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도서/문학]

고리타분하지만 동시에 역동적인 감정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2.1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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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사랑.png

 

 

 

뻔한, 지겨운, 낡아빠진, 그래서 복잡한 감정


 

사랑이란 감정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어딜 가나 사랑을 다루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랑 노래, 로맨스 영화, 드라마에 나오지 않으면 섭섭한 러브라인, 친구들에게 듣는 연애 고민 같은 것. 그놈의 사랑 이야기, 지겹지도 않은가. 왜 사랑을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할까. 언젠가부터 종종 이 지구라는 행성 안에 인류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이런 낡아빠진 마음에 대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사전에서는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 보통 그런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좋아하는 감정, 딱히 대단하고 숭고한 감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쯤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에게 관심을 주고 그 사람의 이목을 끌고 싶어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사고를 하고 난 직후 든 생각 - ‘사랑을 좋아한다는 감정이라고만 정의해도 되는 걸까? 과연 그게 끝일까? 그렇게 깔끔하게 명명할 수 있는 정서라면 사랑이란 소재가 안정적이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소로 자리 잡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해본다.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이 구시대적 사랑



김단한 작가의 구시대적 사랑은 사랑에 괴어있는 다양한 마음들을 178개의 이야기로 엮어놓은 단문형 에세이이다. 한여름에 지나간 사랑의 기록을 담은 첫 독립출판물 나는 부지런히 너를 앓고와 연못을 산책하며 만난 사람들에 관해 쓴 연못 산책사람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일부 합치고,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적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발을 담가내는 순간부터 우리는 굳이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아예 낮은 심해로 수고로이 가라앉지 않아도 귀가 멍해지고 발이 붕 뜨는 기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껴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내가 원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어 사랑은 참 아이러니하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움켜잡는 사랑에 대항하기 위하여 나는 여러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왔으나, 결론은 처참한 패배뿐이었음을 알린다.

 

- p.5 / 프롤로그

 

 

완독 후 떠올랐던 두 가지 생각

: ‘사랑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열렬하게 고백할 수 있구나.

: 우리 모두 구시대적 사랑을 했고, 할 것이고 또 기대하지 않을까.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이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장르인지, 그 영화 속에서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지, 어떤 단어를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와 가사를 좋아하는지, 가장 슬펐던 순간과 행복했던 순간은 또 언제였는지, 혼자 있으면 무엇을 하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 p.63

 

 

가슴이 간질거렸다. 심장이 쿵- - 울리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도저히 간지러움을 견딜 수 없어 10페이지를 읽고 덮은 적도 많았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열기를 띠며 응집된 사랑의 표현을 곱씹고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이 얇은 책을 완독하는 데에만 3달이 걸렸던 것 같다.

 

작가 본인의 사랑을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꼭 내가 작가의 사랑을 대신해 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사람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만의 습관, 말투, 취향을 기억하려 하고, 카톡 메시지의 ‘1’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채팅방을 수십 번씩 들락날락했던 나의 모든 사랑의 흔적들이 수면에서 떠올랐다. 원래 안 하던 짓을 하고, 굳이 구차해지고, 그의 모든 반응에 민감해지는 순간들.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변해도 사랑하는 방식은 전과 다르지 않고, 앞으로도 그러겠지. 고루하고 오래된 마음들.

 

 

같이 불렀던 노래를 혼자 부르거나, 나란히 걷던 골목길을 혼자 걸을 때면 저절로 당신이 생각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혼자 그 노래를 부르고, 혼자 그 골목을 걸었던 날이 분명히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은 자꾸만 당신을 부른다. 마치 당신과 함께하지 않았을 적엔 나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다시 쓰이는 느낌.

 

- p.58

 

 

 

우습고 유치하지만 그런데도 계속되겠지


 

그동안 사랑을 느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할 때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지금의 느낌들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했다. 잘되지 않았다. 분명 그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은 분명한데, 이상하게 좋아했다는 것만으로는 이 감정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그 사람을 생각한다고 할 일을 제대로 못 하고, 계획이 틀어지고, 하루 종일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질투하고 괜히 미워하고 가까워지고 싶었다가 또 어느 날에는 거리를 두게 되는 이 정서를 사전적 정의로 다 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지겹다. 사람이 우스워 보이게 하고 유치하게 만들지 않은 적이 없다.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논한다.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감정. 그렇지만 신기하다. 낡아빠진 감정 주제에 사람을 흔들어 놓고 다시금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게 만든다. 어쩌면 사랑의 힘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걸까. 고리타분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고 격한 마음이 들게끔 하는 모순적인 것. 이 얼마나 지겹고도 매력적이며 중독적인 감정인가.

 

작가가 사랑을 외치는 순간들 모두가 나 자신이었다. 나도 구시대적 사랑을 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리고 앞으로도 구시대적 사랑을 할 것이고, 그런 사랑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겠지. 그것이 사랑이 가진 힘이니까. 지겹다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리고 아마 사랑을 해 본 적 있다면 이 책에 공감하고, 나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경험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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