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가 [미술/전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
글 입력 2023.02.1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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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은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로 느껴진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과 함께 전지구적 수준에서 발생한 기후 변화는 어렸을 적 들었던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가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인류세 anthropocene'라는 단어의 부상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인류세는 인류의 영향에 의해 지구의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로, 네덜란드의 화학자 크뤼천이 2000년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한편, AI 산업 역시 지속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가전제품부터 이동수단, 의료영역, 유튜브 알고리즘까지 AI가 활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던 일은 큰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게임 기획자인 제이슨 M. 앨런(39)이 AI로 제작한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1위를 하였다(위키트리,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대회 우승… 미술계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는 AI가 우리의 일상 속 편의를 넘어 본격적으로 예술의 영역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간과 AI(기계)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되었다.


결국 시대가 변화하면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주변과의 관계가 변화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제안 또는 요구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되었던 전시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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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끈 것은 비계발판이었다. 본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비계를 활용한 동선을 따로 구성해 놓은 점이다. 이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면 상승의 위험성을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로, 관람객의 편의에 따라 이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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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리시 비알, 〈클라우드 메신저〉, 2022

합성 실, 팬, 알루미늄 패널, 벨, 모터, 혼합재료, 가변설치


예전에 '자동차'라는 단어의 한자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차'라니. 결국은 사람이 조종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그게 당연하다고 봐온 나에게는 기계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말이 주요 이동수단이거나 손수레와 같이 사람의 근력을 필요로 했던 시대의 시선으로는 '자동'에 대한 개념이 훨씬 포괄적이었을 것이다. <클라우드 메신저> 속 기계들 역시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을 통해 '자동'으로 움직인다. 현재는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떤 시기보다 기계의 동작에서 생명력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낮아진 시대이다. 바야흐로 인간과 비인간의 움직임에 대한 개념의 경계가 얇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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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덧 아().(:) (올리버 그림 / 다한), 〈고스트 유토피아〉, 2022

VR, 3 채널 영상, 3D프린팅 피규어, 조명, 혼합재료, 가변설치, 음악: 짐이 세르트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고스트 유토피아〉는 전쟁과 민중항쟁의 폭력으로 인해 생겨난 희생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 1과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가상세계 2를 구축한 작업이다. 이러한 폭력은 머나먼 얘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역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영상으로 비치는 살아남은 희생자들의 인터뷰는 관람자로 하여금 조금씩 시들어가는 관심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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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강, 〈퍼포밍 슈트 01〉, 2022

모터, 배터리, 3D 프린트 출력물(PLA), 라즈베리 파이 등 혼합재료, 가변설치


<퍼포밍 슈트 01>은 뇌전도 센서와 소위 엑소슈트라고도 불리는 착용형 외골격 기술을 이용해 안무가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실험작업이다. 관객 6명이 장비를 착용하면 뇌파 신호를 엑소 슈트에 보내 움직이게 됨으로써 참여형 퍼포먼스 예술이며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예술적 창작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기계와 기술을 이용해 본래 인간이 가진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을 지칭하는 '트랜스휴먼'이나, '사이버펑크'라고 불리는 사이보그가 보편화된 세계관도 본 실험작업과 관련하여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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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람,〈다공성 물질 전환: C-Flex 인큐베이터〉, 2022

수조와 안락의자 및 혼합재료, 가변공간


 <다공성 물질 전환: C-Flex 인큐베이터>는 물과 당을 영양분으로 공급받아 증식하는 박테리아의 생명활동을 관찰하는 관찰대이다. 외부로부터 물질을 흡수하여 자신의 생명활동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은 비단 박테리아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가 갖는 공통된 속성이다. 곧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의지하며 살아간다. 종종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여 우리의 생활세계와 외부 자연은 분리되어 있으며 때문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이 자신들과 관련 없다고 부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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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 〈인류원〉, 2022

