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번쯤 미치도록 화날 때가 있잖아" [영화]

애틋한 사랑과 열망하는 꿈, 그리고 현실
글 입력 2023.02.1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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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학교 수업 중 분석 과제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감상하니 과제의 대상으로서 영화가 아닌, 인상깊은 영화로서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이야기 자체는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는 흔한 주제에서 시작되지만, 각 인물이 가지는 색깔이 정말 독특하고 강렬하며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던지는, 개성이 뚜렷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상과 현실의 대립


 

<37.2 le matin>은 조르그와 베티의 애상적인 사랑 이야기 외에도, 조르그라는 꿈을 찾는 한 청년의 이야기도 갖고 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꿈이자 이상인 작가로 사는 삶과 현실적인 문제로 안정적인 수입을 영위하는 삶이 충돌하는 과정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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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그는 배관공으로서 돈을 벌며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베티와 싸우는 과정에서 그가 지금까지 써온 소설이 드러나게 되고,  조르그가 작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에겐 작가라는 꿈이 있으나 현재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꿈을 마음 속에 가둔 채 배관공 작업 등을 하며 버텨간다. 그는 거처를 옮긴 뒤에도 에디의 피자가게에서 일하거나 피아노가게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베티와 새로 산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가며 베티의 생일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등, 표면적으로는 행복한 삶,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조르그는 작가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으며, 베티의 조력은 조르그에게 꿈을 향한 걸음을 지속할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미친다. 조르그 또한 밤새 틈틈이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꿈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지켜나간다. 결국, 조르그는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오게되고, 계약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소설을 출판하는 작가로서의 꿈을 달성하게 된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어릴 적, 젊은 시절의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살아가는 입장이라면, 조르그의 작가로서 삶의 시작은 그들에게 응원이자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조르그가 현실적 문제에서 벗어날 만큼 작가로서 성공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끝이 난다. 이는 곧 다음의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곧 우리가 영화 속 조르그의 삶을 보며 감동을 받는 것은 출판사와의 계약으로 작가 타이틀을 얻게 된 그 사실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베티라는 인물의 두 가지 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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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르그의 조력자로서 베티

 

베티는 조르그에게 단순한 사랑의 대상을 넘어 조르그의 꿈인 작가로서의 삶을 실현시켜주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조르그는 자신의 꿈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감추는데, 이는 작가로의 도전이 현재 자신의 안정적인 삶과 대조적인 것으로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티는 조르그의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이뤄주기 위해 직접 조르그의 소설을 엮어 출판사에 기고하기도 한다. 이런 물리적인 도움 이외에도 베티는 조르그에게 정신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에디의 피아노 가게를 공사할 때 벽을 망치로 부수는 조르그를 보고 베티는 “글을 쓸때의 너와 같다”고 하며 베티의 생일날 오두막집에서 조르그와 사랑을 나누다가도 책을 내는 꿈을 꿨다고 말한다. 이에 조르그는 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등의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작가에 대한 욕망을 직시하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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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가 조르그에게 어떤 종류의 소설을 쓰는지 물어볼 때도 조르그의 답변은 역사소설 → SF소설 → 탐정소설로 계속 바뀌는 등, 조르그가 그의 작가로서의 꿈에 대한 명확성을 거부하고 숨기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르그에게 책, 작가 등의 단어는 자신의 이상, 욕망인 작가로 연결되며 이는 현실체계 속에서 쉽사리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 마주하거나 욕망하지 못한다. 하지만 베티는 그런 조르그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수면 위로 자꾸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는 조르그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이며 베티와 갈등을 겪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베티는 조르그의 작품의 출판을 위해 노력하며 그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데 막대한 영향을 주면서, 결국 조르그가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어엿한 작가로 성장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베티의 역할은 이야기 속에서 조르그에게 굉장히 중요한 조력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베티는 조력자라는 부차적인 위치 말고도 능동적인 행위자로서의 모습도 보이는데, 바로 그녀의 운명을 스스로 저항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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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명에 저항하는 베티

 

