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음을 걷어내자 보이는 것들 - 서사무엘, "UNITY"

글 입력 2023.02.1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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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학교, 직장 그 어느 곳이 되었든 사회구성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월요일 오전 7시에 눈을 떴을 때 그렇게도 이불 밖을 나서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가장 큰 이유는 다르겠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껴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와 ‘너’ 사이에 사회적 지위, 시선, 개인이 처한 환경, 혹은 두 사람의 공통된 지인 등 너무 많은 ‘외부 세계’가 관계에 포함된다. 그 모든 것들을 신경 쓰느라 정작 둘 사이의 관계는 뒷전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를 압박하는 외부 세계의 수많은 정보들에 지쳐 버린 나머지 관계는 삭막해진다. 싱어송라이터 서사무엘은 2018년 발매된 자신의 앨범 “UNITY”에서 외부 세계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사람들과의 화합에 대한 소망을 완성도 높은 아날로그 사운드로 녹여냈다. 총 여덟 트랙으로 구성된 이 앨범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곡의 리메이크 버전인 ‘창문(Acoustic)’과 ‘Float(Studio Live)’를 제외한 여섯 곡을 들여다보며 그가 이토록 복잡한 세상에서 관계를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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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과 더 복잡한 머릿속


 

Sometimes I wish I didn’t understand what the others saying

가끔씩 간판을 볼 때 이해 못 했으면 해

누군가에게 말 걸 때 세상 깨끗한 눈으로

먼 산을 보고 싶어

세상에 언어가 없다면 마치 우주 같을 거야

아마 훨씬 행복할지도

그래그래 그래서

I got jazz in my ride all the time

- Jazz In My, “UNITY”

새벽 시간에 왜 켜진 불이 많아

저 사람들은 잠도 없는지 마냥

멀리멀리 더 멀리 가는 꿈

꾸러 잠들고 싶은데 왜

내 머리는 덩달아 복잡해 지니 왜 또

왜 내 머리는 날 또 일으켜 세우니

- Keep It Simple, “UNITY”

 

한 건축가가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Q&A를 진행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질문 중에 ‘왜 우리나라 간판은 정신없고 예쁘지가 않은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디자인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우리가 그 간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건축가의 대답이었다. 나 역시 질문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많다. 특히 바닷가 관광지에 가면 해변을 따라 쭉 늘어서 있는 횟집과 프랜차이즈 카페 간판들을 보면 ‘왜 이리 촌스럽고 똑같은 풍경만 보일까’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풍경이라도 몇 년 전에 여행했던 대만의 바닷가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수이라는 지역이었는데, 우리나라의 바닷가만큼 건물이 빼곡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가게들의 겉모습이 뭔가 평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마저 풍겼다.아마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서사무엘은 ‘Jazz In My’에서 여기에 한 발 더 나간다. ‘간판을 볼 때 이해 못 했으면’ 하면서 차라리 언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한다. 우주에는 공기라는 매질이 없다. 그래서 태양이 폭발할 때도, 운석끼리 충돌할 때도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의 상상처럼 이 세상 속에서 언어가 사라진다면 마치 우주처럼 조용해질 것이다. 지금의 현실처럼 시끄러운 세상보다는 차라리 우주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상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그는 운전할 때마다 가사가 없는 재즈 음악을 틀어놓는다.

 

그런데 시끄러운 세상은 간판들이 즐비한 도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보다 시끄러운 곳이 있으니 바로 그의 머릿속이었다. 잠에 들어야 하는 새벽 시간이지만 서울은 마치 벌써 아침이 온 것처럼 밝은 곳이 많다. 잠도 없이 일하거나 취한 채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잡다한 상념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는 단지 ‘멀리 가는 꿈’을 꾸고 싶을 뿐이지만 시끄러운 세상은 그의 머릿속마저 어지럽히며 잠에 들지 못하도록 그를 방해한다. ‘Jazz In My’와 ‘Keep It Simple’에서 서사무엘은 시끄러운 세상과 더 시끄러운 자신의 생각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이는 마치 흘러넘치는 정보와 자극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흔한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

 

 

 

조용한 세상에서 느끼는 감사함, 외로움, 자유로움


 

I thank you for letting me fall in love with the things that I never appreciated

가끔 널 떠올릴 때 너무 감사해

-Pretty, “UNITY”

I love the time 나의 집에 나의 차에

돌아오면 찾아오는 적막함이 싫어

-Happy Avocado, “UNITY”

In the cloud, in the cloud 높이 in the cloud in the cloud

터지지 않을 전화 읽지 못할 문자 눈 감을 수 있어 잠시 혼자의 시간

-Boeing, “UNITY”

 

이어지는 세 곡에서 그는 세상과 단절했을 때 겪었던 세 가지 경험에 대해서 말한다. ‘Pretty’에서 그는 감사함에 대해 노래한다. 그런데 이 감사함은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다. 그는 지금은 끝이 난 누군가 와의 관계를 통해 ‘잔잔한 바람이 볼을 스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상대방이 좋아하던 것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조용한 세상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평소에 생각하지 못한 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보통 ‘멍을 때릴 때’ 이런 순간들이 많이 찾아온다. 나 같은 경우 누구의 방해도 없이 버스에 앉아 생각할 때 ‘와, 내가 이런 생각도 하네’와 같은 건조한 감탄을 한 적이 꽤 많다.

