에게 좀 더 잘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배우님이 생각하시는 <레드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당시 가장 낮은 계급으로 살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여성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가며 성장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매력이 있어요. 또 그 여성을 보며 중산층 남성인 브라운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모든 인물이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을 해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이에요.

 

 

<레드북>의 로렐라이 언덕에서 여성들은 자신만의 글을 씁니다. 배우님에게도 로렐라이 언덕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요? 나만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 배우님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친한 친구와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내 느낌과 생각이 맞는 걸까 고민이 될 때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말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안심하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관점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해요.

 

 

시간이 지나 <레드북>을 돌아봤을 때, 배우님에게 이 작품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일단은 하고 싶었던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또 대극장이 처음이다 보니까 이렇게 많은 배우분들과 한 공간에 모여서 호흡하는 것도 처음이에요. 제가 서울에 올라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한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배우로서 청아 님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원하시나요?


무대를 사랑하는 배우, 허투루 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배우로 비춰지고 싶어요. 제가 무대에서 행복해하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연기에 새로운 디테일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 그렇게 해서 따뜻한 무언가를 관객분들에게 전달해드릴 수 있을 때 팬분들도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언제나 제가 하는 공연을 통해 관객분들이 무언가 힘을 얻어가시면 좋겠고, 그걸 제가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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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공연을 하든 내가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어느덧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신 지도 11년 차인데,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정말 우연이었어요. 실용음악을 배우러 갔다가 층수를 헷갈려 연기학원 쪽에 들어간 거죠. 하다 보니 또 재미있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재미로만 계속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니까 내가 왜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겨서 공연을 쉬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를 지나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저는 무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연기를 통해 평생 살아도 경험해보지 못할 삶을 알게 되고, 무대 어딘가에서 김청아가 아닌 다른 인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팬분들의 응원도 많은 힘이 되어요.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코로나가 터지고 공연이 취소되면서 부산에 다시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팬 한 분이 주신 편지가 기억나요. 삶이 너무 힘들어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는데 공연을 보고 다시 힘을 내서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를 읽으며 내가 하는 공연이 누군가의 인생이 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때 뮤지컬 배우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시다가 2019년 무렵부터 서울로 상경해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연기하신 <빨래>의 ‘나영’도, <청춘소음>의 ‘아름’도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청춘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배우님도 꿈을 위해 상경한 청춘으로서 공감하시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그걸 무대에서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저 역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자유로워진 상태예요. 코로나가 터지며 공연도 줄어들고 밖에 나갈 일도 많지 않을 때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오히려 상황이 그렇게 되어 혼자 생각하다 보니 배우로서의 제 최종 목적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이 직업을 갖고 있는 거라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공연을 하든 내가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앞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꼭 맡아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전부터 <빨래>의 ‘나영’, <미스 사이공>의 ‘킴’. <렌트>의 ‘미미’나 ‘모린’ 역을 맡아보고 싶었어요. 그중 ‘나영’ 역은 해봤고, 좀 더 성장하면 다른 배역도 언젠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드북>을 보러 오는 관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뚜렷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레드북>은 한국 창작 뮤지컬 중에서도 굉장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공연을 보고 나서 안나처럼 나를 알아가고 브라운처럼 누군가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분들과 스텝, 창작진 모두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작업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에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회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끝까지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분들도 저희 팀의 좋은 에너지를 받아 힘이 되기를 바라요. 

 

 

*사진제공: 아떼오드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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