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게으른 완벽주의자 [사람]

글 입력 2023.03.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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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았던 예능 프로에 출연한 심리학 교수는 기필코 마감일까지 미루고야 마는 게으른 습성을 일컬어 완벽주의자로 포장한다. 예를 들어 30일의 기한이 주어진다면 29일은 흘려보낸 채 남은 1일에 쏟아붓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흘려보낸 29일 동안에도 끊임없이 고민했음을 토로한다. 게으름과 대조되는 성향을 계획형이라고 둔다면 차근차근 쌓아 올려 결실을 맺는 이들의 눈에는 그저 대책 없는 행동으로 느껴질 테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감을 받아들였을 때가 언제일까. 과목 별로 다양했던 여름 방학 숙제들. 주로 방학 전에는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획표조차 지켜진 적이 없지만 왜 하루를 조각 케이크처럼 나누어 통제하려 한 것인지 궁금하다.


요즘엔 엠비티아이로 모든 게 정의된다. 16가지의 성격 유형 중에서도 계획적인지 즉흥적인지에 따라 J(판단형)와 P(인식형)로 나뉘는데, 주로 조직화된 삶에 익숙하며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계획적인 사람들이 J 유형이다. 나의 유형은 정반대인 즉흥과 유연성에 가깝다. 그렇다면 덜 계획적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게으른 주제에 완벽함까지 꿈꾸는 걸까.


완벽은 게으름 뒤에 상응하는 단어는 아니다. 완벽을 생각한다면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이 따라왔다. 게으른 노력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완벽주의 안에는 빈틈없는 준비성이 함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행동과 완벽주의를 연결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판단하기엔 모순이 많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린다 서페이딘이 여섯 가지로 설명한 게으름의 유형을 살펴보면 나는 무려 세 가지에 속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했던 '완벽주의'였다. 나에게 주어진 재량과 해내고 싶은 일에 대한 괴리감으로부터 발현했다. 이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잘하고 싶은 욕심은 생기길 마련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 너무 큰 나머지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보다 더 해내고 싶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테다. 이건 안 돼. 아직 만족스럽지 않아. 하지만 데드라인 앞에서는 끝내 만족해야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몽상가(dreamer)'라 불리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이다. 내게는 오히려 완벽주의 보다 더 알맞은 표현 같기도 하다. 마감일이 코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결국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아닐까. 나는 확실히 낙관적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이는 주변 사람이 느끼기에 나의 긍정적인 모습보다 무책임한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세 번째 'crisis-maker(마감 스릴을 즐기는 사람)'. 주로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을 이렇게 일컫는데, 쌓아온 노력 보다 초인적인 힘으로 골인지점을 통과함으로써 얻는 만족이 크리라 생각한다. 


이밖에 걱정이 많은 사람과 과잉 업무 등을 이야기했지만 내게는 속하지 않는 유형이다. 다만 게으른 창작자에게는 위에 설명한 유형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해당사항이 있으리라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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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에디터로서 얘기해 보자면 마감은 통과가 아닌 줄곧 내 뒤를 따라다니는 결승선 같다. 언젠가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다른 에디터들과 글쓰기에 대하여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대부분이 나보다 먼저 활동을 시작한 선배님이신데 시간이 흘러도 마감에 쫓기는 것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함께 얘기 나눈 에디터 중에는 나와 같은 게으른 완벽주의자도 존재했다. 도통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나누었던 대화 중에서 가장 강한 동질감을 느낀 대목이었다. 마치 마감일에 떠밀린 것처럼 얘기했지만 생각에 떠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데드라인의 데드(dead)를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특히 창작활동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창작의 중요 요건을 성실 보다 영감으로 두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정답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작가의 영감과 재량만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믿었다. 이과생이었던 나의 경험담을 빗댄다면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명쾌한 정답 탓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정답이 없기 때문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마감일 하루를 위해 버린다고 말하는 시간 동안에도 완벽주의자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로서 변명을 붙여보고 싶다. 실은 게으름 피운 적이 없었다고. 게으르다는 건 어쩌면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시선이라는 감상이다. 내게는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며칠 동안 얻는 경험들이 중요했다. 게다가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모두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글이 곧 완벽한 글은 아니었다. 언젠가 좋은 글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눈 대화로부터 글쓴이의 가치관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멋있고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게으름 뒤에 따라오는 수식어는 어찌 됐든 간에 변명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완벽함을 추구하느라 게으른 거야, 라며 남을 설득할지언정 실은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언제나 내 발목을 붙잡는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건만, 노력보다는 선천적인 능력을 믿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게을러지는 행동양상은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결과물이 10이라면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20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게 높은 자존감과 연결 됐다고 믿었다.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이로부터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마감은 그저 데드라인에 불과할 뿐 그 기한이 늘어난다 해도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만, 우리는 약속 아래 글을 쓰고 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장기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장기전에 중요한 것은 탄탄한 체력과 전략이다. 내게는 낙관주의를 뒷받침할만한 전략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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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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