베티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매우 예민하며, 대상과 자신이 충돌할 시 참을 수 없는 격한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 이는 대상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발현되기도 할 정도로 강력하다. 조르그와 함께 방갈로에서 동거하던 베티는 조르그가 집주인에게 굽히는 태도를 보이자 집주인 공격하면서 조르그에게 화를 내며, 방갈로를 칠하던 페인트 통을 집주인의 차에 부어버리거나 집주인을 난간 아래로 밀어뜨리기까지 한다. 연락이 오지 않거나 혹평을 보내는 출판사, 자신을 괴롭히는 집주인과 피자가게 손님 등 베티는 자신에 대한 주변의 압박에 순응하지 않고 화를 내며 저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베티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아기를 가지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달한다. 결국, 베티는 어떠한 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는 운명을 대상으로 공격을 감행하듯, 자기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여 한쪽 눈을 도려낸다. 이러한 베티의 모습은 오이디푸스와 닮아있다고 느꼈다. 인간으로서 신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는 마지막에 자신의 두 눈을 찌름으로써 운명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명하였다. 베티가 한쪽 눈을 도려낸 행위도 이와 연결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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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와 함께 에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피아노가게로 거처를 옮긴 후, 조르그는 아침에 매트릭스를 화내며 찢는 환경미화원 남성과 만난다. 그의 동료에 따르면, 그 남성은 매트릭스를 기계에 넣어 처리하다 손을 잃고 마는 사고를 당해 매트릭스만 보면 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남성은 매트릭스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며 매트릭스를 향한 공격성으로 발작이 표출된다는 점에서, 베티와 공통점을 보인다. 작품 속 서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이 인물이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를 베티에 대한 은유로 본다면, 베티에겐 이러한 발작의 대상이 자신을 억압하는 개체와 구조, 더 나아가 운명에까지 뻗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눈길을 사로잡는 색감과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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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얘기한 인물과 서사적 측면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지만,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은 아름다운 색감과 이미지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초반, 조르그와 베티가 함께 살기로 한 방갈로와 주변 해안가의 풍경의 아름다움은 인상적이다. 낮에는 남녀의 사랑을 나타내는 듯한 강렬한 햇빛으로 살짝 그을린 듯한 색감이 눈에 띄었고, 새벽의 몽환적인 공기를 담은 듯한 보랏빛 하늘도 매력적이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파스텔톤과 강렬한 색감을 조화롭게 사용한 느낌으로, 특히 영화 속에서 분홍과 하늘색이 많은 영역에 자주 등장하며 눈길을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곤 한다.


카메라 구도 또한 다양하게, 적절하게 사용되면서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실내 사물을 이용해 두 인물 간의 공간을 구획한 화면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들도 굉장히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영상미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고 느꼈다.

 

 

 

<37.2 le matin>을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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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7.2 le matin>은 단순한 사랑이야기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베티는 견딜 수 없는 것들,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들에 대한 저항감을 참지 않고 발산한다. 편지에 혹평을 적어 보낸 편집자의 얼굴을 빗으로 긁은 베티는 조르그에게 “왜 참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베티의 불규칙함과 저항성은 사회가 그녀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게 만든다. 집주인도, 피자가게 손님도, 이웃집 보브, 그리고 의사마저도 의학적인 판명으로 그녀를 광인으로 대상화한다. 하지만 조르그만은 달랐다. 조르그는 에디가 베티를 말하며 정신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하자 조르그는 “한 번쯤 미치도록 화날 때가 있잖아”라며 베티를 이해한다. 작가라는 꿈, 이상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적 구조에 마음 한 켠으로 불만을 품고 있던 조르그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타고 났다.”라는 조르그의 말처럼 베티의 자유를 향한 의지는 조르그로 하여금 그가 작가의 꿈을 달성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베티는 조르그에게 있어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조르그의 욕망 그 자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장소의 변화, 방갈로로부터 나와 리자의 호텔을 지나 피아노 가게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공간의 이동은 마치 베티의 소위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속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렇듯 베티의 저항성, 자유의지, 유동성은 영화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조르그의 꿈의 실현을 주도하는 특성이 된다. 조르그의 말처럼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별을 바라보는 베티는 <37.2 lematin>의 핵심인 것이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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