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헤어짐과 이어짐 - '절연' 정세랑 외 8인 [도서/문학]

서로 헤어지는 시대
글 입력 2023.02.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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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세계에서 시시각각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는 개개인들은, 끝없이 서로 헤어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건강한 갈등이고 어디부터가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시작인지 사람마다 안쪽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 <절연>, 기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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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절연



아시아 작가 9인이 참여한 앤솔로지 소설집의 기획자 정세랑 작가는 '기획의 말'에서 마음이 어두워질 때마다 이웃 나라의 작가들로부터 힘을 얻었던 경험과 우정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다는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밝혔다.

 

일본,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티베트 자치구, 베트남, 대만, 굳이 따지자면 '아시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국가들이지만, 정세랑 작가의 말과는 달리 나는 이들 국가와 실제로 대단한 결속을 실감했던 적은 없었다. 일전에 다녀왔던 베트남 여행에서도 너무나 이국적인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던 데다가 '역시 한국이 제일 살기 좋아'라는 말은 가장 가깝다는 일본 여행에서조차도 빠지지 않았다. 뉴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각료들은 인도 태평양 정책이니 동북아 협력이니 각종 지역 공동체를 명명하고 있지만, 그건 진실한 소속감은 뒷전으로 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내심 자조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웃 작가들과의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이 소설집은 정말 그런 게 가능할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대는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는 시대구나."

 

그 말마따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연결보다 절연에 더 익숙하다.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영원한 평화의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실은 그 이전부터 세계 어떤 지역에서는 단 한 번도 전쟁이 끊인 적 없었을 테고 우리가 그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까지도 드러나 버렸다.

 

또한 우리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동질성을 갖춘 사이에서조차 연결을 확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끊어 내는 실정이다. 정치적 사상과 신념이 오랜 우정 사이에도 화해 불가능한 골을 만들어 내며, 경쟁 사회는 적어도 쟤보다는 나아야 한다며 '나'와 '쟤'를 구분할 것을 명령한다. 게다가 서울 청년 중 약 13만 명이 방에서만 은둔하는 '한국판 히키코모리'를 경험하고 있다는 뉴스는, 우리가 마주한 절연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상기시켜 주었다.


단순히 연결이 끊어졌다는 현상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건 그 계기가 되는 사건들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무라타 사야카는 이 책의 대담 부분에서 "'절연'이라고 하면 그저 연이 끊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에 '절망'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했듯이 말이다.


 

 

<절연>의 아홉 개 국가, 비슷한 듯 다른 우리


 

아무래도 아시아 국가들인 만큼 공유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아시아권 국가에서 강조되는 부자간 또는 부부간의 의무를 다룬 작품을 보며 유사성을 실감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가장 슬프고 또 무섭게 다가왔던 소설은 베트남 작가 응우옌 응옥 뚜의 <도피>로, 끊을 수 없는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부터 죽음을 통해 도피하길 선택하는 여성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이야기다.

 

한편, 포괄적인 지역 범위에 묶여 있는 국가들이지만 각국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나라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이 묻어 나오는 듯하여 매번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듯했는데, 그 여행이 꼭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9개의 소설은 마냥 기쁘고 행복한 일상이 아닌 절연의 계기로서의 절망인 상처를 주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9편의 소설 중 가장 '어렵다'는 인상을 남긴 작품은 태국 작가인 위왓 럿위왓웡사의 <불사르다>였다. 이 소설은 총 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새로운 장으로 나아갈 때마다 등장인물 3인으로 각각 시점이 전환된다. '불태우다/불사르다'라는 단어를 모티프로 한 이 소설에는 태국 민주화 운동 한복판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세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다. 태국은 200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도 민주화 운동이 진행 중인데, 처음에 느낀 어렵다는 인상의 출처는 내가 태국의 그러한 정치 상황에 대해 무지했다는 데서 왔다.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로 각국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듯 보이는데, 홍콩의 우산 혁명, 대만과 중국의 관계, 권위주의 정부의 문제 등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세랑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절연>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출간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작가들이 자국에서 출간하기 쉽지 않은 작품을 쓸 수 있었는데 이 점이 큰 수확이라고 답한 적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관련 기사나 인터넷 백과사전을 뒤적이면서, 어쩌면 이 같은 알아가는 과정이 연결의 시작이며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가져다주는 공동체적 체험은 바로 이런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연결의 회복을 고대하며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과연 이 소설이 아시아 혹은 그 너머의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앞서 적은 대로, 이 소설은 한국인 독자의 관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으나 구체적인 국가의 맥락에 있어서는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을 타파하고자 문을 두드리는 과정을 통해, 적어도 책장을 펼치기 직전에 비하면 지금은 이 아홉 국가 간의 연결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절연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토록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 또는 집단에 스며들 수 있게 해 주는 예술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렵다' 혹은 '낯설다'는 감정 자체가 연결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 모두는 한 명 한 명 독립된 개체로서 서로 다른 경험과 체험을 통해 자라 왔다. 따라서 내가 타인과의 괴리를 목격하고 느끼는 순간적인 거부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가지게 된 소망이 있다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절'연의 근거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책의 대담 부분에서 정세랑 작가가 이야기했듯, '절연'은 농담이 아니라면 호적에서 파는 정도의 파국 상황에서만 쓰이는 용어다. 게다가 '절연'은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뜻하지 않고 대신 스스로 연결을 끊어 버리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다. 그만큼 비장한 선택을, 즉각적인 거부 반응 때문에 단행하지 않았으면, 조금씩 알아가고자 서로의 문을 두드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자신만의 개성이 서로 간의 차이로 귀결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어쩌면 '연결'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부담감은, 연결의 굵은 끈이 개인으로서의 나의 독자적인 개성을 목 조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연결'과 '동일시'는 다른 개념으로, 우리는 굳이 절연하지 않고 또 굳이 개인의 영역을 침해받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느슨한 연결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친구들과 종종 우스갯소리로 '같이 따로' 놀자고 이야기한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존중해 주는 그런 시간을 갖자고 말이다. 함께 수영장에 가도 한 명은 선베드에서 책을 읽지만 다른 한 명은 물장구를 칠 수 있고, 함께 서점에 들어가도 한 명은 DVD 코너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소설 코너에 오랫동안 발을 붙이고 있는다. 굳이 모든 행동을 함께할 필요는 없지만, 함께이기에 즐겁다. 서로 헤어지는 시대를 사는 우리지만, 헤어짐 이후의 더욱 견고한 이어짐을 상상해 본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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