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랑의 다른 이름은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도서]

글 입력 2023.03.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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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남은사랑_표1.jpg

 

 

수많은 책들이 놓인 서점, 혹은 도시의 어느 지점. 한 권의 책을 골라 펼치기로 마음먹기. 수없이 펼쳐진, 모조리 읽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무한한 이야기의 타래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하는 일. 그것에 온 정신을 빼앗기기로 결정하는 건. 실은 내가 결정하기보다 원래 이 즈음 이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있던, 운명의 한순간처럼 느껴지게 하는 건. 어디에서 시작되고 결정되는 걸까.


책과의 운명적 순간은, 책이 아닌 그 무엇과의 만남과 유사하다. 처음 맞닥뜨린 순간의 인상, 둥글고 각진 모양새와 촉감, 빛깔과 냄새. 그러니 나는 신간 코너에서 만난 이 책의 이름과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한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이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남아 있는 사랑은 얼마나 큰, 얼마나 깊은 마음을 말하는 걸까. 희망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연노란색 바탕에 선명한 분홍빛이 마음의 높낮이를 궁금하게 했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출판사 자이언트북스가 선보이는 앤솔러지 시리즈의 ‘자이언트 픽’의 첫 번째 책이다. 특정 장르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넘나들며 소설의 기쁨을 선사하는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어떤 사랑과 세계를 담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브로콜리 펀치”로 독창적인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 이유리 작가. 작가의 표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먼 미래, 혹은 가까운 어느 날 한 사람이 지닌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떼어주는 기술이 만들어진다. 주인공 ‘수진’은 이별 후 마음 아픈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자신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랑’이란 감정을 부부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 ‘영인’에게 이식해 주고자 한다.

 

 

바깥에서 어떤 고통과 수모를 겪든 나는 견딜 수 있다, 성재가 기다리는 이 집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

 

그 사실을 되새기자 기쁘고 행복해서 마음 깊은 곳이 파들파들 떨렸다. 감히 내가 이런 걸 누려도 될까. 어느 날 누군가 나타나 착오였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갈 행운이 잘못 도달한 모양이라고 마라며 이것을 빼앗아간대도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p26

 

 

너무 완전해서 깨질 것 같은 행복과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 수진과 영인,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관계, 그 안의 감정, 그리고 그것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각자의 속도에 맞춰 소화하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이유리 작가의 글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상상, 아주 공상적인 소재를 친숙한 것으로, 삶의 가까이로 불러온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물의 상황, 감정적인 표현,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상상과 현실이 섞여 들어간다.

 

 


폴터가이스트


 

오후의 햇볕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잠시 책을 펼친 그날,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김서해 작가의 “폴터가이스트”. 단편을 읽고 대체 누가 쓴 글이지 서둘러 작가 소개 글을 찾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서해 작가는 올해 이 작품으로 작품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그 놀라운 이야기를 함께 읽고 싶어졌다.


주인공 김세인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 같기도, 비명 같기도 한 소리를 듣는 김세인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들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잊을 수 없는 과거를 지닌 김세인, 이상한 소리를 듣는 김세인은 혼자로 사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 수영부 정현수가 나타나고, 가까워지는 둘. 김세인은 가만히 곁을 지켜주는 정현수에게 점점 마음을 여는데, 계속 알 수 없는 사건이 생긴다.

 

 

정현수는 다정하고 덤덤했다. 무당들의 신점이나 의사들의 상담과 전혀 달랐지만, 입이 쉽게 벌어지지 않았다. 나를 향한 질문은 언제나 부담스러웠다. 내 얘기는 뭐든지 폭로 같았다.

 

- p. 76

 

 

“되게 남의 일 얘기하듯이 말하네.”

 

“지어낸 거 아니야.”

 

“알아.”

 

정현수는 작게 웃으며 단호하고 명료하게 답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했더니 정현수는 내 얼굴을 응시했다. 

 

“너 항상 이상한 짓을 몰래 하더라고. 아무도 모르게.”

 

“뭐라고?”

 

“보통 관심받고 싶으면 남들이 알아채게 하잖아.”

 

정현수는 내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나는 항상 혼자 다니고, 구석에서 가끔 두리번거리다가 안 그런 척하면서 더 몸을 사리고, 방금 자신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목격했을까봐 불안한 것처럼 굴어서 언젠가는 물어보고 싶었다고, 정현수는 이야기했다.


때때로 학교에서, 수업중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단에서, 더는 사용하지 않는 음악실 앞에서 정현수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자꾸 눈이 마주치려면 적어도 둘 중 한 명이 다른 하나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 p. 79

 

 

이 이야기가 왜 좋았을까?

 

가끔 무언가가, 어떤 이야기가 좋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유독 마음이 동하는지를 깨닫는다.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조용히 덤덤히 기다려주는 다른 사람, 나는 그 관계를 좋아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 사랑의 다른 말인 것 같아서 어김없이 좋아하고 마는 것이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들리게요”엔 각기 다른 모습, 형태의 사랑과 마음이 담겨있다. 다섯 가지 이야기 속에, 나의 마음에 어떤 인물과 표현이 들어오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재미를 함께 누리길 추천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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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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