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품 속에 숨겨두었던 과거는 언젠가 무지개가 된다 -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글 입력 2023.01.2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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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수

 

 

 

1. 무너져가는 영화관에 머무는 사람들


 

오늘 리뷰할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과거에 얽매인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이야기다. 충청도의 시골 마을, 40년 동안 운영해온 영화관이 폐관된다. 조씨 가문의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가족 대대로 운영해왔다. 한때 영화관은 새로운 오락 문화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플랫폼이 대중화된 오늘날 대형 영화관도 아닌 이곳은 유행과 전혀 맞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결국, 영화관은 재개발로 땅을 내주게 된다.

 

누구나 영화관을 방문한다면, 이곳이 폐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영화관은 벽지도 간판도 깔끔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오줌냄새까지 난다. 비 오는 날에는 물까지 샌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도 세련된 맛이 없다. 우선 첫 번째로, 영화관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 역시 그의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영화관을 운영한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조씨 가문의 할아버지는 땅 주인에게 직접 돈을 뽑아 건네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당시 영화는 일종의 신문화였음에도, 할아버지는 속도나 화려함보다는 구시대적으로 보일 정도로 느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운영한다. 이런 영화관이기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영화를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와 상관없이 때로 갈 곳 없는 사람들도 모이는 곳이 되어간다. 

 

하지만 영화관의 운영자들은 영화관이 세련된 장소가 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따스하게 바라보고, 때로는 그 얼굴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사장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현대인의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영화관의 카운터 직원은 억척스러운 인상이지만 정 많은 성격이다. 사장님이건, 자주 오는 단골이건 탕비실로 들어가서 보리차를 떠다 준다. 하지만 정 때문에 도움 안 되는 남자친구를 끊어내지 못하는 약점도 있다. 영사기사는 늘 토끼 탈을 쓰고 다닌다. 영사기사는 늘 사람들을 만나면 시선도 말도 나누지 않고 영사실로 도망친다.

 

이곳의 방문객들도 영화관 관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년 여성인 정숙은 나이 들고 병든 어머니를 돌보다 지칠 때마다 극장으로 도망쳐온다. 아버지의 폐업을 도우려고 고향으로 돌아온 손자 조원우는 동생이 집단따돌림으로 자살한 후 적응하지 못하고 계약직만 전전한다. 조원우의 동거인이자 애인인 신태호는 아버지를 일찍 잃은 게이로, 갑자기 시골에 내려간다고 통보한 조원우를 쫓아왔다. 연극 내내 이들 커플은 시골의 눈치로 커밍아웃을 피하고 있는 조원우의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그럼에도 신태호는 조원우를 떠나지 못한다.


변화보다는 유지, 현실적 조건보다는 정, 공적 관계보다는 개인적 관계, 확장보다는 위축, 다수보다는 소수. 현대사회의 촘촘한 권력망에서 이들은 폐업을 앞둔 시골에서 근근이 운영 중인 작은 영화관처럼 도태되다 못해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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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수

 
 
 

2. 과거에 얽매인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나아가라. 오늘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격언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전진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오늘날에도 구시대적인 것들을 다룬 작품들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온 것들은 아련한 노스텔지어로 잠시 소비되기만 할 뿐, 지나온 곳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미련해 보이고, 변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도 춤춘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연극은 그런 삶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한다. 나아가, 시대에 맞지 않는 이들이 꿈꾸는 미래에 대해 달콤하게 묘사한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손자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편안하기는 하지만 어떤 혁신이 없는 영화관에서 살아간다.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각자 쉽게 떠날 수 없는 과거에 얽매여있다. 카운터의 직원은 의지할 수 없는 전 남자친구, 영사기사는 과거의 트라우마, 정숙은 치매 걸린 어머니, 신태호는 조원우. 이들이 품에 안고 있는 것들은 오랜 시간 공들여 사랑한 것들이다.

