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권마다 다른 기괴함, 공포에 대한 형상화 [도서/문학]

'장화홍련전' 속 처녀귀신의 의미
글 입력 2023.03.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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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고전소설 중 하나로, 한글본, 한문본, 국한문본이 모두 존재하는 작품이다. 그 중 한글본에 따르면 평안도 철산부사 전동흘이 계모의 흉계로 원통하게 죽은 배좌수의 딸들 장화, 홍련의 사건을 해결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원혼이 억울함을 풀어내는 원귀설화이자 계모와 전처 자식의 관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윤리학적 문제와 가족간 갈등을 다룬 가족소설이다.

 

 

 

원귀설화 <장화홍련전> 속 '처녀귀신'의 의미


 

원귀설화는 생전에 억울한 일 때문에 죽은 원혼이 생전의 한을 풀기 위하여 원귀 또는 동물, 사람의 형상을 취하여 직접 대면하거나 현몽, 매가물을 통해 암시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원혼이 되어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자기 주장을 관철할만한 처지에 있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원혼이 되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 또는 주변인이었음을 시사한다. 

 

<장화홍련전> 속 장화와 홍련은 가부장적 사회 속 가족 간 갈등 안에서 약자의 입장에 위치해 있다. 계모의 모함에 제대로 반박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자식이었으며, 남성인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죽음을 강요받은 여성이었다. 이렇듯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여러 가족소설들에서는 시대적 한계로 인한 가부장적 남성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이 나타난다. 

 

 

 

문화권마다 다른 '괴물', '귀신'에 대한 형상화


 

우리는 알 수 없는 것, 기괴하고 이상한 비이성적인 덩어리들에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 문학작품 속에서는 문화권마다 이렇게 축적된 어둡고 기괴한 덩어리들을 '괴물', '귀신'과 같은 존재들로 형상화하여 나타낸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포, 미스테리, 수수께끼에 대한 역사가 유구한 것도 이런 인류사에 그 배경이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문학작품 속 괴물과 귀신들은 인간의 무의식 속 개인 또는 공동체의 트라우마적 공포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권마다 그 모습이 다르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 나라에서는 <장화홍련전>과 같은 소복 입은 처녀귀신에 대한 형상화가 전통적이다. 서양에서는 반신반인적인 뱀파이어, 마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 유령의 형상화가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삐에로와 악마에 대한 형상화가 주로 나타난다. 공포와 기괴함에 대한 형상화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로는 문화권마다 각자 다른 역사, 전통, 관습 등 다른 배경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서양에서 뱀파이어, 마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중세에서 근대시대이다. 여기엔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흑사병, 급격히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느꼈던 부자연스러움, 공백, 어두움, 두려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유행했던 공포, 수수께끼, 괴기, 음모를 주제로 한 이야기, 고딕 소설 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포와 미스테리 소설 속 축축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괴기스러운 괴물들은 당시 사람들이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것',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것'에 대해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이 형상화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침대 밑의 괴물', 삐에로와 악마에 대한 형상화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미국식 집의 구조와 생활 습관에서 그 공포의 유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좌식 문화권인 한국과 달리 입식 문화권인 미국에서는 집 안에 카펫을 깔고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닌다. 신발을 벗고 온돌 바닥에 맨발로 앉아 생활했던 전통적인 한옥과는 다른 구조이다. 또한 땅이 넓기 때문에 주로 방이 많은 단독주택 형태의 집에 주거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문화는 갓난아이가 태어나도 아이 방을 따로 두어 부모와 따로 생활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듯 어려서부터 혼자만의 방, 침대 위에서 어두운 밤잠을 청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는 미국인들에겐 공통적으로 '침대 밑의 어둠', '침대 밑의 괴물'에 대한 공통적인 문화권적 공포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양권인 한국은 어떨까. 앞서 말했듯 원혼설화는 생사의 원통함을 원귀가 되어 풀어내는 이야기로 여기서 원혼 등장은 '죽어서 말하기'에 해당된다. 원혼설화에서 원혼은 상층보다는 하층, 남성보다는 여성으로서 권력이나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주변인물로 나타난다. 이러한 원혼의 위상은 원혼설화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로서 소외되고 거부당한 사회적 주변인들의 자기표현 방식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에 유독 처녀귀신, 소복 입은 여자 귀신에 대한 전통적 귀산상이 광범위하게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에서 억울하게 내몰렸던 여성들이 많았다는 반증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씁쓸하다. 

