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숏폼의 시대, ‘소리’를 고찰하다 – 페리지 팀프로젝트 ‘숏-폼’

글 입력 2023.01.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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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이 채 안 되는 영상 콘텐츠인 ‘숏폼’은 이제 완전히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듯하다. 매일 수많은 이용자가 자체적으로 만든 콘텐츠를 다양한 숏폼 플랫폼에 업로드한다. 숏폼을 이용한 마케팅도 늘어나는 중이다. 숏폼의 영향을 받는 것은 음악계도 예외가 아니라서, 요즘은 숏폼 플랫폼에서의 유행을 노리고 일부러 ‘틱톡용 안무’나 ‘틱톡용 음악’을 만드는 추세다.


이런 과정에서 음악, 더 나아가 소리라는 요소는 영상의 부수적인 요소로 밀려나곤 한다. 음악 챌린지는 음악이 중심이 될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챌린지 영상을 볼 때 주목하는 것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챌린지 안무 및 동작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챌린지를 보며 그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는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다. 대부분의 챌린지가 비트와 속도감이 있는 음악 중심인 것도 그래서이다.


페리지갤러리에서 2월 11일까지 진행되는 페리지 팀 프로젝트 2022 <숏-폼>은 오늘날 트렌드로 자리 잡은 숏폼 콘텐츠에서 ‘소리’라는 요소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주목한다. 해당 전시는 소리 요소에 관심을 갖고 사운드 설치 작업과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전형산 작가와, 여러 전시를 기획해 온 추성아 기획자가 한 팀이 되어 만든 이색적인 결과물이다.


영상의 부산물로 밀려나 백그라운드 뮤직에 가까워진 소리를 전시에서는 ‘소리 찌꺼기(sound crap)’라 칭한다. 전시는 우리가 그저 흘려보냈거나 아예 그 존재를 인식하지조차 않았던 이 소리 찌꺼기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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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여섯 대의 스마트폰이 설치되어 있다. 각 스마트폰에서는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의 숏폼 콘텐츠인 ‘릴스’가 재생되는 중이다. 귀여운 동물, 아이돌 가수의 포인트 안무, 유행하는 각종 챌린지, 스포츠 퍼포먼스 등 30초가 채 되지 않는 일관성 없는 영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보는 사람이 무언가를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이것을 계속 볼지 말지를 결정하기도 전에 기기는 이미 다음 릴스를 재생한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릴스 영상을 볼 수 있다면, 릴스에서 나오는 소리는 반대쪽에 설치된 작품 ‘Darkfield’에서 들을 수 있다. 간판을 스피커로 재활용한 이 작품에서는 여섯 대의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릴스 소리가 한꺼번에 합쳐진 채로 흘러나온다. 또한 그 소리는 시각적으로 변환되어 빛으로도 송출된다. 별도의 조명 없이 스피커에서 송출되는 빛이 전부이기에 전시장에 들어서면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쉴새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릴스 화면을 파악하기에 앞서 느끼는 것은 불규칙하게 번쩍이는 빛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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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숏폼 콘텐츠를 볼 때 영상, 즉 시각적인 요소를 가장 크게 인식한다. 이번 전시는 시각적 요소에 밀려 늘 뒤에 있었던 소리 요소를 가장 앞으로 가져와 보는 시도이다. 전시장에 들어와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느끼게 되는 빛과 소리는 더 이상 영상의 배경이 아니다. 릴스 영상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릴스와는 또 다른 새로운 콘텐츠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전시장에 별도의 설명이 없어서 놓치기 쉽지만, ‘Blackfield’ 앞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펙터가 놓여 있다. 이곳에 서서 관람객은 직접 이펙터를 눌러보며 소리를 합성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 이렇듯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요소는 숏폼 콘텐츠의 특성을 반영한다. 숏폼 콘텐츠는 수많은 개인이 주체가 되어 영상을 촬영하고, 그 영상에 맞는 음악을 각자의 기호에 맞게 덧씌움으로써 생산되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시각화된 소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믹스하는 것은 숏폼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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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콘텐츠는 개인이 직접 촬영한 영상도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 무대 영상의 일부를 가져온 형태도 많다. 음악 역시 원곡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중독성 있는 한 부분만 가져오거나 곡의 재생속도, 음의 높낮이를 조절해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숏폼 콘텐츠는 원래 존재하던 콘텐츠의 일부를 가져와 새롭게 조합해 몇십 초의 영상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숏폼 콘텐츠의 이러한 정체성은 ‘원본’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 다른 쪽 벽에 붙은 QR코드들은 ‘원본성’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관람객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 ‘Brightfield: Command, Classification of text-davinci-003’이라 이름 붙여진 이 텍스트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작성된 것으로, 사용자의 다양한 지시에 인공지능이 어떻게 응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추성아 기획자는 기존에 인간이 본래의 글을 쓰고 인공지능을 참조점 삼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본래의 글을 쓰고, 인간이 인공지능의 참조점이 되는 ‘형식의 전복’을 시도한다. 또한 별도의 설명 없이 QR코드만 나열된 벽면의 모습은 몇 년 사이 우리가 ‘비물질화된 전시 형식’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전시회에서 전시 가이드를 QR코드로 인식해 듣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 프로그램북도 QR코드로 열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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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빠른 전환, 구분할 수 없이 뒤섞인 소리로 가득 찬 전시장에 머무르다 밖으로 나오면 갑자기 현실의 모든 것이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숏폼으로 우리가 감각하는 것이 현실이고, 실제 현실은 시간이 느려진 가상 세계 같다. 스마트폰을 쥐고 그 안에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2022년의 우리는 현실과 온라인 세계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가 어렵다. 온라인 환경에서 콘텐츠를 수용하는 방식이 현실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맥락이 사라진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숏폼은 이 시대에 가장 잘 맞는 콘텐츠이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시간을 들여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번 전시는 그중에서도 소리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췄지만, 숏폼의 유행 속에서 점점 더 인식하기 어려워지는 다른 것들도 생각하게 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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