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 샷을 찍었습니다 [문화 전반]

산호맨숀을 다녀오다
글 입력 2023.01.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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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산호맨숀사진.jpg

 

 

요즘은 증명사진도 개인 고유의 색이 드러나게 연출하여 찍는 것이 인기다. 그리고 나는 이번 주, 무려 두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촬영이 가능하다는 유명한 사진관, 산호맨숀을 다녀왔다.

 

‘증명사진 6장’과 프로필 화보 촬영인 ‘랜덤 기프트 사진 4장’이 포함된 패키지를 예약했는데, 그 구성은 15만 원 돈이었다. 백수인 나에게 큰 지출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 누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카메라를 들이밀면 어색해하던 나였다. 카메라 앞에서 뻔뻔하게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취하는 일은 왠지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번처럼 각 잡고 찍는 프로필 촬영도 내겐 처음이었다.

 

피사체 역할이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적지 않은 금액을 내면서까지 사진을 남기고자 한 건, 새해를 맞이하여 아직도 모호하기만 한 정체성을 사진으로 공고히 하고픈 마음과 지나가는 20대를 어서 남겨야겠다는 조급함에서였다. 아, 어쩌면 앞서 말한 이유는 다 듣기 좋은 핑계고 내심 유행하는 것을 그냥 따라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여러 이유가 결부되어 나는 해보지 않았던 '프로필 촬영'을 하게 되었다.

 

 

 

촬영 전날


 

촬영을 위해 '내일의 나'는 완벽하게 세팅되어야만 했다. 취업 준비로 바쁜 백수가 나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은 온통 결과물이 잘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촬영 전날 밤 9시부터 이사배의 메이크업 영상을 틀어두고 맹 연습에 돌입했다. 메이크업을 받으려니 사진관 근처 숍들은 너무 비쌌기에 결국 셀프 메이크업에 도전하게 된 것이었다. 메이크업을 하며 깨달았다. 완성도 있는 메이크업은 꼼꼼한 인내력과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요하는 난도 높은 작업이라는 사실을.

 

어찌어찌 화장을 완성한 후, ‘산호맨숀 브이로그’를 검색하여 촬영을 예습했다. 거울을 보며 사진관 특유의 가련한 표정을 미리 연습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내일 잘 할 수 있겠지 걱정하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촬영 당일


 

다음부터는 반드시 메이크업만큼은 전문가에게 맡기리라 울분에 찬 다짐을 반복하며 전날 연습해둔 메이크업을 끝냈다. (속눈썹을 붙인 후 이목구비가 확 또렷해질 즘엔 ‘이 짓을 두 번 하다간 성격 다 버리겠구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촬영용 착장으로 갈아입고 외출하려니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왔다. 증명사진 하나 찍는 게 이렇게 긴장할 일인가. 스스로의 촌스러움과 유난에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나왔다.

 

을지로에 도착해 예약한 숍을 들러 헤어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고난스러웠던 ‘촬영 준비’가 드디어 모두 끝난 것이다! 이미 한껏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산호맨숀으로 향했다.

 

듣던 대로 작가님들은 활발하고 유쾌했다. 좋은 결과물을 위해 세세한 디렉션까지 주신 덕에 촬영은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촬영을 마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시간이 왔다. 보통은 사진관에서 원본을 마주하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스스로의 못생김에 또 한 번 놀라기 마련인데, 산호맨숀의 원본은 원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사진을 골라 보정까지 마쳤다.

 

 

 

촬영 직후


 

촬영 당일, 인화된 증명사진을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사진은 소위 말하는 ‘인생 샷’이었다. 예쁘게 나를 찍어주신 작가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사진관을 나왔다.

 

일어나자마자 부기를 빼겠다며 운동을 하느라 시간이 부족해 저녁이 다 되도록 밥도 먹지 못한 탓에,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카페를 들렀다. 자리에 앉아 다시 사진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생경한 나였다. 순간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인생 샷’을 얻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 기분을 무엇이라 형용해야 할까 고민했다. 끝내 그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은근한 찜찜함을 외면하며 난 집으로 돌아왔다.

 

 

 

촬영 며칠 후


 

그 찜찜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며칠을 내 안에 잔재했다. 15만 원이나 내고 찍은 사진, 심지어 정말 잘 나온 그 사진을 선뜻 SNS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기가 망설여졌던 건 왜일까.

 

분명 '사진 속 나'는 그간 내가 동경하고 바라온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사진의 나는 어떠한 근심이나 걱정도, 변덕이나 흔들림도 없는, 여유 있는 내면을 가진 고고한 사람 같았다. 사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연출된 나’와 ‘일상의 나’의 괴리감이 딱 그 차이만큼의 피로함과 허탈함 그리고 부끄러움을 남긴 것이니까.

 

이번 경험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나는 산호맨숀을 통해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가장 만족하는 '인생 샷'을 건질 수 있었으며, 사진으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재미까지 알게 되었다. 다만, 다음엔 다른 의미의 인생 샷을 촬영해 보고 싶다.

 

예쁘게 나오기만을 위해 필사적으로 애쓴 ‘인생 샷’이 아니라, 일상 속의 나를 담은 자연스러운 ‘인생 샷’ 말이다. 특별할 것 없고 세련되지 않아도, 흐트러져도, 심지어 다소 촌스럽더라도 일상과 맞닿은 표정과 내면을 담은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설마 그때도 예쁘게 찍겠다며 결국 소심한 연출을 더하려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트인사이트_권기선.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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