2 채널 비디오, 모니터 및 스탠드, 스테레오 스피커, 가변설치


일종의 '인간 동물원'으로서 존재하는〈인류원〉은 극한으로 발전한 기술을 통해 인류가 완벽한 체계 속에서 무한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인류원으로의 진입을 거부한 인간들은 '야생인간'으로서 죽음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간다. 수많은 작품 속 이야기들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듯〈인류원〉역시 같은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충족되는 상황에서 자유만을 박탈당한 삶을 살 것인지, 결핍이 기반인 삶에서 자유의지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나, 더 나아가 실제로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개념이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이 거창하고 탁상공론처럼 느껴진다면, 논의의 대상을 인류가 아닌 동물원의 동물들이나 일상의 반려동물로 전환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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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슬아, 〈어느 날 레몬 옐로가 사라졌다.〉, 2022

싱글 채널 영상, 웹, 3D 프린트 레진, PVC에 인쇄, 알루미늄, 시트지, 유토, 대저울, 아이폰 XR, 가변설치


〈어느 날 레몬 옐로가 사라졌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져 버린 레몬 고유의 색 '레몬옐로'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된다. 유한한 삶을 가진 생명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모습이 변화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 개인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기는,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고정불변의 무엇이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소위 영혼, 혹은 정신, 주체라고 불리는 것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과학적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이것을 향한 믿음은 우리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둥이 되어준다. 하지만 양날의 검처럼 때로는 다른 존재들과의 마찰을 빚거나, 변화를 거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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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스키/서 (코린스키 카를로 / 서수진 ), 〈조류대발생〉, 2022

미세조류, 유리, 금속, 점토, 라텍스, 실리콘 호스, 공기 펌프 시스템, LED 조명, 4-채널 스피커 4 x 10 x 2.5 (h) m

 

가까운 미래, 환경 파괴로 인류는 소멸 직전에 이르렀으며 인류를 대신하여 지구에서 최정상에 오른 생명체는 미세조류가 된다. 이에 소수의 인류는 지하에 신전을 구축해 미세조류를 숭배하기에 이른다. 이는〈조류대발생〉작업의 배경으로 설정한 시나리오다. 통상적으로 휴머니즘의 뿌리라고 여겨지는 르네상스부터 근대적 과학기술의 발달, 개인주체 이념의 확산은 인간중심적 사고를 견고화해 왔다.〈조류대발생〉의 서사에선 이러한 휴머니즘이 무너지고, 존재의 우선순위에서 인간 앞에 미세조류가 놓이게 된다. 재밌는 점은, 인류는 미세조류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면서 해당 시대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미세조류는 숭배의 대상이 되면서 동시에 실험체로 이용되는 '연구대상'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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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마린 바리쎄뇨, 〈한계의 전환: 상상의 집 시리즈〉, 2022

영상, 혼합재료(강철봉, 나무, 찰흙, 스테인리스 철, 3D 프린트된 플라스틱, 전력배선), 가변설치


<한계의 전환: 상상의 집 시리즈>는 나무, 찰흙, 스테인리스 철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6m 높이의 건축 구조물로, 각각의 요소들 사이는 비어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곧 '상상의 집'은 결정지어진 상태가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곧 각 단편들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낸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구조물 전체는 하나의 몸으로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몸'에 대한 이해로 확장된다. 하얀 받침대 위에 놓인 특이한 구성체들은 일상 속 집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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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아, 『사이보그적 존재들을 통해 본 포스트휴먼의 몸 짓기』, 2022, 연구 아카이브

그래픽 디자인 : 한우주


사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대학교 졸업 논문의 주제로 소설『프랑켄슈타인』과 영화〈매트릭스〉3부작을 포스트휴머니즘 시각을 통해 연결하여 썼기 때문이었다. 전시명 속의 '포스트 휴먼'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져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의 흐름을 담고 있다는 시의성과, 우리의 삶에 결부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물론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르겠지만, '환경을 보호하자'나 '인간을 기계처럼 개조하자'라는 구체적 목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 태도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인간중심적, '나'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나 이외의 모든 타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곧 굳게 세운 경계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공존과 화합의 장으로 이끄는 것이 포스트휴머니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참고하면 좋은 자료들

- 셸리, 메리. 『프랑켄슈타인』. 김일영 옮김. 서울: 신아사, 2015.

- 안진홍. 19세기 영국 고딕소설 연구 ―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 이혜영. 타자성의 윤리학: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헤일스, 캐서린.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허진 역. 서울: 플래닛, 2013

- 영화 〈매트릭스〉3부작을 자유의지, 포스트휴머니즘적 시각에서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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