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애서가를 위한 다양성 도서들의 향연 -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더 넓은 세계

글 입력 2023.03.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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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더 넓은 세계>의 원제는 Bibliophile Diverse Spines로, 직역하자면 애서가의 다양한 책등이라 할 수 있겠다. 제목답게 책 표지에는 여러 권의 책등이 그려져 있다. 수많은 정보가 담긴 종이들을 한데 모아 엮음으로써 만들어지는 책등(spine)은 그 자체로 책의 물성을 담은 특징이 된다. 그리고 이 책등에는 책의 기본적인 정보가 함축되어 있다.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 출판사가 어디인지, 그리고 시리즈에 속한 책이라면 그 시리즈가 무엇인지 등등. 우리는 그 정보들을 책을 꺼내 보기도 전에,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등만으로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책등’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단순히 다양한 책이 책장에 꽂혀 있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함이란 인종 및 문화의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뼈대가 되는 ‘다양성 책등 (diverse spines)’이란 사실 저자 중 한 명인 자미스 하퍼가 만든 해시태그(#diversespines)로, 흑인과 유색인종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고 알리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따라서 앞선 질문은 도서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더 넓은 세계>에서 다루고자 하는 책들의 성격과 맞닿는다. 그렇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흑인, 유색인 작가들과 원주민 작가들이 쓴 것들이다.

 

또 이 해시태그는 이 책이 태어날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책의 공저자는 두 명이다. 자미스 하퍼와 제인 마운트. 자미스 하퍼는 흑인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의 문학에 초점을 맞춘 다양성 커뮤니티를 만들고, 책과 와인을 페어링해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겸 작가인 제인 마운트는 ‘책 초상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런 제인 마운트가 애서가들의 책장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책이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이다. 자미스 하퍼의 아들이 자미스의 생일을 맞아 ‘다양성 책등’ 그림이 들어간 선물을 제인 마운트에게 의뢰했고, 그 일로 자미스와 제인이 서로를 알게 되었다. 즉, 다양성을 주제로 한 이 속편 도서는 제인 마운트의 일러스트레이터 경력 및 집필 이력과 자미스 하퍼의 ‘다양성 책등’ 해시태그, 다양성 커뮤니티 활동이 맞물려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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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물성을 드러내는 책등(spine)

 

 

두 저자의 집필 의도는 명확하다. 바로 ‘새롭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당신과 배경이 다른(혹은 당신이 읽어본 적 없는) 저자가 쓴 다양성 도서를 당신이 적어도 열 권 발견하여’ 읽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양성을 담은 이야기를 읽으면 ‘공감 능력이 늘고 삶을 다른 렌즈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다양성 도서들의 모음집은 수백 권의 책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책등을 그려 넣어 한정된 페이지 안에 더 많은 책을 소개함은 물론이고 간단한 메모를 통해 책의 내용을 요약해 알린다. 고전, 세기 전환기 소설, 현대소설, 가족 대하소설, 역사소설, 시, 에세이 등 장르와 시대구분에 따라 수많은 다양성 도서를 소개하여 소중한 책 정보가 새어나갈지도 모르는 그물망의 코를 더 촘촘히 했다. 그리고 이렇게 장르, 시대 키워드별로 책을 정리하여 독자가 평소 관심 있던 키워드로 책을 찾아보게 돕는다. 예를 들면 역사소설을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역사소설 키워드 페이지 안에서 수많은 책들을 소개받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들은 작가가 사랑한 책, 북 인스타그래머 혹은 활동가가 추천하는 책, 이미 시간과 인기에 의해 증명된 ‘우리가 사랑한 책들’ 등의 코너를 만들어 더 많은 다양성 도서들을 소개하고자 힘썼다. 어떤 코너는 반복되기도 하고 한 번만 등장하기도 한다. ‘책으로 세계일주’ 코너에서는 귀여운 세계지도와 함께 국가별 화제의 도서를 한 권씩 만나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82년생 김지영>이 소개되었다. 이처럼 한국 작가의 책이나 한국계 작가의 책, 더 넓게는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책을 찾아 밑줄을 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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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자들은 인종과 문화 면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긍정적인 영향력을 널리 펼치려는 활동가나 서점 등의 이름,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등을 다양성 도서들과 함께 알리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랑받는 서점들’ 코너에서는 유명한 서점도 소개하지만 흑인, 유색인이나 원주민 작가들의 출판물을 전담하여 판매하는 서점들을 소개한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서점은  원주민 만화를 내는 독립 출판사이자 전 세계 유일의 원주민 만화책 서점 ‘레드 플래닛 코믹스’와 긍정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미지와 역사를 선보이는 유일한 어린이 서점인 ‘아이시미 아프리칸 아메리칸 칠드런스 북스토어’였다. 인종적, 문화적으로 마이너리티에 위치하는 작가들의 창작을 독려하고, 그들의 창작물이 독자에게 닿을 창구를 마련하며, 그 지역 공동체 내에서 다양성을 증진하고자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여는 서점은 너무나 중요하다. 아직도 ‘주류’ 위주의 목소리와 모습이 더 많이 담긴 콘텐츠 세계에서 자신의 모습과 경험을 공유하여 이입할 수 있는 기회나 경험이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시미 북스토어의 사장이자 설립자 블레어 부부가 한 다음의 말은 매우 공감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자존감을 세우려면 모범이 될 흑인과 역사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성과를 이루고 세상에 도움이 된 사실을 알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무한한 잠재성을 믿기 시작한다.” (p. 83)                 
 