 

폐업을 앞둔 영화관에 대한 아버지의 묘사를 통해 이들이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묘사된다. 그는 재개발을 통해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오던 것이 끝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과거에 얽매여있지만, 과거에 완전히 압도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연극에서 묘사되는 과거나 상처는 반드시 버리거나 지워버려야 하는 짐이나 의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연극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과거에 얽매여있는 삶에는 절망과 슬픔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동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 미련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랑이나 후회를 쉽게 놓아버리지 못하고 살았을 뿐이니까. 그들은 과거에 매몰되어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사탕을 쥔 꼬맹이처럼 과거를 꼭 잡고 쉽게 놓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미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극이 정전이 나고 빗물이 샐 정도로 허름한 영화관을 떠나지 못하고 옹기종기 모여 일희일비하는 그들에게서 애잔함이나 동정 대신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관은 폐업해야 하고, 영화관에 모인 이들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비를 함께 막고 전등을 고치는 어둠 속에서 비로소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제야 그들은 영화관 폐업파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과거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과거를 잊거나 버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를 안고 미래를 나아간다.

 

아버지가 영화관 폐업 날 무지개가 뜬 하늘을 보고 외치는 장면은 이 연극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의 아들이 자살했을 때도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 비 온 뒤에 무지개가 뜬다는 말은 흔히 슬픔 뒤에 희망이 있다는 표현으로 쓰인다. 슬픔으로 인해 떨어지는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지는 탓에, 비는 종종 견딜 수 없는 슬픈 감정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비오는 다음 날, 수증기에 떠있는 물방울 안에서 빛이 굴절되고 입사되어 파장에 따라 색이 배열되어 무지개가 뜬다.

 

일련의 과정은 슬픈 사건 뒤에 사람이 변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다. 슬픈 감정은 갑작스럽게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별다른 같은 색과 모양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슬픈 감정이 지나고 나면, 그것은 눈물 속에서 빛이 굴절하고 파장되어 온갖 감상과 결과로 변화한다. 마치 물방울이 증발되면서 수많은 스펙트럼의 빛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가 시간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바뀌는 인간의 삶은 그래서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폐업해가는 영화관 위에 뜬 무지개를 보면서, 아버지는 먼저 간 아들에게 잘살겠다고 고한다. 그에게 아들은 과거지만, 변화한 과거다. 그는 현대의 빠른 변화에 어울리지 않고 과거에 얽매여있지만, 그 어떤 현대인보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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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수

 

 

 

3. 나가며


 

불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꺼져버린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삶과 꼭 맞지 않는 이들의 삶 역시 폐업해가는 영화관처럼 물이 새고 불이 꺼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영화관의 의자를 치우고 그 중간에 사람들을 맞이할 탁자에 음식과 술을 잔뜩 차렸다. 영화관의 카운터 쪽에는 "축 폐업"이라는 기묘한 구절이 써있다.

 

오랜 시간 동안 안고 있었던 과거로부터 놓여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 위에는 무지개가 뜰 것이고, 최소한 이제 이들은 가끔은 그것을 향해 잘 살겠노라 이야기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맞기 위해 상영관의 문을 연다. 연출상 그 문 안에서 빛이 쏟아져나오고, 그것은 마치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가는 출구처럼 보인다.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비오는 장면에서 아버지가 상처를 고백하는 장면과, 무지개를 보면서 잘 살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잘 잊히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말 그대로 빛을 발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연극이 구시대의 향수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인간성에 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고백하자면, 화려한 작품의 수상이력에도 소재나 내용 면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연극이었다. 최소한 나는 현대 콘텐츠에서 유행하는 '레트로함'에서 위안은 커녕 씁쓸한 농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과거와 과거를 다루는 방법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과거는 더 아름다웠던 것도,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 안에 존재하는 어떤 미련과 희망을 조금은 가볍고 우스운 방식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이 시간과 변화에 얽매이면서 정말로 잊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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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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