 

 

 

같은 동양권 한국의 '한'과 일본의 '원' 개념


 

일본은 한국과 같은 동양문화권으로 '처녀귀신'에 대한 광범위한 전통적 형상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속엔 '한'과 '원'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한국의 경우 <장화홍련전>의 장화와 홍련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여 귀신이 된다. 이때 이들이 귀신이 되어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이유는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알려 한을 풀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한'이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억울한 '한'이 제3자에 의해 해소되면 승천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를 보인다. 이는 무가적 살풀이나 무당의 굿과도 관련이 있는 기승전결적 구조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수많은 귀신을 신당과 신주로 모시며 잡신과 잡귀를 모시는 민간신앙이 발달해있다. 일본의 귀신을 '한'을 풀고 해소하는 한국적 원혼설화의 기승전결 구조와는 다르게 '원'의 개념이 강해서 억울하게 죽어 귀신이 되면 근처의 무고하거나 운이 없어 걸린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복수하는 내용이 주로 이어진다. 여기서 '원'이란 원통한 마음이라는 뜻인 동시에 무엇을 바라고자 하는 마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서, 풀어서 해소할 수 있는 '한'과는 다르게 풀 수 없이 꽉 뭉쳐진 강력한 원념과 같은 성격을 띤다. 때문에 귀신과 원혼이 사람 앞에 나타나고 해치는 이유는 '아무 이유 없이, 나도 억울하니 너도 당해봐라'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공포영화 <곡성>이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들과 다르게 더 색다르게 공포스러웠던 이유는 한국엔 흔치 않았던 일본의 원 개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원혼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는 스토리라인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귀신에 빙의된 소녀가 외쳤던 '뭣이 중헌디'가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였던 셈이다. 

 

이렇듯 일본의 귀신이 사람을 해치는데에는 대부분 이유가 없고,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귀신을 퇴치할 때 굿을 통해 승천시키지 않고 어느 곳에 '봉인'시키는 방법을 주로 취한다. 

 

 

 

가부장제 속 '처녀귀신'의 의미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이 악독한 계모에 대한 모티프는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여기에 덧붙여 <장화홍련전> 속에서 장화와 홍련을 결정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당시의 엄격한 유교적 가부장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장화와 홍련의 친아버지는 두 딸을 진정 사랑한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계모의 모함에 넘어가 두 딸들이 직접 죽도록 명령하고 방조하였다. 사대부가의 여식으로서 창피하고 수치스럽다는 명분은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현대의 시각에서 지나칠 정도로 충, 효, 열을 강조하는 당시의 시대정신은 때로 그자체로 기괴해보이기도 한다. 여자의 정절을 강조하고, 지조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끊는 행위를 아름답다 칭송하고 열녀라 찬양하며 기록에까지 남겨 기리는 행위는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질서를 잡는데 유교가 큰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 유교가 점차 삐뚤어진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은 안타깝다. 

 

과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 아래에서 죽음을 강요받고 또 죽임을 당했을까. 실화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는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긴 했으나 과연 그 억울함이 밝혀지지 못했던 수많은 장화와 홍련들의 삶은 어땠을까.

 

조선 세종대에 편찬되었던 <삼강행실도>에는 자신의 허벅다리살을 베어 굶주린 부모에게 바쳤다는 효자에 대한 이야기와 지조와 절개를 위해 스스럼없이 목숨을 내던졌다는 수많은 열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한편에서는 '열녀문'을 나라에서 하사받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과부를 죽이고 자결로 꾸몄던 한 고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장화홍련전>속에도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장화와 홍련을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계모는 천벌을 받았지만, 끝내 방조자이자 어떤 면에선 가해자이까지 했던 아버지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외려 귀신이 된 장화와 홍련조차 '아버지는 계모의 꾀임에 넘어가서 그랬을 뿐'이라며 아버지를 용서하고 두둔하는 태도를 보인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모순이 이야기의 설정과 전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그 당시의 시대상과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체계, 관습과 모순까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원혼'이라는 장치를 활용하여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까지 무한히 재해석되고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플롯적으로도 잘 짜여있고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기임은 자명하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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