주류 백인들이 비주류 유색인종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 면에서도 다양성 도서들은 그 역할이 크다. 흑인과 유색인종이 주인공인 어린이책으로 가득 채운 ‘작은 무료 다양성 도서관’을 만든 세라 카미야 역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흑인 아이들이 마땅히 자신이 등장하는 책을 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백인 아이들도 흑인 캐릭터를 보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다른 문화와 배경을 경험하리라는 생각에 신난다.” (p. 32)

 


이외에 작가의 방과 에디션 코너가 있다. 흑인 혹은 유색인 ‘작가의 방’에서는 작가의 작업공간에 대한 일러스트와 작가가 직접 그 공간에 대해 풀어놓은 설명이 있다. 좋아하거나 궁금했던 작가의 작업 습관, 그의 작업실에 무슨 가구가 있고 분위기가 어떤지 등을 알아갈 수 있는 일종의 쉬어가는 코너였다. 에디션 코너에서는 유명 고전의 연도별, 나라별 에디션 디자인들을 정성스러운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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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비슷한 겉모습, 유사한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표현하고 함께 엮여 있는 이슈를 말하는 목소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이 매체에 나타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콘텐츠 강국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의 경우 '미디어에 나타나는 나와 같은 피부색'에 목마름을 느끼며 자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백인이 많이, 그리고 흑인이 가끔 나오는 한 외화를 보다가 스크린에 비친 나와 같은 피부색이 주는 반가움을 느낀 적이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아시아계 배우는 거의 나오지 않다가 한국계 혼혈인 배우 한 명이 나왔을 때 나는 처음 만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것은 생경하면서도 신기한 인지적 경험이었다. 이는 만약 내가 미국 같은 다인종 사회에 사는데 내가 보는 콘텐츠에 나와 비슷한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기분이 들까를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쉽거나 닮고 싶은 롤모델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다.

 

그런 면에서 매체에 비친 ‘나와 비슷한 존재’는 고립감을 사회에 뿌리내리는 감각으로 변모시키고, 닮고 싶고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제시하며, 나와 비슷한 주인공을 따라 인생의 모험을 즐기게 도움을 줄 것이다. 어린 나이의 감상자 혹은 사회적 고립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이 문제는 크게 다가올 것이다. 결국 사람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정체성의 경험담이 중요하고, 이는 인간이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하나의 이유일 테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 다양하게, 많이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가 많을수록, 타자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당연하고 흔한 일이 될수록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해 함양은 물론 타자에 대한 공감까지 키울 수 있다.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공포와 멸시, 혐오, 나아가 폭력으로까지 변하는 일을 우리는 너무 많이도 보았다. 일본에서 여러 세대를 걸쳐 살아온 어느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 대하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은) 인간이 서로를 인간으로서 바라보도록 진정으로 설득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작가의 일이란 이야기를 잘 써서 독자를 예전보다 공감을 더 잘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다른 집단의 인간성을 더는 말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p. 31)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더 넓은 세계>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 공감 능력 발달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아름다운 그림들로 이 훌륭한 다양성 도서들을 수백 권 만날 수 있는 심미적 효과 역시 뛰어나다. 내가 쓰는 글도 누군가에게 숨이 트일 수 있는 공감의 글이 되기를 다시 한번 바라게 되었다.

 

++

사족) 자미스 하퍼와 제인 마운트의 열정 어린 작업 덕분에 나 또한 이 책에서 여러 권의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사실 표시해 둔 책은 이미 10권이 훌쩍 넘어가지만 올해에 읽고 싶은 일부만을 추려 적어보겠다.

 

- 레슬리 마몬 실코, <의식>

-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 오드리 로드, <자미-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자전신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궁금하다. 

- 나이마 코스터, <할시 스트리트>

-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사실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 

- 루비 하매드, <하얀 눈물, 갈색 흉터>

- 게일 존스, <콜레지도라>

- 야 지야시, <홈고잉>: 최근에 다른 책에서 이 작가를 알게 되어 궁금해하던 차에 이 책에서도 눈에 들어왔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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