 

‘Pretty’가 적막함 속에 피어난 감탄에 대한 노래라면 ‘Happy Avocado’는 흥분 뒤에 찾아오는 고독함에 대한 곡이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 싫증을 느낀 서사무엘이지만 그가 사랑하는 음악을 할 때, 특히 무대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공연 뒤에 찾아오는 적막함은 평소의 적막함보다 더 고요하고 쓸쓸하다.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그의 ‘집’과 ‘차’에서 마주하는 조용함은 그를 외롭게 만든다. 그의 에너지는 공연장에서 최대치를 경신한 뒤 귀갓길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집에 도착하면 최저점을 찍는다. 그는 다음 공연이 있을 때까지의 그 외로운 공백을 ‘디아블로(게임)를 하고, 강가를 달리고, 차를 마시면서’ 달랜다. 공연 전에 ‘아보카도가 괜찮은 샐러드 집’에 갈 때 느끼는 약간의 기대감은 다시 찾아온 공연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하다. 어쩌면 ‘Happy Avocado’ 역시 그가 적막함 뒤에 느낀 감사함을 녹여낸 곡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막함과 약간의 기대감, 그리고 소란스러움이 반복되는 일상에 여전히 지쳐 있는 그는 ‘Boeing’에서 계획 없이 집을 떠난다. 그러나 이 비행은 ‘탈출’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이란 잠시 목적지에 갔다가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반복되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재충전을 한 뒤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만, 반복되는 풍경에서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마치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듯, 지상과 단절된 그는 비행기 안에서 ‘숨 막히는 독촉 없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로지 '나'와 '너'에 집중하며


 

서로 행복했던 기억도 나누면서 고즈넉히 앉아 

Get to know each other

… 시간은 빨라 지금 이 순간 가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때이니까 

항상 그냥 스쳐 가듯 보내기는 싫어 허투루 말야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하고 좋은 기억을 담아 간직하고 싶어

-Unity, “UNITY”

 

‘Boeing’의 여행에서 돌아온 서사무엘은 마지막 곡 ‘Unity’에서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한다. 곡의 전반부에서 그는 ‘너’와 ‘나’를 ‘아마 서로를 다시 보지도 못할 그냥 그런 사이’라고 정의한다. 사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잠깐씩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서로 아는 것도 없고 잠깐 마주쳤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이. 그런데 곡의 후반부에서 서사무엘은 이런 생각을 뒤집는다. ‘너’와 ‘나’가 그냥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이라면, 그 찰나의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서로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둘이 모여 앉아 ‘행복한 기억도 나누면서’ 순간이지만 좋은 기억으로 담아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Jazz In My’와 ‘Keep It Simple’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현실의 문제들로부터 분리되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다시 돌아온 그는 이전에는 미처 정신이 없어 깊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너’와의 관계를 쌓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린 앞으로도 시끄러운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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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너무 많은 자극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쉼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과 그 안의 ‘좋아요’와 ‘공감’, 내 처지를 깨닫게 하는 차가운 뉴스를 비롯해 원치 않지만 계속 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 모두가 ‘현실’이라는 건조한 이름 뒤에 숨어서 우리를 괴롭힌다. 이런 외부 세계의 자극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진실한 관계에 소홀하게 만든다.

 

서사무엘이 ‘Jazz In My’에서 바랐던 것처럼 이 세상을 우주처럼 조용하게 만들 수는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죽기 직전까지 정신없고 시끄러운 현실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언어를 없애 버릴 수는 없어도 중요하지 않은 언어를 걸러낼 수는 있다. 서사무엘은 언어를 필터링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여행’을 택했다. 만약 시간적인 여유가 없더라도 괜찮다. 그 역시 비행기에 앉아 세상과 잠시 단절된 경험만으로도 많은 것을 비워낼 수 있었다. 우리가 방치했던 쓸모없는 각종 알림 들만 막아 두더라도 현실은 퍽 조용해질 것이다. 현실이 한 덩이의 고기라면 우리를 압박하는 외부 세계의 자극들은 비계라고 할 수 있다. 고기에서 비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계를 걷어내고 또 걷어내다 보면 담백한 살코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바깥세상의 기름을 걷어 내고 ‘나’와 ‘너’ 사이의 담백한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떨까.

 

 

[김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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